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기, <도야지>

<도야지>
(조선문학 3권 2호, 1937년)
 
손영기
 

  글쎄, 요즈음의 내 생활을 낱낱이 적어 보내라니, 언제는 내가 제법 제 생활이라고 가져 본 적이 있더냐?

  없는 놈에게는 담배도 당치 않다든가 담배값이 올라 요즈음은 마코의 구수한 맛과도 인연을 딱 끊구 그저 곰방대에다 히연이나 뻑뻑 빨군 음푹 빠진 눈깔을 멀뚱멀뚱 굴리고만 있을 따름이지 무슨 신통한 일이 있을 턱이 있어야지. 누군 한 달에 40원이나 월급을 타면서두 담밸 끊었는데, 넌 어쩔랴구 펑펑 놀구만 있으면서 밤낮 방에 들어박혀 담배만 물고 있누? 이렇게 바가지를 긁는 어머니 따위는 한결같이 무시해 버리고 한사코 독한 히연만 사랑했더니, 이윽고 얼굴 표정까지 독해지는가 보다. 헌데 홀아비 생활이란 정말 못할 노릇이지, 계집의 매끈매끈한 몸뚱이만 자꾸 생각나서 몸부림을 치는 밤도 한 두 번이 아니어서, 거리에서 만나는 낯익은 계집들에게 미칠 듯이 수작을 걸어보고 싶으나 구차한 내 살림살이에 생각이 미치자 수작은커녕 단 한마디의 말로 던져보는 수 없이 그만 풀이 죽어 술 생각만 나곤 하네. 허나 몇 권 안되는 책들은 팔아먹은지 오래고, 돈될만한 양복과 외투는 전당국에 귀양 보내버리고, 인젠 돈 한 푼 구경 못하게 되었으니 방금 숨이 넘어간다 할지라도 술 사먹을 돈은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니, 소주값 50원을 얻으려고 갈팡질팡 생애를 태우기보다 그저 꾹 참고 얌전하게 누더기불이나마 자리속에 드러누워 등이 아찔아찔할 듯한 불란서의 외설책이나 안고 고약한 공상에나 잠길 밖에. 이 책은 삼봉이가 동경 갈 때 나한테 잠깐 들렀다 갔는데, 그 때 내가 강탈한 것이다. 이야말로 내게는 과거 몇 해 동안을 두고 어리석게도 숭배하든 서양 아저씨들의 음습한 책들보다도 세상의 모든 계집들보다도 귀중한 보배덩어리니, 죽었으면 죽었지 내 일평생 이 책은 놓질 않겠다고 혼자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경쾌하면서도 일면 텁텁한 그 맛이란 옛날 우리 조선의 머슴 방 냄새가 야릇하게도 떠돌고 있어 자네가 밤낮 떠들고 돌아다니는 예술이니 인생이니 하는 건 뭣이 말른 예술이야? 허구 고함도 질러도 보고 싶을만치 그만치 고마운 책이거든. 자고 깨나 마치 애비원수나 만난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앉은 동양 사람들이야 은근히 속을 태우면서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할 이야기가 줄기 줄기 쏟아져 나올 때는 한창 몸이 달대로 닳은 색쉰 계집의 쌕쌕거리는 입김과도 같은 향기가 왼통 사람의 간장을 녹이려고 드니 얘 석주 -- 자네도 왠종일 책만 노려보고는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못난이들의 본일랑 아예 보지 말고 논이 있거든 논을 팔고, 밭이 있거든 밭을 팔아서라도 기생방 출입이나 시작해보게. 그때야 비로소 자네 모친의 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는 은혜를 깨달을 테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서울선 살아나갈 방도가 없어 제법 버젓하게 살림을 채려놓고 산다는 누이동생에게나 얻어먹으러 가자는 어머니 의견에 반대할 나위도 없이 좋아라고 내지 나으리 많은 부산까지 따라왔으나, 누이동생이니 오빠니 하고 정다운 듯이 부르긴 하지만 긋두 속속들이 파헤치고 보자면 요컨대 남임에 틀림없으니, 내일 아침 끼니가 있나 없나 함을 어머니 얼굴에서 찾어 볼려고 눈치만 살피는 것이 내 생활의 중대한 일과가 되었네. 지금 밤도 늦어 첫닭 우는 소리를 들은지 이미 오래거늘 하염없이 빨고 있는 히연의 지독한 쓴 맛에 입바닥이 아린 것도 어쩔 수 없이 도적 전기불의 둔한 빛 아래 포대기를 꾹 들러 덮고 곰곰이 생각하니, 애초에 내가 그릇된 스타트를 한 것은 이제와서 뉘우쳐 본들 별 수 없는 줄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무시로 일어나는 짜증에는 정말 견디기 힘드는구나. 보통학교나 졸업하고 제 이름자나 쓸 줄 알거든 그만 책 같은 것은 죄다 불에 살라버리고 꾸벅 꾸벅 돈이나 벌어가지고 장가도 가고 아들 낳구 딸 낳구 아무 소리 없이 죽는 날까지 고요히 살아나갔으면 그게 얼마나 좋겠냐?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려고 무던히 애도 써봤으나 한 번 그 몹쓸놈의 버릇에 젖은 마음은 쉽사리 씼어지질 않어, 필경은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이제 새삼스럽게 발광을 떨고 돌아다녀 봤댔자 별 수 없을 게고 허니 잔말 긴말 할 것 없이 그냥 이 어둔 냉방에 박혀 마치 돌이나 썩은 나무처럼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앉았을 밖에 아무런 도리도 없네. 헌데 내가 오늘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이렇게 엄청나게 긴 편지를 써볼려고 서두른 것은 뭐, 길게 그도 불란서 사람들이 하듯이 앞에 사람을 앉혀 놓고 이야기 하듯이 편지를 하라는 자네 분부대로 해보자는 게 아니라, 그 저 내 신세타령이나 한바탕 해놓고 죽든 살든 하고 싶어 그러는 게니 그리 알고 들어나보게.

  방이라고는 단 두 칸밖에 없는 조그만 집의 건너방을 얻어 살림이라고 채려놓고 다 늙어 빠진 어머니가 남의 집 품팔이 같은 것을 해서 근근히 끓여들이는 밥을 염체도 좋게 널름 받아먹고는 손 한 번 움직이는 일 없이, 밤이나 낮이나 들어누은 나를 안방 사람들이 무슨 병신인 줄만 알고 동정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 그리 부당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러는 게 내가 아주 사지가 멀쩡하구 나이 스물다섯이나 된 건장한 사나이란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일제히 나를 힐난하고 경멸하기 시작하였다. 허나 그들이야 욕하나마나 내 아랑곳 할 바 아니고, 설혹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역시 내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리라, 하고 마음 놓고 있었더니 이때까지는 나의 변변치 못한 위인을 다만 슬퍼하고 있을 뿐이던 어머니가 요즈음은 아주 맹렬히 기세를 부리고 대들기 시작하니, 이건 바른 말이지 처리하기 퍽 거북스럽게 되었다구. 어머니 앞에서는 우선 빼빼말른 상통도 찌푸리고 걱정하는 시늉도 내뵈이는 때도 있긴 허지만, 실상은 여태까지 그러한 문제에 마음을 썩힌 일은 단 한 번도 없고, 그저 어머니 짜증에는 두 귀를 딱 틀어막고는 뱃장을 내밀뿐. 일이 요만하고 그쳤더라면 아무런 성가신 일도 없이 그럭저럭 버텨나갔을지도 모르든 게, 세상에는 별별 친구도 다 있어 바로 우리 안방 늙은이의 아들이라나. 그 일본말 지껄이기를 좋아하는 양반이 모친 고생하는게 하 딱해서나를 정미소엔가 어딘가 소개해줄 터이니 따라오라구 그런다구 어머니가 졸라대는 걸 내가 돈을 벌다니,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고함을 버럭 질러 거절했더니 어머닌 이마에 핏줄을 세워 이 삼대 사대 원수같으니 아빌 잡아먹었으면 그만이지 어미까지 마저 잡아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하며 나보다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악을 쓰고 대드는 걸 그만 성미대로 방길로 차 넘어트리고 톡톡히 욕을 뵈고 싶으나, 그러나 어쨌든 오늘날까지 어미 밥을 얻엄거었고 또 이 뒤로도 죽을 때까지 얻어먹어야 할 터이니 차마 그러지도 못하여 저고리도 없이 이 한 겨울에 여름 와이셔츠 바람으로 바닷가에나 뒷산으로나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꼴을 남들이 봤으면 도시 사람대우를 안 할 게지만, 그건 사람들의 뜻대로 맡겨두고 난 나대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두 오랫동안 현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나 함에만 생각을 잠기게 되는 것도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나 세상 사람들이 신봉하고 있는 그 얼빠진 선악의 표준을 멸시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그리 부자연한 일도 아닌 게 아니냐? 서울에 있을 때에도 그랬지만 이곳에 와서도 내게는 쉽사리 사람들이 붙질 않아 여태 동무 하나 사귀지 못하고 나 역시 친구라는 걸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심심하면 동리 안의 일곱 살이나 여덟 살이나 그밖에 안 되는 아이들을 그 우중충한 방에 모아놓고 실없는 소리만 주고받고 웃고 떠들고 하니 어머니나 누이를 비롯하여 모두들 나를 폐인으로 대우하고 내가 눈앞에 있으나 없으나 온갖 욕을 다하고는 한달에 다만 10원 씩이라도 벌려거든 집에 붙어있고 그렇지 않거들랑 너야 어딜 가든지 네 길로 나가라고 틈만 있으면 귀찮게 구니, 내 낯이 여간 안 두터워서는 견디지 못할 터이니 거기 대한 나의 방비도 요즘 와서는 꽤 충실하여 그러한 소리를 들으면 되려 싱글싱글 웃음을 입가에 띠울 때도 있게 되었으니, 이것도 다 오랫동안의 수련의 덕택이라고 모르는 사이에 서글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나 그러한 일은 오히려 드문 편이고 최근에 이르러 갑자기 두터워진 뱃가죽을 어루만지며 좋아하는 때가 많게 된 것도 내가 이 세상에서 처세해 나가기 위해서는 부득이 그러한 태도로 자기자신을 방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가 생각되나 난 그것을 부끄러워 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고 아마 이 뒤로도 그러할 것이니 본시 이건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쩔 수 없는 삭막한 거리를 느낀 때부터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자기 이외의 모든 것에 묵살과 모멸로써 대하게 된 때문이니 이렇게 되면 자기네가 걸핏하면 덜먹거리는 소위 양심이란 것두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으니, 그러나 나는 몸은 비록 살아움직인다 할지언정 영혼은 이미 죽은지 오래라고 자네 일파가 입을 삐죽거리겠지만 세상 알고보면 그런 게 아니라 다만 양심이라 일컫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의견을 고집한다는 단순히 그뿐이니, 인젠 다시 별 수 없다고 제 스스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또한 마음 슬픈 일이 아니겠나. 가진 고생을 다해가며 아들이라고 길러 낳은 게 돈벌기는 죽기보다 싫어하고 어미를 알기를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한다고만 생각하고 여태껏 공을 들여 기른 게 아무런 보람도 없게 되었음이 원통해져 저런 때만 되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어 청승맞게도 애처로웁게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끔 깨닫지 않고 측한의 정을 가슴 한 구석에 느끼는 때도 없잖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는 내 일평생에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고 안 되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억지로 애를 쓰고 다니는 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반성할때마다 나는 이러한 쓸 데 없는 감상을 가지게되는 자기자신에 한 없이 불만을 품으며 무거운 절망속에 빠져 새로운 기쁨을 얻기에 꽤 오랫동안을 암담한 불안 속에서 허덕대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도 모두 속속들이 따져보면 어머니가 어미와 아들의 관계를 오인한 때문임에 틀림 없으니 여기서도 또한 어미가 그 아들에게 대하여 범한 많은 죄 가운데서 새로운 죄 하나를 발견하고는 우울한 표정을 지을 따름. 그밖에는 아무런 의식도 가져볼 수 없이 땀 냄새 지독한 누더기 속에 파묻혀 잠오기만 기다리며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노래 삼아 이웃 집 복희의 깊은 눈동자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혼자 좋아라고 바보같은 웃음을 억제할 수 없으니, 그 복희라는 계집애는 올해 겨우 열 세 살 밖에 안되는 보통학교 6학년인데, 언제나 연분홍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을 남몰래 사랑하기 시작하여 일곱 점만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누더기 이불에서 기여나와 그 애가 학교에 가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었다가는 아주 점잖은 채 하면서도 슬며시 그 쌀빛고운 뺨을 사뿐 만져보고는 호올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나의 일과 중에서 가장 즐겨하는 것이니, 그가 나를 대할 때는 항상 다른 어른들에게 하듯이 수줍은 듯이 약간 웃음을 입가에 띠우고는 아무 말도 없이 낯을 붉힐 따름이지만, 내 생활에서 만약 이러한 온모의 신경이 한꺼번에 흥분되는 순간이 없다면 지금 제법 이렇게 펜을 들고 자네에게 이러한 개소리를 지꺼릴 만한 기력조차 없는 빼빼 마른 고목과 다름없게 되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열 세 살의 처녀를 그리워하는 정은 더욱 더욱 간절해짐을 깨닫고 나는 마침내 틈을 타서 그를 한 번 조용히 달래가지고 언제나 둘이 정다웁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할 수 있는 동무가 되리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너무 성급히 굴다가는 일을 저질러 버릴 염려가 잇으니 아주 면밀한 계획을 세워 천천히 그의 마음을 얻어야겠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되풀이하면서도, 그저 조급증이 나서 못 견디게 애를 태우고 있었으나, 뜻하지 않고 내게 유리한 사건이 생겼으니, 그건 바로 한 열흘 전에 어머니의 군소리 섞인 울음소리에 몸서리가 나서 갈 곳 모르는 산보를 또 나가지 않을 수 없어 모진 추움에 턱이 아들아들 떨리는 것을 무릎쓰고 와이셔츠 소매 안으로 팔짱을 찌르고는 아주 내노라 하고 그만한 낯빛으로 어슬렁 어슬렁 거리 한복판으로 걸어가고 있었더니, 일이 잘 될려고 그랬는지 내가 그렇게도 못 잊어하는 복희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연분홍 저고리를 말숙하게 채려입고 바로 내 앞으로 걸어오다가 길바닥에 걸려있는 나무 판대기에 못이 박혀 있었던 것을 모르고 발 뻗었는지 그만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길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린 것은 다시 없는 좋은 기회라 아니할 수 없다고 번개같이 생각되자 나는 서슴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달려들어 못을 빼어주고는 피투성이가 된 발을 꼭 붙들어 쥐고 돌을 하나 큼직한 놈을 집어 죽겠다고 사지를 떠는 것을 들은 체 만 체하고 발이 그의 감각을 잃게 되도록 두들겨서 얼른 응급치료를 한 다음에 그가 넉넉히 걸어갈 수 있는대도 불구하고 가장 엄숙한 말소리로 내하라는 대로 안하다간 반드시 병신이 되리라고 타일른다 하기보담 오히려 위협하다 싶이하여 그를 두손으로 꽉 껴안고 결코 걸음을 빠르게 하는 법 없이 잠깐이라도 이 축복된 시간을 길게 즐길 심산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며 마침 사방이 이미 어두워졌음을 이용하여 나는 남이 들으면 변태성을 가진 놈이라고밖에는 인정치 않을만치 흥분된 목소리로 그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복희는 발도 아프긴 하겠지만 그보다도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다만 두 손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우고 내 가슴에 낯을 파묻칠 뿐이니 그 침침한 머리칼 냄새가 야릇하게도 내 관능을 자극하여 나는 그의 소녀답지 않은 뜨거운 체온을 안타깝게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마침내 나는 그의 입술을 빨고 또 빨았으니, 그때부터 그는 가끔 내방으로 놀러 오게되였고 나중에는 거의 날마다 단둘이 서로 마주 대하여 담수와 같이 맑은 사랑노릇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굴속같은 방 안에서 그를 무르팍에 안히고 말 없이 애부할 때마다 그의 너무나 어린 것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계집을 멀리한지 이미 오래인 나로서는 무리도 없는 일이지만 가끔 그가 열 세 살밖에 안되는 어린 애라는 것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잊어버리고 한 개의 성숙한 계집으로 취급하려는 것을 깨닫고는 내 스스로 내 자신의 젊음을 비웃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한 사념이 내 얼굴에까지 나타나서 그에게 적지 아니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수도 있을 법한 일임으로, 고약한 생각이 신경을 쾌롭게 하기 시작하면 의례히 나는 그를 돌려보내고 손때묻은 외설책을 어루만지며 누더기 속으로 들어갈 밖에 아무런 방도도 나지 않는 것이다. 복희가 나하고 사귀게 된 뒤로는 급속히 조숙해져서 비록 나를 단순히 저를 좋아하는 어른으로만 너기지 않고 서로를 상대로 무던히 애를 태우고 있는 사나이로서 대하게 되었다고는 할망정 그는 역시 보통학교 6학년의 철 모르는 어린애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보니 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 안되는 돈이나마 군것질할 돈이 필요하였고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는 것이 그를 민망해 할까 염려 안되는 바도 아님으로 나는 우선 이 두가지를 조치해야 되겠다고 이를 뿌드득 갈며 (중략) 게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으니 다 썩어빠진 골머리를 부둥켜 안고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복희가 하루만 우리 방에 오지 않아도 죽을 듯이 악을 쓰고 어머니에게만 화풀이를 하게 되니, 쓸데없는 일인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이렇게 한바탕 발광을 떨고는 험악한 낯빛을 지어 바닷가에 나가 내가 가장 경멸하는 청팍한 감삭에 스스로 불쾌함을 느낄 뿐 아무런 보람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허나 필경은 또 누이에게 달라붙어 돈 심원만 내놓으라고 단 일전이라도 쉽사리 내여줄 리는 만무하니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무엇이든 값나가는 것을 슬그머니 훔쳐내곤 하므로써 문제의 하나는 해결되었고 어머니는 꼴만 보아도 몸서리가 나니 볼일이 있어도 방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아주 호령을 탕탕하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는 드디어 밥 먹을 때에도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고 말았으니, 이렇게 되면 내 소원이 대강 풀렸으니 거진반 마음이 진정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결같이 불안하고 오정만 넘으면 그저 조바침을 쳐서 반 시간만에 한 번씩은 골모 끝에 가게에 시계보러 나가군 하는 것이니, 어서바삐 복희가 그 연분홍저고리를 입고 책보를 옆에 낀채 안방에서 행여 (중략) 와서 은근한 웃음을 눈에 띠우고는 말없이 내 무르팍에 앉기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니 그 끝없이 깊은 눈에 수줍어 하면서도 남 모르는 즐거움이 가득한 복희가 몸과 같이 가지고 오는 일종 안타까운 분위기를 나는 가장 사랑할 따름이지 내가 밤마다 애독하는 외설책에서 얻은 그 괴상한 지식을 그에게 응용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를 껴안고 있으면서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나이 서른이나 그밖에 안될 젊은 계집의 기름진 몸뚱이의 뭉실뭉실한 감촉이니 그에게 대해서도 여자의 연령과 성적 발육에 대한 법칙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애부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 없는 경계심이 적지 않게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한결같이 외설책만 사랑하고 따라서 계집에게 대한 탐욕은 심상한 정도를 지나쳐 것잡을 없는 상태에 이른 탓인지 가끔 뜻하지 않고 망측한 곳에 손이 가는 것을 내 스스로 놀래며 그의 표정을 살펴보는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보다 오히려 내 손을 물리칠 생각은 않고 숨만 색색 거리며 다홍빛이 되는 복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한 번 더 그의 나이가 어림을 안타깝게 여기게 되는 내 자신을 측은히 여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언제나 불쾌하게도 우울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까지 긴장을 태우고 있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군침만 삼킬 필요가 어디있나 하고 생각이 들자, 오냐 나는 다만 내뜻대로 온갖짓을 하면 그만이다, 윤리니 도덕이니 하고 덤비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어리석은 짓이요, 세상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제 욕망을 죽이는 것도 또한 얼빠진 수작이다, 하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는 복희의 치맛끈을 풀어 헤치었다. 허나 때마침 공교로웁게도 안빵영감이 편지 피지 하나 써달라고 방문을 왈칵 열고 들어오는 때는 염치 모르는 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도 어쩔 줄을 몰라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희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을 줄도 모르고 누더기 이부자리 속에 얼굴을 파묻혀 버리고 영감은 또 영감대로 감히 못들어 올 곳에 들어와 가지고 남에게 무안한 변을 당하게 하고 자기도 민망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음에, 잠깐 동안은 도로 나가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도 없고 그저 눈만 끔벅끔벅할 뿐이었으나, 나의 상대자가 올해 열 세 살박에 안되는 복희라는 것을 알자 그의 낯빛은 순간에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빛으로 변하는 것도 나에게는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스럽지 못한 변을 당하고도 그 뒤에 아무런 일도 없을 리가 만무하니, 복희의 부모를 비롯하여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이웃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한바탕 떠들썩하게 나를 책망하고 비웃고 왠갖 욕을 다 퍼부어 망신을 단단히 시켜놓았으나, 단순히 일이 그만하게 끝이었다면 나 역시 아무런 고통도 없었을 것을 그 뒤로는 도무지 복희를 만날 수 없으니 내가 그 화풀이를 죄 없는 어머니에게 할 수 밖에 없으니 그도 또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괴상한 수작을 걸려다가 실패하고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좀처럼 우리집엘 오지 않는 제매가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형님이 이미 이러한 상스럽지 못한 짓을 했고 어머님도 이 이상 더 형님을 먹여 살릴 수 없다 하시니, 서울이나 상해나 어디든지 가는 게 어떠하오? 어머님은 내가 책임지고 보양해 드릴 테니 염려마시오, 그러는 게 형님의 장래를 위해서 좋을 게고 또 그렇게 해야만 형님도 성공할 수 있노라 하며 내가 미처 성공의 뜻을 밝히기도 전에 그는 돈 20원을 내놓았다. 그건 물론 나의 반대를 예기하고 우선 돈 빛을 보임으로써 내 입을 막으려는 수작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꽤 오랫동안 생각에도 두지 못한 10원짜리 지폐 두장을 보고는 가슴이 들컴하야 맥이 탁 풀리는 것을 깨닫자 이러쿵저러쿵할 새도 없이 그만 넙즉 돈을 받아버렸더니 그는 내가 자기 제의에 찬성하는 줄로만 알고 그러면 내일 밤 차로라도 떠나도록 하시오, 하고 그밖에는 도무지 인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나가 버렸다. 허나 내가 지금 서울이나 상해를 간댔자 손발 하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나를 먹여줄 사람은 없을 터이니 내가 이 안일한 생활을 버리고 생판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된다. 창피한 꼴을 당했으니 개낯짝 아니고는 어찌 얼굴을 들고 거리에 나설 수 있느냐 하지만 그런 극성은 다른 사람들이나 할 일이지 내한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고 어머니가 나를 인제는 할 수 없으니 네 밥벌이는 네가 하라고 협박하는 건 벌써 군소리 같이 틈만 있으면 하는 말이니 이제 새삼스러히 놀랠 것도 없고 하니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제매가 주고 간 20원을 가지고 어떻게 이걸 잘 이용하여 다시 복희를 내 무르팍에 앉힐 수는 없나 하는 그러한 즐거운 공상에나 잠겨 혼자 좋아할 뿐이니 제매가 그 돈을 구하는라고 얼마나 애를 썼던 그건 내 아랑곳할 바가 아니다. 그 돈은 전혀 복희를 위해서만 쓰자고 굳게 맘먹었지만 밤이 깊어져서 사나운 겨울바람이 다무너져가는 대문을 떨썩거리는 소리를 듣고 홀애비 마음이 어찌 쓸쓸하지 않겠느냐? 그래 내일은 죽든 살든 오늘 저녁이나 한 번 호화롭게 놀아보자고 오래간만에 들어온 지폐 두 장을 포켓에 집어넣고 술가게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야 말았으니, 어디서 어떻게 먹었는지 곤드래 만드래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그 뒤는 또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껏 생각해낼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 이튿날 아침에 내가 누워있던 곳은 동래 온 촌, 어느 기생집 안방의 비단이불자리였으니 불과 20원의 돈이 아직 남아있을리 만무하니, 동래서 부산까지 30리 길을 타박타박 걸어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아직 술기가 남은 낯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이웃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야단들이었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살기가 돌며 일종 처참한 낯빛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매 또 무슨 악담이나 나오지 않나 하고 미리 똥줄이 땡겨 슬며시 포대기 속에 기어들어가선 두 귀를 딱 틀어막고 눈을 감고 잠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뜻밖에도 그 성가신 군소리는 한 마디도 쿤지룽거리지 않고 누이와 모두들 어디로 슬쩍 나가버리매 이게 대체 웬 영문이냐 하고 속으로 의아하면서도 은근히 안심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숨을 푹자고 눈을 깨어보니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어머니는 저녁끼니는 어떻게 할 작정인지 밥지을 생각도 않고 돌아다니는 모양이었으나 설마 돌아와서 나를 굶기지는 안하려니 하고 마은 놓고 누워 있었으나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내가 몸소 밥을 지어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날도 하루 종일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점심까지도 굶고 저녁때가 되어 허기장이 나서 눈은 십리도 기어들어갔으나 쌀이라고는 한 아름도 남지 않았으니 인젠 꼼작 없이 굶을 수밖에.

  이건 필시 어머니와 누이가 나를 미워하는 나머지 어머니는 누이 집에 가서 묶도록 하고 나를 단단히 혼을 띠게 해서 어디든지 내쫓을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래 사흘 동안이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밥 한 숟갈 먹지 못했으나 나는 끝끝내 이 방의 누더기 이불을 버리고 싶지는 않고 누이 집엘 찾아가서 밥을 강탈해 먹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과 같이 어머니 역시 나를 먹여 살려야 할 의무는 없는 게 아니냐? 어머니가 나를 사랑해준다든가 불쌍히(?) 여겨준다든가 하는 그러할 리는 절대로 없겠지만, 그러나 어쩐 셈인지 여태까지 나에게 밥을 주었으니 또 내한테 밥을 가지고 올지 누가 아나? 허니 주면 먹고 안 주면 별 수 있니? 굶을 수밖에. 그러나 나는 절대로 놀고먹을 수 있는 이 집을 버리지는 않을 테야 하고 어디까지 어머니와 싸워볼 결심을 단단히 먹고 있다. 온 세계의 부모네들이 제 자식을 기르는 것을 보면 나나 자네나 아무튼지 사람의 원수는 그네들의 어버이의 자식을 자기네들의 종이나 소유물로만 여기고 있는 그 아니꼬운 어버이의 권리이니 자기네들이 즐거울 때는 마치 개새끼 핥듯이 자식을 핥다가도 좀 기분이 나쁘면 그만 죄 없는 자식들에게 그 화풀이를 하게 되고 자기네들의 분부대로 하지 않는다고 때리고 차고 꾸짖고 하든 그네들이 늙어빠진 뒤에는 그렇게도 무책임하게 구는 자식들에게 부모의 은혜니 무어니 하고 보은을 강요하니 이 세상에 사람의 부모들보다 흉악하고도 교갈한 것은 없을 게다. 자식을 낳으려거든 일생을 자식의 양육에만 바칠 준비가 없이는 결국 이러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니 자네도 장차 만약 남의 생각을 그대로 쫓기를 싫어하고 제 생각만을 고집하는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에게 미움과 원한을 받을 따름일 것이니 그리 짐작하고 자식이 바보가 되도록 교육시키는 게 자네 늙은 뒷일을 생각해서 유리할 게다. 허나 이러한 개도 안 먹을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자네에게 곡 한가지의 청이 있으니, 내 지금 배가고파 못 견디겠지만 그보담도 더 술 생각이 나서 도적질이라도 순사만 없으면 하겠다고 생각할 만치 되었으니 소주 값 50전만 보내주게. 꼭 보내주게 — .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