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야만족, 나

세계, 야만족, 나
- 이토 케이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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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지각 지각~"

하고, 새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그 입으로 동시에 식빵을 먹는 재주 좋은 소녀가, 기세 좋게 골목에서 뛰쳐 나와, 나에게 격렬하게 부딪쳐서 넘어진 걸 범했다.

 지독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왜 그녀의 교복을 찢으며 무참하게도 그녀의 순결을 빼앗아야 하는가 하면, 그건 내가 야만족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딪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 어째서 너는, 충돌할 상대로 나를 골랐니. 내가 죄를 더 저지르길 바랬니. 내 야만족의 피를 눈뜨게 하고 싶어서, 자기혐오에  빠트리고 싶은 거니.

  자기혐오라면, 잔뜩 안고 있다. 나는 마르코망니* 인(人)이다. 마르코망니. 나는 그 울림이 정말로 싫다. 페르가모, 에로망가 섬, 스케베닝겐*, 일만개, 레망 호, 마르코망니. 나는 전학해서 자기소개할 때마다 비웃음당한다. "마르코망니라니, 히히히"라는 식으로. 그래서 나는 그런 걸 말한 녀석의 목덜미나 두개골에 액스를 꽂아 줄 수밖에 없다.그런 피 웅덩이 지옥을 반복하느니, 대충 게르만족이라고 말하는 편이 얼마나 나은가.

*주) 마르코망니는 일본어로 '보지'를 뜻하는 '망꼬'를 연상케한다. 스케베닝겐은 '네덜란드의 지역명'이면서 동시에 일어로 '변태놈'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걸 용서치 않는다. 너는 마르코망니 인이다. 당당하게 말하고서 승리의 함성을 높여라, 하고.

  "기분 망치는 이민족은 범하던가 죽이던가 빼앗아야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 크하하하고 천박한 웃음소리를 올린다. 내 마음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 마르코망니로 태어난 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하고 있는, 이 나의 마음은.

  학교에 도착해서, 나는 내 책상 앞에 앉았다. 갈색 니스가 칠해진 표면에는, 누군가가 매직으로 심술궂은 낙서를 적어 놓았다 --- 고 말하면 좋겠지만, 물론, 그건 "심술"따위의 약한 게 아니다.

살인자 

  똑똑히 써있는 고딕체. 레터링이 대단하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울한 시선을 그라운드에 던진다. 당연하지만, 이런 나에게 친구는 없다. 함께 있으면, 도끼나 워해머가 언제 두개골의 정수리를 찍을지 모르는데, 나와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괴짜가 어디 있을까. 나는 이 30명이 있는 교실에서, 언제나 고독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과장된 한숨을 쉰다. 그 파충류처럼 감정 없는 눈동자가, 순간 나를 향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선생님이 왜 제 반에 야만족 아이가 있는 겁니까, 하고 교장에게 눈물로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하고 선생님이 말했기에, 나는 지긋지긋해졌다. 이 무슨 일인가. 어째서 세계는 나에게 이런 불행만 밀어 넣는가.

"아쉽게도, 그녀는 오늘 여기에 올 수 없습니다. 여기에 오는 도중, 야만족에게 능욕당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일어나서 모두에게 그렇게 고백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간 비난과 경멸의 폭풍이 나에게 덮쳐오고, 또 짜개진 머리와 어깨부터 가슴까지 거칠게 찢어진 몸덩이로 된 산더미가 쌓이겠지. 나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광경은 지긋지긋하다. 살인자라는 낙서만으로도, 나의 야만이 발동해야 할 역치는 이미 도달해버렸는데 말이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다.

  분명 네놈이 했겠지. 네 놈 탓이겠지.

  그렇게 의심하는 모두의 가시 돋친 시선을 온 몸으로 느낀다.물론 내가 했고, 내 탓이고, 이런 나는 죽는 편이 세상에 좋은, 최악으로 비열한 생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야만족은 손목을 끊거나, 머리를 매달거나 하지 않는다. 야만족이 끊는 건 다른 사람의 손목이고, 매다는 건 로마나 훈족의 머리다. 야만족은 무자각적으로 자기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이민족을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래선 안된다.

  이만큼 자기반성이란 말을 빠트린 채 질질 살아가선, 안된다.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추한 삶을 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소여(所与)받은 것으로 향수해서는 안된다. 점심 시간, 도시락이나 매점에서 산 야키소바롤을 입에 넣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로부터 거리를 두고, 도낏자루를 어깨에 걸치고, 다리를 책상에 던져 놓은 채, 생고기를 우적우적 씹고 있는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야만족이란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을 증오하면서, 뼈가 붙은 생고기를 입에 넣는다. 죄와 벌. 야만과 문명. 나는 모순이다. 나는 야만족의 세계에 커다란 모순의 첨단이다.

"상스러워, 생고기 따위를 잘도 입에 넣네"

  반장이 내 책상 앞에 찾아와, 과장되게 혐오감을 보인다. 나는 한숨을 쉬곤

"야만족이니까. 브루털하고 크루드한 게, 내 천성이야. 냅둬"

  그러자, 반장은 내 책상에 하트 무늬 보자기로 감싼 도시락을 턱하고 내려놓곤

"이거, 먹으렴. 이 몸이 일부러 만들어준 거니까"
"뭐야 이거"
"그런 생고기를 먹는 걸 보면 슬퍼서 볼 수 없는걸. 야만인에게 문명의 맛을 알려주겠다는 거야. 따, 딱히 너한테 호감이 있어서 만든 건 절대로 아니니까! 아침에 도시락 만들 때 재료가 남았으니까, 덤으로 상자에 넣어 온 거라고. 야만인에게는 이런 것도 성찬이잖아?"

  이런이런. 나는 강간했다. 반장의 말 하나하나가 야만족인 나를 짜증나게 한다. 울부짖는 반장의 옷을 찢으며, 나는 묵묵히 자기 종족의 피에 따른다.

  아아 로마에 가고 싶다. 그 납빛에 가라앉은 도나우의 흐름을 넘어, 문명과 빛의 도시에 날아가고 싶다. 그래도, 그건 이뤄질 리 없겠지. 절대로.

  왜냐면, 로마는 마르코망니의 적이니까.

  로마의 군대는 도나우를 끼고서 우리와 서로 노려보고 있으니까.

  고독의 갈라진 틈을 매일매일 조금씩 넓힐 뿐인 학교에서, 이건 이거대로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야만족의 집에 돌아오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먼저 집에 돌아와서 책상 위에 갓 따인 사람 목으로 꾸며놓고는 크하하하는 웃음을 벽에다 칠해놓고 있다.

"그 웃음 소리 그만둬요, 아버지"

 하고 내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하며

"무척 천박해"
"우리들은 야만족이라고, 천박한 게 성질 아니냐. 천박이고 뭐고, 애초에 근본이란 게 없다고. 너무 자명해서 자기반성하는 것도 바보같을 정도로 야만족이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책상 위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가리키며

"어떠냐 이거, 로마 군의 사자(使者)이다. 지금은 사자(死者)지만"

  그리곤 크하하 웃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몸뚱이는 어떻게 했어"
"말에다 올려서, 막시무스인가 뭔가 하는 놈들의 장군에게 보냈다. 곧 싸움이라고. 아우렐리우스도 왔다던데. 들었냐? 로마의 우두머리다"
"우두머리가 아니야, 황제라고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정정하고서, 머리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이마에 "SPQR"이란 글자로 조그맣게 문신을 새겼음을 알 수 있었다. 휴대전화의 "7"번 키에 모두 넣어져 있는 네 문자. 이 슬픈 머리의 주인은, 우리들 마르코망니에게 화평을 전하기 위해 왔을 이 사자는, 진정한 로마시민이다. 세나투스 포풀루스 쿠에 로마누스. 원로원 및 로마 시민.

  로마. 머나먼 저편, 어딘가 먼,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지성과 문명의 도시.

  그리고 나는 내 방에 쳐박혀, 잠을 잔다. 야만족인 나의 집에는 샤워기도 욕조도 없어서, 그 대로 침상에 누워 태아처럼 웅크리고, 내 제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아버지의 크하하하는 웃음소리로부터 나 자신을 격리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꽉 막는다.

  그렇다, 내일은 싸우러 나가야만 한다. 검은 숲 속에서 철인(哲人)황제의 군세와 맞서고는, 무서울 정도로 커다란 목제 팔로 멀리서부터 불타 오르는 불꽃 구슬을 던지는 녀석들에게, 허세를 부려야만 한다. 지성도 신중함은 눈꼽만치도 없이, 목에서부터 나오는, 말이어야 할 음의 연결을 야수의 포효 수준까지 깎아내린, 그런 야만족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질러야만 한다.

  세계는, 나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는 절대로 되게 하지 않는다.

  야만족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나는 기쁘게 내 두 눈알을 파내 바치리.

"잘 자"

  나는 책상을 꾸민 로마인의 두개골에게 속삭이고 눈을 감았다.

  그 눈구멍의 동공이, 빤히 나를 보고 있는 것을, 희미하게 의식하면서.

댓글

  1. http://pann.nate.com/video/96948591

    마르코만니 족의 전투는 아마 맥시무스가 등장하는 걸로 봐선 이 장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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