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의 '귀를 기울이면' 비판 보충
http://kangkyusung.blogspot.kr/2011/04/blog-post_289.html
중략부분을 찾았기에 보충.
'귀를 기울이면에 대해서' 오시이 마모루 1995년
저기, 조금 말해도 괜찮을까?
이 영화는, 무엇하나 구원이 없는 영화다.
실제로, 현실에선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을 마음껏 자세한곳까지
꺼려지는 현실적인 일상의 세계로서 그리는건, 반칙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판타지의 세계, 순정만화의 세계라면 거기에 픽션이라는 전제가 있고
그걸 기준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보는 쪽에게도 구원이 있다.
그건, 보는 사람이, 처음부터 "거짓된 세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화 "기면구미"라던가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등. 처음부터 네타의 세계잖아.
데츠카 오사무 선생의 세계로 말하자면, "누더기 표주박(ヒョウタンツギ)"이 등장하니까,
독자가 구원받을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감독이 있고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뒷무대가 있는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이 애니메이션 작품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보는 사람은, 처음 도입부터 시작해서, 이 영화는 일상의 세계로써 자기도 모르게 이 세계에 넣고 만다. 거기서 무서운 침식이 시작된다.마지막까지 완벽한 일상의 세계가 그려져 있는 이 영화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본 사람을 무섭게도 세뇌한다.)
그리고 본 사람은 커다란 착각을 한다.
'이것이 본래 현실의 세계가 아닌가'라고...
거기에 그려진것은 무엇인가 하고.
고등학교도 가지않고 유학해서 바이올린장인을 목표로하는 남자친구?
부모도 선생도 동급생도 누구하나 반대하지 않고 벽에도 부딫치지 않고 꿈을 노리는 그녀?
그 두명에 의해, 당연한듯 그려져있는 있을수없는 연애의 세계?
'좋네, 이런 학창시절'
'이게 원래 있어야할 학창시절이었어'
'그렇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무엇이었나'
그렇게 본것중에서 원래는'있을수 없는 현실의 세계'가 정당화되고
종래의 '당연히 있던 현실의 세계'가 부정당한다.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것을 마치 가지고 있었던것처럼 착각시켜 그것을 부정하게한다.
이런 잔혹한 작품은 없다.
'현실을 착각시킨다'란건 애초에 악이고, '현실을 부정하게 한다'는 더욱 악이다.
あのね、ちょっとだけ言わせてもらってもいいですか。
この映画は、何一つ救いがない映画ですよ。
実際には、現実には、絶対にありえないことを、思いっきり細部までこだわった現実的な日常の世界として描くなんて、反則以外の何物でもない。
ファンタジーの世界、少女漫画の世界なら、そこにはフィクションとしての前提があり、それに則った作品としているから、見る側にも、救いがある。
それは、受け手が、初めから「嘘の世界」を前提として見ているからだ。
例えば、漫画「奇面組」や「彼氏彼女の事情」など。初めからネタの世界でしょう。
手塚治虫先生の世界でいえば、「ヒョウタンツギ」の登場により、読者は救いを得られる。
ドラマや映画なら、監督がいて役者が演技している裏舞台の世界が前提としてある。
このアニメ作品には、それらが一切無い。
見ている者は、最初の導入から始まり、この映画は日常の世界として知らず知らずにこの世界に入ってしまう。そこから、恐るべき侵食が始まっている。最後まで完璧な日常の世界として描かれているこの映画は、最後まで見たものを恐ろしくも洗脳させる。
そして、見た者は大いなる錯覚をする。
「これが、本来の現実の世界ではないのか」、と・・・
そこに描かれているものは何だろう。
高校にも行かずに留学してバイオリン作りを目指す彼氏?
親や先生や同級生に何ひとつ反対されずに壁にも遭遇せずに夢を目指す彼女?
その二人による、あたりまえのように描かれているありえない恋愛の世界?
「いいなあこんな学生生活」
「これが本来あるべき学生生活だったんだ」
「すると俺の学生生活ってなんだったんだろう」
そして、見たものの中に、本来では「ありえなかった現実の世界」が正当化され、従来の「あたりまえだった現実の世界」が否定される。
本来持っていなかったものをまるで持っていたように錯覚させ、それを否定される。
こんな残酷な作品は無い。
「現実を錯覚させる」ことがそもそもの悪であり、「現実を否定させる」ことはもっと悪である。
これを作った人は、世の中の人たちにとって、悪である。
映画史上、こんな罪作りな作品は、他に無い。
http://kanose.tumblr.com/post/29115529955/77-04-03-13-07-40-id-fkowqvrn
중략부분을 찾았기에 보충.
'귀를 기울이면에 대해서' 오시이 마모루 1995년
저기, 조금 말해도 괜찮을까?
이 영화는, 무엇하나 구원이 없는 영화다.
실제로, 현실에선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을 마음껏 자세한곳까지
꺼려지는 현실적인 일상의 세계로서 그리는건, 반칙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판타지의 세계, 순정만화의 세계라면 거기에 픽션이라는 전제가 있고
그걸 기준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보는 쪽에게도 구원이 있다.
그건, 보는 사람이, 처음부터 "거짓된 세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화 "기면구미"라던가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등. 처음부터 네타의 세계잖아.
데츠카 오사무 선생의 세계로 말하자면, "누더기 표주박(ヒョウタンツギ)"이 등장하니까,
독자가 구원받을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감독이 있고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뒷무대가 있는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이 애니메이션 작품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보는 사람은, 처음 도입부터 시작해서, 이 영화는 일상의 세계로써 자기도 모르게 이 세계에 넣고 만다. 거기서 무서운 침식이 시작된다.마지막까지 완벽한 일상의 세계가 그려져 있는 이 영화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본 사람을 무섭게도 세뇌한다.)
그리고 본 사람은 커다란 착각을 한다.
'이것이 본래 현실의 세계가 아닌가'라고...
거기에 그려진것은 무엇인가 하고.
고등학교도 가지않고 유학해서 바이올린장인을 목표로하는 남자친구?
부모도 선생도 동급생도 누구하나 반대하지 않고 벽에도 부딫치지 않고 꿈을 노리는 그녀?
그 두명에 의해, 당연한듯 그려져있는 있을수없는 연애의 세계?
'좋네, 이런 학창시절'
'이게 원래 있어야할 학창시절이었어'
'그렇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무엇이었나'
그렇게 본것중에서 원래는'있을수 없는 현실의 세계'가 정당화되고
종래의 '당연히 있던 현실의 세계'가 부정당한다.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것을 마치 가지고 있었던것처럼 착각시켜 그것을 부정하게한다.
이런 잔혹한 작품은 없다.
'현실을 착각시킨다'란건 애초에 악이고, '현실을 부정하게 한다'는 더욱 악이다.
あのね、ちょっとだけ言わせてもらってもいいですか。
この映画は、何一つ救いがない映画ですよ。
実際には、現実には、絶対にありえないことを、思いっきり細部までこだわった現実的な日常の世界として描くなんて、反則以外の何物でもない。
ファンタジーの世界、少女漫画の世界なら、そこにはフィクションとしての前提があり、それに則った作品としているから、見る側にも、救いがある。
それは、受け手が、初めから「嘘の世界」を前提として見ているからだ。
例えば、漫画「奇面組」や「彼氏彼女の事情」など。初めからネタの世界でしょう。
手塚治虫先生の世界でいえば、「ヒョウタンツギ」の登場により、読者は救いを得られる。
ドラマや映画なら、監督がいて役者が演技している裏舞台の世界が前提としてある。
このアニメ作品には、それらが一切無い。
見ている者は、最初の導入から始まり、この映画は日常の世界として知らず知らずにこの世界に入ってしまう。そこから、恐るべき侵食が始まっている。最後まで完璧な日常の世界として描かれているこの映画は、最後まで見たものを恐ろしくも洗脳させる。
そして、見た者は大いなる錯覚をする。
「これが、本来の現実の世界ではないのか」、と・・・
そこに描かれているものは何だろう。
高校にも行かずに留学してバイオリン作りを目指す彼氏?
親や先生や同級生に何ひとつ反対されずに壁にも遭遇せずに夢を目指す彼女?
その二人による、あたりまえのように描かれているありえない恋愛の世界?
「いいなあこんな学生生活」
「これが本来あるべき学生生活だったんだ」
「すると俺の学生生活ってなんだったんだろう」
そして、見たものの中に、本来では「ありえなかった現実の世界」が正当化され、従来の「あたりまえだった現実の世界」が否定される。
本来持っていなかったものをまるで持っていたように錯覚させ、それを否定される。
こんな残酷な作品は無い。
「現実を錯覚させる」ことがそもそもの悪であり、「現実を否定させる」ことはもっと悪である。
これを作った人は、世の中の人たちにとって、悪である。
映画史上、こんな罪作りな作品は、他に無い。
http://kanose.tumblr.com/post/29115529955/77-04-03-13-07-40-id-fkowqv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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