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독초>
<독초>
(조선 문학 제 20호, 1939년. )
이용우
(*원문의 일본어는 번역이 없으나, 옮기면서 이탤릭체로 번역을 따로 달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본들 나는 이 일을 도시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 지 알 길이 없었다. 이것을 기회로 그만 친연 하루미(春美)와 손을 끊어 버릴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너무 비겁한 짓 같다. 하기야 나는 하루미와 그 읽음줄을 끊어버리려고 근 3년을 두고 벼루고 온 터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되려 점점 더 한결 깊은 구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미에게 품고 있는 증오감은 좀처럼 사라지거나 엷어지는 것은 않은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하루미와 사귀게 될 애당초부터 그 여자에게 애정이란 걸 느껴본 배 없다. 오직 있다면 그것은 육체에 대한 호기와 공포와 증오뿐일 것이다. 내가 동경(東京)유학 때에 처음으로 하루미란 이성(異性)을 알게되었을 때 나는 그보다 넷이나 나이 아래였으며 뿐 아니라 그는 이미 임자 있는 모이었으며 또한 두 살 먹이 딸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에게 애정을 갖기에 앞서 그의 체온을 미리 맛봤던 것이다. 이것은 5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하루미와 함께 겪어온 지나간 5년 동안의 그 몸서리치는 경력을 회상해볼 의사는 조금도 없다. 그러기커녕 내가 이 글에서 의도하는 바는 순전히 딴 곳에 있는 것이다.
…보기에 하루미는 퍽은 얌전하고 순직한 여자이다. 허나 아니 그러기에 그는 또한 불살을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일면을 가슴 깊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 편굴적인 그의 정열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비단 나뿐이 아니리라, 그 누구나 이에 감동하고 꿋꿋이 견뎌버틸 정력의 소유자는 드므리라 나는 믿는 바이다. 그기에 더군다나 나와 같은 약질엔 이것은 너무나 강박적인 것이다. 나는 그기에서 성애로 부러의 향락에 도취되기는커녕 오로지 육제체적 고통과 불쾌를 느낄 따름이었다.
나는 하루미와 헤여지기로 몇 번이나 아니 몇 십 번이나 결심해온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까지 그와 손을 끊지 못한 채 내려온 것은 그야말로, 하루미의 천성으로 마련해 있는 그 “코케트”한 요술로 말미암음이다. 내가 그 하루미로부터 멀어지려 할 즈음엔 그는 반드시 그의 독특한 민감으로 이를 직감하고 그는 의식적으로 딴 사내들을 가까웁게하므로써 나로 하여금 가슴을 할퀴는 질투의 회루바람 속으로 감겨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장난으로 하여 하루미는 한때 모 전문학생과 깊은 관계에 이르렀던 일까지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질투라는 — 일종 야릇한 애욕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나는 오직 그것의 밥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지를 갖춘 자로선 상상조차 못할 가지가지의 추행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해던지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선 자기를 제어할 아무런 나위도 없는 것이며 한 갓 치한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일만은 전과는 그 정도와 성질이 틀린다.
「그래, 넌 무슨 작정이 있었겠지…」
「작정은 무슨 작정이에요…」
「흥…」
너무나 터무니가 안나서 나는 뭐라고 그를 책해야 좋을지 도시 말문이 터지지가 않는다.
「네가 그런 대답한 일을 저지를 바엔 그만한 각오가 있었겠지… 넌 그래 네 자신이 저지른행동에 아무랜 책임도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느 말이냐」
「…게 본시 다 누구 탓인데 그래요. … 왜 저만 가지고 볶는 거에요… 당신은 그럼 조금도 관계나 책임 없다는 말이에요…?」
「뭐이…?」
이건 도무지 나를 어떻게 두고 하는 말인가… 자기자 제 의사로 한 매춘 행동에 내가 관계가 무슨 관계며 또는 책임을 지다니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냐…? 생각하니 생각할 수록 하도 어이가 없어 나는 그저 물끄러미 하루미의 거동만 바라볼 뿐 한동안 넋잃은 사람처럼 머 — ㅇ 하니 해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그기 책임이 있다니…, 네가 그놈하고 배가 맞어 한 짓에 내가 관계라니…?」
「그럼 그렇지가 않어요…? 그날 당신이 약속대로 와 주셨으면 제가 왜 그런 짓을 했겠어요?」
이 말을 내가 좀 더 부언해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 그날 적 내가 하루미에게 같이 인천엘 놀이를 갖고 약속한 날 그날서 말고(일이 공교롭게 되는라고) 아내가 한사코 친정에를 가야겠다는 것이다. 하기는 그 전부터 아내가 친정에 대사(大事) — 장인의 회갑 — 가 있으니 꼭 이번 다녀와야겠다는 정을 한 두번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기일이 멀었으니 그때 때맞춰 가기만하면 되려니 하고 그다지 귀담어 듣지도 않은 체 이럭저럭 내려오던 것이 바로 이날서 말고 아내를 꼭 보내야만 할 절박한 지경에 빠지고 만 것이다. — 라는 것은 바로 그 이튿날이 회갑잔칫날이기 때문에…
하기야 내가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니까 아내만 얼른 보낸 다음 하루미에게로 갔으면 아무 일 없었겠지만 그러나 일이 그렇게 쉽사리 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다지 넉넉치가 못한 용돈에서 가까스로 아내의 여비니 또는 오래간만에 친정에 다니러가는지라 맨손으로 갈 수가 없으니 뭐나 들고 가야 한대서 그 돈이며 하여 다 치루어주고 보니 내 주머니는 텅 비이게 되고 뿐아니라 이리저리 분주히 날뒤다 보니 하루미와 약속한 시간도 두 시간이 훨씬 넘은지 오래였다. 그래 나는 지금 이 길로 그 약속장소에 가본들 으레 하루미는 있지 않으려니 하고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가 홀에 나올 오소데(遅出)시간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카페에 갔을 때 아직 하루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기다리다 못해 발끈하는 성미에 대신 딴 어떤 놈을 차고서 이제 곧 돌아다니고 있는 게라 추측하고 그다지 마음에 담지도 않은 체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허나 시간 차차 지날 수록 나느 초조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려니 내 곁에 아까부터 서비스하고 있든 치요라는 여급이 그도 좀 수상적게 생각들은 것이었던지 —
「変ね、春美さん…どうかしたのか知ら…
이상하네, 하루미 씨… 어떻게 된 거지…」한다.
이 소리가 가뜩이나 나는 기다리기가 지겨워지는 것이다.
「 — 모르겄어? 누구하고 나갔는지…」
「글쎄요…」
하다가 구태여 숨겨주어야 무슨 수를 보겠다고 생각했든지(뿐 아니라 평소에도 치요와 하루미는 서로 못마땅해 하는 사이였기도 하였기에…) 그는 바름대로 좍좍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 나와 함께 인천에를 간다고 수선을 떨곤 아침부터 나간 하루미가 한 두어시간 지나서 왠 화를 잔뜩 내가지곤 다시 홀로 돌아와 때마침 낮부터 와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손님의 테이블로 가서 그사람이 처음 온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손님 술을 함부로 좌 — ㄱ 좌 — ㄱ 들이키고 있더니 자기는 오늘 오소방(遅番)이니 어데 함께 놀러가지ㅡㄹㄹ 않겠느냐고 그 사내를 꼬여 한참 뭐인지 소군소군 속삭이드니 조금있다 — 같이 나간 것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하는 말이 — 다같이 이런 여급짓은 하고 있을망정 하루미처럼 (보기엔 그렇지도 않으면서도) 그렇게 「浮気なをんな바람난 여자」는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ーあのひとの気が知れないわ…初めて逢ふお客さんかと平気で遊び歩くなんて、ちょっと大胆過ぎるわねえ
— 그 사람 마음을 모르겠네… 처음 만남 손님하고 아무렇지 않게 놀러나가다니, 좀 대담하지 않나」
그러지 않아더 머리가 뒤숭숭해지는 데에다가, 더구나 이소리를 들으니 견딜 수가 없다. 참을 수 없는 여러가지 의혹이 내 가슴속을 쪼각쪼각으로 쥐어 뜯는 것이다. 나는 기어코 오늘 밤으로 하루미를 만나 무슨 요절을 낼 작정으로 몇 시간이 되든지 이 카페가 다하기까지 가디려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열 두시가 지나고 한 시가 되어 이윽고 홀이 문을 닫기까지 종내 하루미는 돌아오지를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날밤 잠 한잠 이루지 못했다. 쉴새없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복잡하게 엉크러진 잡념에 시달려 나는 이내 미칠 것 같었다. 이미 질투라는 감정을 떠난 하루미의 신변을 염려하는 불안과 의혹은 나로 하여금 고민의 깊은 나락 속으로 빠트리는 것이었다. 마치 예리한 칼날로 내장을 휘저어 파헤치듯한 쓰라림이었다. 새벽녁 즘에야 겨우 눈을 붙일만하다가 그대로 늦잠에서 깜빡하고 깨는 즉시로 나는 카페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직 하루미는 돌아오지 않다. 나는 참다 못해 까페로 가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나와 하루미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그 여급들이 하두 내 꼴이 보기에 딱한지 제각기들 위로해주며 한편으론 하루미의 하는 짓을 비난하는 것이었으나 그러한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리 없었다. 몸이 바싹바싹 말을 듯한 초조와 정체모를 불안에 이내 마음이 광폭한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나는 거지반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함부러 독한 술을 들이키고는 어데다 붙일 곳 없는 마음의 공허에 헤매였다.
그러나 이날 밤도 곳내 하루미는 돌아오지를 않았다. 꼬박 사흘밤을 이 모진 타격에 지친 나머지 이윽고 나흘만에야 뻔뻔스레 돌아온 하루미를 보고 나는 무슨 말부터 어떻게 그를 족쳐야 할지 한참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아무 소리 않을 테니 똑바른대로 말 해봐…」
「부산엘 좀 갔다왔어요 동무허구…」
서슴치 않고 하루미는 당장에 이렇게 대구한다.
「부산에…? 동무라니… 이년아!」
하고 내 자신도 채 의식하기 전에 왼편 손주먹이 하루미의 뺨을 힘껏 내려갈겼다. 가슴속에 꾹 눌려있던 격정이 한번 터져나올 구멍을 발견하자마자 나 자신도 이를 어떻게 것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년아! 동무가 다 뭐야… 꼭 바로 말해, 어느 뭐하는 놈이냐? 함께 간 놈이…」
나는 이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날뛴다.
「그렇게 골을 내시면 어떻게 대답을 할 수가 있어요. 제가 어데 뭐 숨길려는 거에요…?」
막상 제쳐놓고 시작을 하니 그는 내 으기에 눌리어 그만 설설 기는 것이다.
「그래…? 빨리 말해…」
「店に来てお客さんに誘はれて釜山へ遊びに行ってたわよ。その人に来だそちらに用事が残ってるからって、妻だけ先に戻って来ましたの…
가게에 온 손님한테 이끌려서 부산에 놀러갔어요. 그 사람에게 온 그쪽에 일이 남았다길래, 저만 먼저 돌아온거에요…」
「ううむ…売女!
으음… 창녀!」
나는 느닷없이 하루미의 머리채를 감아쥐곤 옆으로 홱 뿌리쳤다. 「ご免なさい…ああご免よ…ご免! 미안해요…아아 미안해…미안!」하는 소리가 절로 하루미의 입으로부터 연거푸 쏟아진다. 보다 못해 다른 여급들이 와 — 하고 말리려 다가오는 것을 나는 한편 손으로 떠밀어 막었다.
「さ行かふ…今日から此の店は止すんだ!…XX館(이곳은 우리들이 일수 잘가는 단골여관이었다)行かふ
자 가자… 오늘부터 이 가게는 그만두는 거야! …XX 관에 가자」
나는 그 당장으로 하루미를 끄을고 여관으로 들어온 것이다. 조용한 여관 한방에 들어앉자 나는 마음이 좀 진정해지는 것 같았다. 담배를 태워물고 후 — 하고 길게 연기를 내뿜곤 —
「もう気が落着いて来たから乱暴はしない…有りのままを汚してご覧…
이젠 마음이 좀 안정되었으니 난폭한 짓은 안해… 있는 그대로 말해봐…」
「여기서 또 난폭한 짓을 하면 소리를 지를 테에요」
하고 하루미는 약간 나에게 대한 경계심을 품고서 그동안의 경과를 차근차근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 나와 약속한 그날 하루미는 새벽같이 서둘러 약속한 장소엘 나갔다 그러나 시간반이 지나도록 눈이빠지게 기다려 봐야 끝내 내가 오지 않음에 그는 고까운 생각이 들거를 이는 필시 내 아내의 요사로 말미암음이 틀림없다 하여 그리고 생각하니 이러한 처자가 다 잇는 사내에게 붙어 있다간 필경은 자기는 헛물만 킬 따름일 것이다 — 이렇게 꼼꼼이 생각해보니 그는 오늘날까지 지내온 일이 모두 분하고 제 신세가 가엾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기도 아직은 채 늙기전에 어떻게 딴 방도를 세워야지 하는 초조와 또는 이유모를 시기에 가슴을 파메키며 도로 홀로 돌아왓을 때 마침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이 있기에 그는 그 사내와 더불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내 취해 버려서 횡설수설하든 나머지 같이 놀러를 가지 않겠냐 하니 그 자의 말이 자기는 지금 볼 일로 부산엘 가는 길이니 이왕에 함께 가서 몇일 재미있게 놀고 오질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고까운 생각에 홧김이라 또는 취한 김에 생각할 여지 없이 하루미는 이를 승낙하고 그리하여 이번 이 요절을 낸 것이었다.
「뭐 갓 만나는 사람과 그런 먼곳에를 간다구 걸 그리 중대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 며칠 자유롭게 향락한다 치면 그만 아니여…」
사내가 이렇게 꼬이는 바람에
「ええいいわ…。一時の享楽だけの事にしてねえ…
응 좋아… 한 순간의 향락만으로 하자…」
「 — 이것이 한 두번째가 아니구 같이 늘 그럴 테서야 내가 어떻게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니 나는 분함과 질투에 내 자신을 지탱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너같은 요부를 길내기 상대했다간 첫재 내 낡은 신경이 이에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다시금 이렇게 말하고 하루미의 안색을 보살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마치 신경을 어디다 빼둔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그의 표정엔 나타나지 않는다.
「한두번이 아닌 이상 나도 이 이상은 더는 참을수가 없다. … 이번에야 말로 너와 갈라지는 수밖에… 그러는 수밖에 없어…」
「…」
「왜 말이 없어…?」
「…」
「응? 왜 말이 없어 응… 응?」
연겨푸 곧 물어도 영영 대꾸가 없다. 내가 정 짜증을 내며 조급히 서둘면 그럴 수록 하루미는 더욱이나 화석처럼 꿋꿋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간장이 살살 녹는 것 같은 게 속이 푹푹 썩어들어간다.
「정말을 않을 테냐…? 응?」
홧김에 참다 못해 소리르 버럭 지르니 그제서야 질겁을 하고 그는 황급히 긴장한 표정을 띄며 —
「また乱暴するの…?
또 난폭한 짓 할 거야…?」
하고 자리를 비켜서며 내 동작을 감시한다. 그 팔에 나는 뱃장이 수틀렸다.
「그같은 매춘부…」
하고서 왈칵 달겨들어 그의 등가죽을 힘껏 후려갈기고는 그래도 시원치가 않아 양빰을 두서너처리 쳤다.
「너같은 년은 폭력으로 처치하는 수밖에 없다. 그때 그놈은 뭣하는 놈이냐… 말해…」
「…」
「응? 뭣하는 놈이야…?」
「모르겠어요…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뭐제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라든가 좋아한다든가 한 게 아니라 단지 당신에게 품은 불만이 터져 화풀이 셈잡구 한때 장난으로 한 짓에 지나지가 않어요…?」
「뭐이? 화풀이… 한때 장난…?」
하고 나는 그만 북바쳐 오르는 격분에 못이겨 사지를 파르르 떨며 한참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리 뭇남자를 상대로 웃음을 파는 게 직업인 여급이로기서니 그래 그가 가진 정조란 오직 그때의 향락의 도구 — 아니 화풀이의 방변에 지나지 못하는 거라한 값싼 물건이었든가… 그렇다면 이러한 헐값의 계집을 상대로 갈팡질팡한 나라는 자는 그에 못지 않게 추한 무가치한 인격에 지나지 못한 게 아니다… — 이러한 상념이 나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망쳐버리는 것이었다.
「…이년아 너같은 — 정조를 단지 어떤 방편으로밖엔 인식치 못하는 그런 타락에 빠진 계집을 나는 더 이상 같이 할 수는 없다…여자로서의 그 프라이드라든가 수치라는 것을 모두 벗어제치고 막 나선 그런 계집년을 … 자 그럼 이길로 너와는 갈라서도록 하자…여기 대해서 뭐 별다른 이의가 있을 리 없겠지?」
「당신이 정 제가 싫어서 헤어지고 싶다면야 전들 어떻게 하는 수 없지요…」
이건 바로 제 잘못은 두고 되려 화를 내며 퉁명스리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일종 그의 (負惜み원한)라 하고 멸시해버리는 것이었다.
「ーかー、ちや妻、貴方と別れた後はどんなことでも自分勝手にしますわよ…いいかねえ… — 그럼 — , 저, 당신과 헤어진 뒤엔 어떤 일이든 제 맘대로 하겠어요… 상관없겠죠…」
「그야 네 마음대루지… 갈라진 다음에야 너와 나와는 딴 남이니까…」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다가 문득 나는 가슴 속에 꾹 질리는 가시를 삼키코는 멈칫해지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하든지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해본다는 거냐…?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뭐 끄가짓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기야 나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
「그럼 난 갈테다… 이후론 다시는 너와 만날 일도 없을 테니 이것이 최후니깐 그리 알어…」
하고 그 바람으로 나는 문밖을 홱 나와버렷다. 그러나 속으로 의례 하루미가 뭐라하고 나를 되부르리 짐작한 것이, 허나 방 안에선 도시 아무런 기척도 없다. 그러니 또다시 슬그머니 화가 북받치는 것이나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이층 계단을 유난스레 쿵쿵 굴리며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현관 밖에 까지를 채 나서지 못하고 되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どんなことでも自分勝手にしますよ어떤 일이든 제 맘대로 하겠어요」라니…그것은 하루미가 설명할 것도 없이 나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꼭 쥐고 노오 감시하고 있더래도 그는 예사로 그런 짓을 저지르는 터에 만약 이후로 하루미가 완전히 나와의 얽을 줄(絆)로 부터 해방되는 날이면 이놈 저놈 가릴 것 없이 어느 누구하고 「그야말로」 무슨 짓을 저질러서 신세까지를 망쳐버릴른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직은 그래도 제 청춘을 믿고 — (사실은 얼마 남지못한…) —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타락의 구렁으로 뛰어 들어가다간 그러나 이윽고 제자신이 악몽에서 깨었을 즈음 벌써 다시는 그는 거기에서 몸을 구출해 낼 수 없는 깊은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을 때 그제서야 새삼스레 뉘우친들 이미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이냐… 그렇다, 나는… 미우나 고우나 내가 그를붙들어주지 않고선 누가 하루미를 그의 자멸의 길에서 구해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니 그보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루미가 번연히 딴 뭇사내들의 장난감이 되어 짓밟힐 꼴을 그냥 보고 잇을 수는 도저 히 없는 것이다. 왜 딴 남들에게 그를 맡겨 둔단 말이냐… 내 자신이 손수 그를 짓 짓밟아 삐대어버리는 게 상수가 아니냐…
「…이봐… 그럼 넌 다시는 이 뒤로 그놈과 만나지 않기를 내게 약속하겠지. 그리고 지금 있는 카페도 오늘 이 당장으로 그만두기로 하고…」
다부 방안으로 되돌아온 나는 어쩐지 좀 싱겁기도 하고 어색쩍은 것이었으나, 국 참어 삼키곤 곤댓바람으로 이렇게 말을 끄집어냈다.
「네, 약속해요…」
하루미는 내가 되돌아온 것을 보고도 의례 그러려니 미리 짐작해 있었다는 듯이 (전에도 이것이 내 상습이었깅 그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예사로운 태도로 조롱하듯 빙그레하며 대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비위를 약간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그것쯤은 받아 싸다하였다.
「다음으로 또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때는 정 용서치 않을 테야… 생각하겠지…?」
하고 나는 또 한 번 도사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것이 김빠진 위협 — 패배자의 군소리 — 다 자인하지 않을 수없었다.
「뭐 제가 다시 그이를 만나야 할 무엇이 있다는 말에요…? 그런 사람은 한 번 여자와 상관하면 그만이에요…」
이 소리에 나는 또다시 새로운 질투가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이런 망할 계집년이 있나… 그래 그놈이 자기를 한때 장난감으로 삼고 한 짓이란 걸 제자신이 번연히 알구 있으면서도 그런 놈하고 뱃장이 맞아서 이런 죄를 저질러놓다니… 허나 나는 꾹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나는 그 모질스런 — 살이 바싹바싹 말라들어갈 것만 같은 그러한 고민 속으로 다시금 휩쓸려 들어가기가 몸서리난다기 보다 나의 낡은 신경은 더 이상이기에 지탱해나갈 기력이 없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놈은 한 번 여자를 자유로 한 다음엔 이건 언제면 의례 제맘대로 되는 물건이라고 인정해버리는 거야…」
「누가 그렇게 해주나요… 뭐이 나이 어린 숫처녀도 아니겠구…」
담기 있게 이렇게 말하는 그 태도에 나는 안심하고, 자 그럼 이번일은 이걸로 그만두기로 하구… 헌데 넌 곧 오늘밤 새로라도 카페를 그만두고 짐을 단속해서 이 여관으로 옮겨오기로 하라했다. 하루미는 순순히 내말을 긍정하고 그런다음 갑자기 그의 두 깜장 눈동자는 누가에 이상한 윤택을 띄며 무엇을 애원하는 것이었다.
나와의 약속대로 하루미는 그날 즉시 카페를 그만두고 여관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그리고 묵고있는 동안 그러나 딴 곳 마땅한 일자리는 그리 쉽사리 찾아낼 수 없었다. 나이가 근 삼십에 가까워지는 이 즈음의 하루미로선 전과는 딴판이었다. 하루를 왠종일 있을 곳을 구해봐야 헛수고를 하고 돌아와서는 하루미는 그 어데다 붙일 곳 없는 쓰라린 공허를 내게다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貴男の為に何時でも此んな苦労を繰替えねばなりませんのよ…妻、もう厭です勤めるの厭…
당신을 위해서 언제나 이런 고생을 또 해야만하는 건가요… 저, 더는 싫어요 일하기 싫어…」
하고는 마음껏 울어대며 나를 못살게 조르는 것이다.
「빨리 어떻게던 제 몸을 처신해주셔야지… 정 이대로 나가다간 저는 어떻게 될 것이에요…? 언제까지 이 여급짓을 해야 옳단 말에요…? 싫어요. 전… 이대로 일평생 이 여관에 묶고 있을 테야요」
청춘이 다해간다는 사실 — 이 너무나 엄청난 사실이 적실히 의식면에 나타나게 된 이 즈음 이에 대한 하루미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초조는 그로 하여금 조금의 용서할 나위도 없이 뼈마디에 닿는 쓰라림 속으로 이끌어 드리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내 아내의 젊음에 대한 하루미의 시기는 더욱이나 그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내 말실수로 붙어도 그는 그 칼날 같은 민감으로써 용하게 끈을 잡아 나를 놀래게 하며 또한 제 자신을 고민 속으로 차던지는 것이었다.
「こんどこそ、妻、働く所を見つけたら一所懸命に働くわ…、絶対に貴方なんかに勤告は教へないことよ…
이번에야말로, 저, 일할 곳을 찾으면 최선을 다해 일할 거에요…, 절대로 당신따위에겐 알려주질 않을 거에요..」
그러나 이윽고 하루미는 일주일째 되던 날 어느 조그마한 바에 있을 자리를 구해온 것이었다. 허나 그 바의 경영주는 조선인이고 따라서 거기 있는 여급들도 내지인 조선여자가 뒤섞인 그러한 보잘 것 없는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오는 손님이래야 가히 짐작할만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어쩐지 마음이 놓여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 라기보다 차마 나는 하루미의 그 요새로 갑자기 주름살이 심해진 그 얼굴을 정면으로 똑바로 들여다보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는 하루미를 구태여 전의 카페에 못있게까지 할 것은 아니하였을거늘 하고 뉘우쳐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곳이라면 그만두기로 하지 그래… 뭐급히 서둘 것 없이 천천히 좀 더 나은 데로 골라보기로 하자구」
「아녜요. 제 몸이 좀 되어보세요… 있을 곳도 없이 우두커니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어찌나 답답한 노릇인가를…」
나는 더이상 그를 만류할 아무런 기력도 용기도 없었으나 허나 나는 몹시 내 자신이 모욕과 가책을 당하는 것 같은 불쾌를 어이할 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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