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된 현실이란 무엇인가
<<제어된 현실이란 무엇인가>>
by 이토 케이카쿠
국제 무역 센터에 항공기가 들이박았을 때, 나는 병원에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막 불구자 판에 들어왔던 참이었다. 나는 우좌골신경과 우대퇴근의 주요한 근육을 잃었고, 무릎 아래의 제어와 감각 일체가 나에게 영원히 이별을 고했던 참이었다. 무릎 아래 다크맨. 생각 해야될 문제는 그 외에도 산더미처럼 있었지만, 애초에 애초에 이렇게 되게 만든 악성 종양 (그러니까, 암이란 얘기다) 이 전위하지 않았나, 수혈혈액에 ABC 그 외에도 여러가지 간염이 잠복하지 않았나, 그런 세세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전위하면 다음엔 목숨을 건질지 어떨지 모른다(아니, 거진 죽는다)는 점과, C 형 간염이 되면 거의 확실히 간장암이 발병한다. 거기에 거기에 더해~서, 인터넷에서 내가 앓던 종양의 5년 생존률을 조사해보니 50~70%라더라.
솔직하게, 이건 좋지 않았다. 모르는 편이 좋았겠~지만, 병명을 듣던 안 듣던, 나는 노트북을 병원의 공중전화에 연결해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나는 크로넨버그가 엄청 좋아서 (웃음) , 즉 자신의 몸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고 죽고 싶단 타입의 인간이니까, 알고 싶다는 바람을 멈추지 못했다. 거왜, 더 플라이란 영화가 있었잖아. 주인공은 과학자니까, 손톱이 깨지고 피부가 용해되거나, 자기의 몸에 일어나는 그로테스크 마쯔리를 "흠흠, 이건 이래이래 이래서 이렇게 된거구나"라고 이해하고는, 파리 남자의 길을 받아들였다. 응? 뭔 얘기야, 이거? (웃음)
그렇다곤 해도, 뭐 알고 나니까 이번에는 아는 데로 오히려 공포가 찾아왔다. 애초에 부모나 의사는 나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던 걸까. 거의 딕(*필립 딕 K)의 소설처럼 파라노이아 상태에 빠져버렸다. 응, 이건 좀 대단하다구. 뭐라든 자신에게 모든 인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야말로 동경 토탈리콜, 잼 인간에게 잡힌 치킨블로스를 먹게 된 후카이 레이가 된 기분. 아니 진짜루. 간호사의 작은 배려가, 부모의 깊은 생각없는 상냥함이 엄청 무섭게 된다구~ (웃음) 거왜, 데이비드 핀처의 <게임>, 거기의 마이클 더글라스 상태.
그래서, 나는 지금도 죽음에 떨면서 움찔움찔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도 죽음에 약간 더 가까운 건 확실하다. 딕 상태는 어떻게든 벗어났지만 (아니, 속고 있다고 해도, 나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밤중에 "죽음"이 맹렬히 습격해오면, 이불 안에서 숨죽여서 울수밖에 없는 나날은 그대로다.
왜냐면 나, 절대로 죽고 싶지 않은 걸.
나는 이 1 년, 매월 10일 정도 입원해서 항암제를 몸에 맞아왔다. 예전과는 다르게 최근의 항암제는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시 구역질은 쎄~고, 털은 빠진다. 조금 재밌는 건, 거의 같은 성분인 항암제를 매회 맞아도, 빠지는 털의 장소는 매번 다르다? 진짜라구. 처음에는 머리털에 수염에 겨드랑이털에 가슴털(웃음)에 좆털이었지만, 2회째에는 머리털도 수염도전혀 빠지지 않고, 그저 콧털이 수북수북 빠졌다. 아니~ 처음에는 좋았어. 손질하지 않아도 좋~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이 상태가 먼지에 엄청나게 약하단 사실이 판명되서, 창밖에서 빛의 입자가 보이는 리들리 스콧 방(그러니까 먼지가 가득찬 방)인 내 방에는 거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우구구구구구.
나는 예전부터 천식으로, 천식용 흡입기는 머스트 헤브 아이템이었다. 지금 나는 항암제를 맞고서, 몸 안의 암의 가능성과 싸우고 있다(있을까?). 이런 약이 없던 금세기 초두였다면, 나는 죽었다. 나란 존재를 유지하는 건, 과학기술에 의해 태어난 약이다.
과학기술에 의해 유지되는 신체. 과학기술이 없으면 소멸해버릴 신체. 이것이 의미하는 건, 말하자면 나는 사이보그였단 거다. 슈퍼 파워를 갖는 기계만이 사이보그가 아니다. 사이보그, 란 말이 아니면, 사이보그적 신체라고 해도 좋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우와~ 그리워)"류의 그거. 미츠비시 제네틱의 "샐러리맨"같은 미세처리장치가 삽입된 건 아니다만(웃음), 나는 케미컬 테크놀러지에 의해 신체를 유지하고 있다. 덧붙여서 병원의 은어로 항암제를 "케미"라고 하는 건 알고있으려나? 화학치료, 케미컬이니까 케모. 나란 존재는 어릴 때부터 과학기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하나 더 말하면 나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기술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태어날 일 없는 자식이란 거) 그것이 없다면 소멸해버렸겠지.
그리고 지금도.
나는 "테크놀러지의 자식"의 한 명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이 이미, 항상 사이버 펑크라는 사실을, 육체에 의해서 실증된 인간들 중 하나다. 물론 누구라도 테크놀러지에 의해 생활이 규정되어 한계지어지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거의 살아있을 때마다 육체로 실증해왔다.
나란 신체. 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자연 그 자체로, 자연이란 예측불가능에 통제할 수 없으니까다. 그런데도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그 자연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구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을 배제하는 일, 자연을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일. 그것이 인간의 생존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바랄 수 있는 생물이니까, 생존은 본능이 아니다. 욕망이지)에 뿌리내린 충동이며, 이데올로기다. 인간은 모델을 세워서, 시뮬레이션해서, 예측해 기술해 제어하는 걸로 개개의 생존가능성을 확대했다.
MGS2는 일종의 패러노이아(편집광)을 그리고 있다. 그건, 이 세계의 모든 사상은 전부 수치로 환원가능하고, 그 위에서 시뮬레이션 하고, 모든걸 관측하고, 어디까지라도 예측하고, 어디까지라도 제어할 수 있다란 뉴튼 역학적 망상의 실험실이다. 라플라스의 악마. 어디까지라도 무한하게 정밀한 데이터가 있다면, 빌리야드의 구슬의 궤도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세계는 계산할 수 있다는 망상. 양자역학이나 카오스 이론을 가져올 필요도 없이, 그건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MGS2는 사회모델에 한정했을지언정, 그것이 가능한 상황을 그려낸다.
MGS2 자체가, 라이덴이 체험한 VR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본 적있다. 그건 한마디로 "이건 현실인가? 아니면 꿈인가?"하는 현실의 정의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네. 오시이 마모루를 끌고 들어올 필요도 없이, 이런 류의 테마는 다양한 작품에서 너무나 많이 그려져서, 이미 진부해져버린 느낌이 없잖다. 그리고, 라이덴도 확실히 "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부근이 그런 문제에 조금은 걸치고 있다. 가상현실에 의해, 사람들의 현실감이 희박하게 된다란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자주 있는 이야기"로, 라이덴의 VR훈련 부근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
이것이 꿈인가 아닌가 관계없이, 내가 현실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쉽지만, MGS2는 그런 "자주 있는" 결론으로 도약하진 않는다. 또, 가상현실이 현실측을 침식하거나도 하지 않는다. 그런 "가상현실물"의 결론 레시피를, MGS2는 무시하고 있다. "현실인가 꿈인가, 그런 테마라니 진부하다"고 말하신 분,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주세요. 왠냐면 MGS2, 그런 걸 무화하는 엄청난 결론을 갖고 왔거등. "자아찾기란 테마도 진부해"라고 말하신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주세요. 왜냐면 MGS2, 자신을 무화하는 결론으로 끝나고 있거등.
S3에 의해서, 애국자들은 인간의 사회를, 개인 레벨에서부터 제어하는 게 가능해졌다. 별로 뇌를 제어할 필요도 없이, 어떤 이벤트를 겹쳐가면 사람을 바라는데로 유도할 수 있는가-하는 그 방법을 손에 얻었다. 그 방법의 유효성을 검증해, 사용할 프로토콜의 버젼을 확정하는 일이, MGS2란 이야기였다. 인간 사회의 모든 걸 수치로 환원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시뮬레이션해, 모든 걸 관측해서, 어디까지든지 예측하고, 어디까지든지 제어할 수 있다.
그 때, 현실과 가상현실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가상현실이 현실에 오거나 하진 않는다. 이 현실이 가상현실일지도 모르고, 또 하나의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따위 뭐가 되든 상관없다. MGS2는 현실이란 뭔가? 하는 질문을 자아의 인식의 문제로 두지 않는다. 자주 있는 철학적 문제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게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가상현실로써 정의하는 일. 폭력적으로, 가상현실로써 정의하려는 일.
그런 아크로바트가 S3란 아이디어의 실체다.
이 세계가 가상현실이라고 알았을 때, 네오가 모피어스에게 이끌려, 또 하나의 '현실'로 탈출한다. 이 세계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 고 알았을 때, 아타루(*우루세이 야쯔라 뷰티풀 드리머의 주인공)는 현실의 고등학교로 돌아왔다 (그것이 또한, 꿈에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러나, 라이덴들이 탈출할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야말로 가상현실이 되어버렸고, 도망갈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때문이다. 양파의 껍질처럼 어디까지 가도 꿈, 이란 것마저 허용되지 않는다(아발론은 그랬지만). 이 유일무이한 현실이야말로, 그 자체로 가상현실이 되어버린 날, 그것이 4월 30일, MGS2의 이야기다.
"모든 걸 계측해서, 예측해서, 제어하려고 했을 때, 이 세계란 대체 뭔가?"
란 가정을 찔러들어간 결과, MGS2는 이러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건 가상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미 가상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란 인식. 현실 그 자체가 가상적이란 비젼. "이 세계는 꿈(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어떤 류의 도피같은 이야기와는 다르다. "현실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란, 1000회정도 쓰여진 프레이즈와는 다르다.
이 세계가 가상현실이라도,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며, 어디에도 도망갈 장소 없는 유일무이의 현실이란 것. 그래도 더욱 가상현실일 뿐이란 것.
이 절망이, MGS2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있다.
MGS1의 무대인 셰도우 모셰스 섬은, 외딴 섬을 둘러싼 시설이었다. 거기엔 눈이 내리고, 바위가 있고, 나무들이 있고, 자연 동굴이 있고, 영구영토였다. 반면에, MGS2에 등장하는 건 어디까지고 인공적인 풍경이다. 무대는 뉴욕이며, 그 만(灣)에 떠오른 거대한 인공구조물이다. 이번 무대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등장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하늘을 나는 갈매기 정도일까. 라이덴은 철저하게 인공적인 환경 안에서 싸움을 전개한다.
유전적 결정론 (으로부터의 자유) 가 주제였던 MGS1이 가혹한 자연환경을 무대로 했던 것과 달리, MGS2는 인간의, 인간자신에 의한 결정론을 다룬다. 그 무대가 철저하게 인공물인 것은 필연이다. 이미 운명이란 말이 신을 요청할 필요성도 전혀 없다. 우주적인 신비도 인과율도 필요없다. 인간이 자신을 예측하고 제어하는 세계. 거기서는 모든 게 인간의 사고의 산물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연이란, 인간의 사고에 개입하지 않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우며, 예측곤란한 팩터이기 때문이다.
주변 전부를 인간의 손이 닿은 존재로 둘러싸며 살아가는 일. 그것은 즉, 인간의 사고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인간에 의해 예측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한다.
거기에는 버쳘 리얼리티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이미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주변을 둘러봐. 자연이 얼마나 있지? 인간의 손에 의해 자라난 풀이나 가로수나, 주차장의 잡초가 "자연"일까? 근처에 흐르는 강, 그건 자연의 강일까. 최근에 만들어진 용수로는 논외라해도, 실은 쇼와, 메이지, 거슬러 올러가 에도에 만들어진 농업용 수로가 아니었을까.
우리들은 인공물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인간이 사고해서 그렇게 바란 환경 안에 둘려쌓여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사고의 결과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왜 대지진으로 5000명의 사람이 죽으면 모두 놀라면서, 연간 교통사고로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까? 그건 즉, 자연은 '상상할 수 없는 재난'으로, 예측할 수 없는 팩터였던 것에 비해, 교통사고는 "사회적으로 예측가능한 범위 내이며, 허용할 수 있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니까다. 지진은 자연의 재난이지만, 교통사고는 인간의 사고의 수비범위 안에 있다. 그건 즉,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것의 내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 도로도, 빌딩도, 집도, 식재료도, 모든 게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이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다. 자연이란, 본질적으로 예측도, 제어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것은 기호가 아니다. 도시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고가 스며들어가 있다. 그 자체가 이미 가상현실이다. MGS2가 도시의 우두머리랄 수도 있는 뉴욕을 무대로한 건 우연이 아니다.
초출 : Spooktale 2002년 2월 25일
이토케이카구 개인 웹사이트 spooktale 내의 kojimaniax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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