하시카와 분소, <미의식과 정치> 결론부
먼저, 정치적 현실의 파악에서, 양자 간에 공통된 어떤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 그건, 정치를 <전통> 혹은 <역사> 안에서 용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리고 코바야시(히데오)나 야스다(요주로)에게 있어 <역사>는 <전통>과 동일화되어, 어느 쪽이든 <미>의식과 등가로 보고 있다. 코바야시에게 <역사>가 <미>의 별명이며, 역사적 소여에 대한 감성적 공감의 총체를 의미했던 것은 여기서 자세히 논하지 않는다 (뒤에 적은 <<사회화하는 나>를 감돌며> 참조). 야스다에게도 또한 <역사>의 추구와 <미의 옹호>는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향토 야마토의 풍토란 전승에 대한 탐미적 애착의 동심원적 확대가 그의 <역사의식>이었다. 이 경우의 <역사>란, 칼 만하임의 이른바 <동공간자>(同空間者;Raumgenossen)의 의식을 내용으로 함에 다름없다. 거기에는 가장 인위적인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정신 구조에서, 어떤 정치적 현실의 형성은, 그것이 형성되어 끝나는 순간에, 그 대로 영원한 과거로, 역사로서 미화된다. 인간은 어떠한 울분, 원한을 거기에 대하여 생각을 품으려고 해도, 결국 그 <어제>에 대하여 손끝도 대지 못한다. 거기에는 <영원히 어제가 되는 것, 우리들을 이끄네>란 단념이 인생론의 핵심을 낳게 한다. 이렇게,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현실 - 역사 - 미의 일체화 관념이, 탐미적 현실주의의 성삼위일체를 형성한다. 야스다나 코바야시가 <전쟁 이데올로그>로 가장 성공할 수 있던 건, 전쟁이란 정치적 극한 형태의 가혹함에 대하여 일본 전통 사상 중에, 유일하게 상술한 의미에서 <미의식>만이 이걸 견뎌낼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현실도 그것이 <어제>가 되고 <추억>이 되면 아름답다. 야스다는, 전통적 미의식에 대한 어필로 <십오년 전쟁>의 현실을 <어제>로 하고, <역사>로 살아가도록 가르쳤으며, 그것들이 영원히 붕괴하지 않을 <미>의 규범에 의해 지탱됨을 자신을 갖고 해석해 보였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마치 순교자의 힘에 유추하려는 자로, 현실과 역사를 성립시키는 근원적 실재로써 <미>를 설파했다. 그의 <국수주의>가 <울트라 내셔널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탐미적 패트리어티즘>이라 불리는 것이 어울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 <아름다움>이, 일종의 근원적 실재로 제시되는 한, 현재도 또한, 어떤 숨겨진 원리로써 작용함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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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는 모두 저자가 한 것.
"어떠한 현실도 그것이 <어제>가 되고 <추억>이 되면 아름답다. 야스다는, 전통적 미의식에 대한 어필로 <십오년 전쟁>의 현실을 <어제>로 하고, <역사>로 살아가도록 가르쳤으며, 그것들이 영원히 붕괴하지 않을 <미>의 규범에 의해 지탱됨을 자신을 갖고 해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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