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수용을 통한 오타쿠 세대론 (3)
▶ 하루히의 소비자 ② -- 2006년 이후 = 오타쿠 제 4세대
<하루히>는 2006년에 쿄토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TV 애니메화 되어, 일대 붐이 되었다. 이후의 <하루히>를 지지한 층, 그 청소년층이야말로 오타쿠 제 4세대이다.
제 4세대가 <하루히>를 지지한 것은 <신나는 것>, <화제성(*네타성)>, <사무침>이라는 핵심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SF나 미스테리의 두꺼운 교양을 느끼게 하는 <차별화 요소>를 가진 작품이었기 대문이다. 일상을 베이스로 한 캐릭터의 커뮤니케이션이 <신나고> 애니메이션의 엔딩 스탭롤에 흐르는 <하루히 댄스>라 불리우는 댄스가 <화제성>을 갖고, 가끔씩 보이는 쿈의 뜨거운 진면목이 <사무치는 것>이었다.
제 4세대와 제 3세대에서는 <신나는 것>과 <사무침> (혹은 <절실함>)의 부분은 수요가 겹치지만, 작품에 <과잉함>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 가장 다르다. 여기서는 제 4세대의 특징을 묘사하고, <하루히>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에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3세대와 제 4세대의 차이에 대하여, 알기 쉬운 예로 <에바>의 수용의 차이를 서술하여 비교해보도록 하자.
"왜 라이트노벨이라는 미디어에서 애니메이션 <에바> 이야기를?'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바>는 오타쿠 역사에 있어서 <기동전사 건담>과 함께 사회 현상이 된 소수의 작품이며, <라이트 노벨의 삼층구조>* 의 중단에 위치하는 오타쿠 문화의 조류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역자주) 본서에서는 라이트 노벨의 세그먼트를 세분화 하기 위해 삼층 구조로 사용하였다. 라이트 노벨의 삼층 구조는 구체적으로는 아래 층부터 ⓐ 엔터테인먼트 일반 ⓑ 오타쿠 문화 ⓒ 라이트노벨만의 특성이다. 때문에 이이다 이치시는 라이트노벨의 경쟁 상대를 순문학 등이 아니라 같은 오타쿠 문화의 몬헌이나 애니메, 만화 등으로 보았다.
반복하지만, 2000년대의 라이트 노벨계를 채웠던 <세카이 계>라 불리우는 작품군은 <에바>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루히>는 그러한 말미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취급했던 작품의 대부분은 그러한 분위기가 사라진 뒤에 등장한 것이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토라도라>, <내여귀>, <바보와 테스트와 소환수>, <제로의 사역마> 등
ㅇ <에바>는 <14세 소년소녀의 자의식 이야기>인가? 세대에 의한 수용 차이.
<에바> 세대, 즉 제 3세대와 <하루히> 이후의 세대, 즉 제 4세대와의 결정적 차이는,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자의식이 비틀려있느냐, 삐뚤어짐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제 4세대는 <오타쿠>라더라도, 상당히 구김살이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내가 중고생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얻은 인상으로, 정량적인 데이터에 의한 확증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키하바라에서 오타쿠 계의 라이브 스테이즈와 클럽을 운영하는 후쿠시마 마이코의 저작 <일본의 젊은이는 불행하지 않다>와 동일한 모양새의 인상을 적고 있기에, 그렇게나 논리비약적인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인상>과 베스트셀러 라이트 노벨의 시장동향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라이트노벨의 주독자층인 젊은 오타쿠는, 구세대의 <오타쿠> 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10대 시절을 지낸 필자와 같은 제 3세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07년도 이후 리메이크 된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과의 구별을 위해, 90년대 작품을 <구에바>, 신극장판을 <신에바>라 표기한다)을, 14세의 소년 소녀인 이키리 신지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아야나미 레이와같은 주요 캐릭터에게 감정이입하며 감상했다. 캐릭터 간의 관계가 매력적인 일상 파트는 <신나고>, 시리어스 파트에서는 <이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로써, 사춘기의 <절실한> 자의식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비교적 일반적이었다. 신문이나 각종 미디어에서도 그렇게 보도되었다.
오카다 토시오는 <오타쿠학 입문>에서, 오타쿠의 작품 감상 방법이나 가치관을 해설하며, 오타쿠를 독자적인 시점에서 작품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작자의 성장을 지켜보며 즐기는 <순수한 눈>, 작품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구조를 찾아내는 과학자의 시점, 즉 <장인의 눈>, 작품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하는 <통하는 눈>을 가진 존재라고 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오타쿠 전반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제 1세대에 특히 발견되는 경향이었다. 제 3세대에는 그러한 <눈>이 없었다.
<구에바>에서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오타쿠 제 1세대 창작자)가 특촬이나 SF 대표되는 방대한 오타쿠 지식(제 1세대의 오타쿠 지식)을 강하게 투입하 작품이었으나, 인용의 본래 네타를 지적해가며 즐거워 한 오타쿠 1세대적인 소비방법 (세 개의 눈을 통한 감상방법) 은, 그것을 알지 못한 제 3세대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 3세대의 남자애들 대부분은 <구에바>를 좀 더 알고 싶어해서, 당시 계속 간행된 유상무상의 <나조홍>(작품에 묻혀있지만 해설되지 않은 복선이나 설명되지 않은 설정이나, 상기와 같은 <본래 네타>를 독해하기 위한 해설본이나 평론서)을 사면서, <구 에바>의 본래 네타가 된 <울트라맨>이나 나가이 고의 <데빌맨>등을 접하고 오타쿠적 교양이 다소 생겨났다. <구 에바>의 <과잉함>에 유혹되, 그 원천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그러한 오타쿠 제 3세대는 2007년부터 리메이크 된 <신 에바>에 대하여 평가가 이분된다.*
* 역자 주) 본서의 발간 당시 2012년 4월으로, 아직 에바 Q가 일본에서도 상영되지 않은 시점이다.
<신에바>는 <구에바>에서 보여진 자의식의 이야기적인 측면이나 전위적인 연출 (영상기법이나, 흐느적거리는 만화같은 애니메이션의 삽입 등)이 후퇴하고 순수한 엔터테인먼트 색이 강해졌다. <과잉함>이 얇아졌단 얘기다.
그 중에서도, 과거에 <로봇에 타고 싶지 않다>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지에 대하여 굉장히 고민한다>와 같은 내향적인 소년으로서 조형된 주인공인 신지가, <신에바>의 두번째 작품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이하 <파>)에서는 <구에바>의 인상과는 완전히 다를 정도로, 어떤 때에는 진취적으로 변해, 할 때는 하는 캐릭터로 성격설정이 변경되었던 것이, 평가를 나눈 이유가 되었다.
<구에바>에 열광하는 사람은 "이런 건 <에바>가 아니다. 신지가 아니다"라고 전면 부정하고, 어떤 의미에서 어른스러운 감상 태도를 갖게 된 사람은 <이건 이거대로 괜찮지 않나>라고 한다던가, 취직해서 책임을 지는 그야말로 <도망치면 안돼>라는 상황에 처하게 된 지금의 자신에게는 이러한 쪽이 맞다는,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할 때는 하는 것이 지금의 스타일>이라고 느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타쿠 제 4세대는 어떤가. 필자는 <파> 공개 후에 중고생에게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은 전체적으로 <신 에바>의 높은 엔터테인먼트성에 솔직히 반응하며, 평가는 대부분 높았다.
반면 <구 에바> (또한 동여상 사이트를 통해 보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의 신지가 우우뷰단한 것에 대해 <짱난다うざい>라고 (주의를 촉구하지만, 지금의 10대가 사용하는 <짱난다> <기분나빠> <리얼충>과 같은 말은 필자인 제 3세대가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운 뉘앙스이며 그렇게까지 공격적이지 않다) 말했다.
<파>에서 신지가 아야나미를 도우러 가는 부분을 두고 <박수치고 싶었다>라는 의견을 낼 정도로, 제 3세대의 어떤 의미에서는 순진하게 <이런 건 <에바>가 아니야!>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순진한 반응을 나타낸 것은, 제 2세대나 제 3세대가 <에바>를 대단히 <자신의 이야기>로써 자의식과 싱크로해,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보는 것에서 유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90년대적인 <절실함>과 2000년대적인 <사무침>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반면 4세대는, 신지나 아스카의 모습에서 <가볍게 중학교 레벨을 넘어섰네 (= 같은 나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저런 귀찮은 일 생각해 본 적 없어>라는 의견이 대세였으며, 필자들과 같은 작품을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상 포인트(가치관)이 변해있었다. <신지는 나 자신이다!>라고 생각해 <파>의 변질에 분통을 터뜨리는 제 3세대 오타쿠와는 달랐다.
제 4세대에게 <에바> 시리즈 중에 제일 평가가 낮은 것은 <여름 에바>라 불리우는 TV 방영 후에 제작된 구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 Air ~ 진심을 그대에게> 였다. "신지가 우유부단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 그 이유였다.
주인공인 신지가 고민하고 기민해가며 <오메데토>라고 갑작스럽게 다른 캐릭터들에게 축하받은 <구에바>의 마지막 두 화는 방영 당시에 윗세대인 제 1세대 평가로는 <자기계발 세미나 같다> <신흥 종교같다> 란 취급을 받았으나, 제 4세대의 평가는 <신지가 긍정적으로 되었으니까, 뭔지는 잘 몰라도 좋다고 생각해>라는 것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제 4세대는 후퇴적인 자의식을 싫어하는 것이리라 -- 이것은 <강각의 레기오스>의 레이폰이 시리즈가 진행해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빨리 좀 정해라> <아직도야?> 라는 비판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과도 일치한다.
ㅇ 제 4세대의 소비생활 -- 입소문과 니코동으로부터 <에바>를 알다 = <화제가 된다>의 원천
제 4세대는 <신 에바>를 보게된 계기가 Youtube였다. pc가 한 집에 한 대나 두 대가 놓인 것을, 부모가 쓰지 않는 시간대에는 그/그녀들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며,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인터넷에 열중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해 정보를 얻고 싶어져 인터넷에 접속해, 동영상 사이트에 다다른다) 올려진 동영상을 보기 이전부터 <건담>과 같은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잔혹한 천사의 테제>로 대표되는 관련 음악을 들은 일도 있다. 2007년에 <신 에바> 제 1탄이 공개되기 전후에 Youtube에서 TV판을 열중해서 보고 (<신 에바>나 TV판, 만화판을 어떤 순서로 봤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위에 전염시켜 갔다는 듯 하다.
이와 같이, 제 4세대는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작품 외에 과거의 작품은 Youtube나 니코니코 동화같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보는 것이 기본이다. 작품을 보는 기준은, 반에서 화제가 되고 있든가, 니코동에서 존재를 알게되었든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듯 하다. <반에서 화제가 된다>라는 아날로그적인 입소문이건, 니코동과 같은 디지털 입소문이건, 작품 감상의 기준은 입소문의 힘이 강해서, 이를테면 <<건담>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본다>라거나, <가이낙스 작품을 전부 본다>와 같은 체계적인 감상, 매니아적인 - 전체적으로 완수하지 않으면 기가 차지 않는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즉, 제 4세대에 있어서 <오타쿠>의 조건은, 쇼와의 시대 오타쿠라면 필수적이었던 체계적인 지식, 어떤 장르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따라가고 있는가하는 태도는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2ch나 니코니코 동화에서 사용된 은어나 원 네타, 오타쿠 지식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원네타의 작품 발편년도는 불규칙하더라도 다양하게) 인터넷에서 검색해 가면서 알고 있었다.
ㅇ 제 4세대 오타쿠의 환경 -- 억압없는 오타쿠의 탄생
<아야나미 귀여워요>라고 순진하게 이야기하는 중학생에게, 삐뚤어짐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이의 모습은 깔끔해서, 보자마자 오타쿠란 것은 알 수 없었다. 들고 있는 가방이 에바라는 것으로 겨우 알 수 있었다. 서있는 모습 또한 단정해서, 제 3세대까지의 오타쿠가 갖고 있었던 귀찮은 자의식(신지와 같은 우유부단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반에서 비율은 세 명에서부터 약 반수(!)까지 오타쿠의 인수 자체는 여럿이었지만,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 <가벼웠다>. 반에서 쟈니즈의 팬인 여자아이나 AKB48 팬인 남자애에게 <너, 애니메 좋아하는구나~>라고 취급당해도 <어차피 모두들 오타쿠잖아>하고 생각하는, 건전하고 취미에 대해 심각하게 적대하는 / 차별하는 상황은 별로 없었다. 오타쿠는 반 내에서 세력으로 꽤나 거대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테니스를 학교에서 왔다는 체육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용기사 07의 <쓰르라미 울 적에>에 열중하고 있다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한다. (2012년 초에는 하코네 에키덴의 유력한 선수들이 대부분 성우팬이란 것이 발견되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육계에서 오타쿠 문화의 침투는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라)
30대 후반부터 40대 전반의 연령에서 어떤 부모들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친숙했던 제 2세대 (<건담>이나 클램프 만화를 예전부터 좋아했다던가 하는)이어서, 취미를 이해해가며, 아라카와 히로무의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나 <하루히>에 대하여 부모와 이야기 나눌 정도의 관계가 있어서, 가정 내에서 억압이 생기는 모습도 없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는 타케우치 나오코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나 초호기가 포효하는 <구 에바>의 포스터를 방벽에 붙인다거나, 좋아하는 성우가 출연하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 새벽~밤까지 일어난다던가 해서 부모가 진심으로 걱정했지만, 지금의 오타쿠들에게는 취미에 꽤 관용적인 부모를 갖고 있다. 또한, 교사들도 수업 중에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꺼낸다던가 하여, 교사들의 오타쿠에 대한 태도도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제 4세대는,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받는 억압이 적었다.
자의식이 비틀려서 오타쿠가 될 이유도 없으며, 오타쿠니까 자의식이 비틀릴 이유도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삐뚤어짐을 느끼지 않는다. 현실 부정으로써 오타쿠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 <리얼충>이라는 말이 그렇게나 공격적, 멸시적이라는 것이 아니란 말을 했지만, 이러한 배경에서 유래된다고 본다. 즉 제 4세대 오타쿠에게 있어 현실도피의 대상으로 오타쿠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리얼충>이라는 호칭이 단순히 소속하고 있는 취미 커뮤니티가 다른 인간을 가리키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급식을 하고 있는 반에서는 책상을 이동해 섬 (그룹)을 만들 때에 멋대로 <여기가 나의 요새 <메이져>다!> 라고하는 설정을 만든다던가, <내 신부는 아사히나, 여동생은 사토코>(아사히나는 <하루히>의 아사히나 미쿠루, 사토코는 <쓰르라미 울 적에>의 호쿠죠 사토코를 이른다)와 같이 떠드는 <중2병>환자나, 여자인데도 일인칭으로 <보쿠>를 사용하는 <보쿠온나>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따스하게> 바라봐 주거나, 반 내에서 뜨고 있는 <네타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어, 차별이나 따돌림의 상대가 된 모습은 없었다. 중2병 자신이 그저 장난으로 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 필자의 세대에서 중2병의 90%는 진심으로 자의식이 삐뚤어져버린 인간이란 인상이 있었지만, 제 4세대는 다를지도 모른다.
즉, 화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오타쿠 문화에 대하는 태도가 비 오타쿠층에도 대부분 이르고 있다 (관용적으로 되고 있다) 고 생각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오타쿠들이기에, <구에바>에서 신지가 우유부단하는 의미가 알 수 없었지만, <파>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제 4세대 오타쿠는 제 3세대 오타쿠까지와 비교해 볼 때 밝아졌다.
그렇기에 진취적인 <신나는 것>을 바란다. 주인공이 고민해도 좋지만, 스스로 길을 정하고 액션을 일으키지 않는, 우울하고 삐뚤어진 녀석은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입소문이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네타성>을 바란다. 그들은 매우 커뮤니티적이며, 웃기는 것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파>에서 신지가 아야나미를 구한다, 라는 <사무치는> 감동도 바란다. 도중에 땅을 파는 듯한 전개가 있어도 좋다. 그러나, 배드엔딩같은 뒷끝이 안 좋은 것은 싫어한다.
제 4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
ㅇ 라이트노벨
- 러브코미디계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리 없어> <학생회의 일존> <나는 친구가 적다> <토라도라!>
<바보와 소환수와 테스트> <제로의 사역마> <문학소녀>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 배틀계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강각의 레기오스>
애니메이션
ㅇ 쿄토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럭키스타> <케이온!>)
ㅇ 샤프트 (<바케모노가타리>,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게임
ㅇ 하드는 DS, PSP와 같은 휴대용 게임기가 메인 (<몬스터 헌터>같은 것이 인기)
ㅇ 용기사 07의 <When they cry> 시리즈 (그러나 용기사 07의 작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미디어 믹스가 다양하기에, 반드시 게임으로만 수용되고 있지는 않다)
ㅇ PC는 노트북. 그러나 게임을 인스톨해서 플레이하기 보다는 (인터넷 게임을 포함한) 웹서핑용
인터넷 콘테츠
ㅇ 니코니코 동화 (매드, 하츠네미쿠, <해보았다> 등)
ㅇ 동방 프로젝트
▶ 제 3세대와 제 4세대의 <하루히> 수용의 차이
제 3세대와 제 4세대가 놓인 환경이나 수요가 다른 것을 정리하면, 그림 8-2나 그림 8-3과 같은 형태가 된다.*
*역자 주) 완전히 도형이라 텍스트로 옮기기 어려워 생략함. 지금까지의 정리
이것들을 전제로 하여 말하면, 제 4세대는 <하루히>가 <에바>나 <부기팝을 웃지 않는다> 이후의 흐름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의식이 적다( 혹은 <없다> ). 지금의 중고생은 98년부터 시작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도, 00년대 전반에 널리 퍼진 <세카이계>로 대표되는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도 모른다. 그들의 라이트노벨에 대한 역사의식은 <제로의 사역마>나 니시오 이신의 <바케모노 가타리>, <하루히> 정도로 시작된다.
제 3세대와 제 4세대 사이에는, 오타쿠로 있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비틀려 있는 것에 대한 다름이 있으며, <구 에바>의 이카리 신지에 감정이입했던 제 3세대와 <신 에바>의 포지티브한 이카리 신지를 응원하는 제 4세대에는 수용의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하루히>에 대해서는 시리즈 초기에 갑자기 말려든 쿈을 지지하는 제 3세대와, 시리즈 제 4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이후로, 뜨겁고 적극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쿈을 지지하는 제 4세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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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F나 미스터리와 같이 80~90년대에
타니가와 나가루가 받아들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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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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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0년대 전반부터 히트를 친 <하루히>의 특징
-> ⓐ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학원물
-> ⓑ Sf, 미스터리의 추적을 활용한 메타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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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파생물(2차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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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0년대 전후반부터 <하루히>의 캐릭터를 사용한 (2차창작한)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 <뇨~롱 츄루야씨> 의 특징
-> 캐릭터간의 관계를 메인으로한 개그작품. SF, 미스터리한 요소는 거의 없다.
※오타쿠 제 3세대의 인식, 시선
ⓑ 측면을 의식
ⓐ와 ⓑ로 2. 를 소비
※오타쿠 제 4세대의 인식, 시선
ⓐ를 중심으로 소비
ⓐ의 파생물로써 3.을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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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 3세대는 <하루히>의 백그라운드에 방대한 SF나 미스터리적 요소를 느끼고, 거기서부터 작품독해를 시작하는 독법이 있지만 (<에바>의 나조홍 소비와 같이 <과잉함>에 끌리는 소비 행동), 제 4세대에 있어서는 그러한 것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림 8-4에서 표시한 것처럼, 같은 <하루히>라는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레이어가 다르다. <하루히>의 스핀오프이며 패러디 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이나, <뇨~롱 츄루야씨>의 지지층은, <럭키스타>나 <학생회의 일존>을 즐기듯이 즐기며, <하루히>라는 작품을 하루히나, 미쿠루, 나가토라는 캐릭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중요하게 소비하고 있다.
원작에서 히로인인 하루히는 <제로의 사역마>를 논했던 제 2부 제 4장의 츤데레 유형을 사용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2면성 츤데레>이다. 제 3세대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캐릭터 연출의 3스텝*을 말하자면, 처음에서 썼던 것과 같이 <속성의 제시>만 있으면 충분했다. <하루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하루히 이외에 미쿠루나 나가토, 코이즈미, 쿈 모두 현재의 라이트 노벨 시장을 통해서 비교해보면, 중반에 이르러 <다양성의 제시>나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이 조금 적다. 일면적이거나, 고작해야 2/3면적이다.
*역자주) 본서에서는 캐릭터 연출의 3스텝으로 ⓐ속성의 제시 ⓑ다면성의 제시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 등을 들고 있다.
물론,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은 <소실>이후 나가토나 쿈, 코이즈미의 심경 변화가 이야기된 것처럼 나름대로 준비되어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금서목록>의 캐릭터들은, 스테일 마그누스건, 칸자키 카오리건 등장시점에서는 이렇게 보인다(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의외성을 갖는 스토리를 반드시 준비하고 있다. 즉, 과거 -- 현재 상태의 갭,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이 있다. 그러나, <하루히> 작중에서는 이야기 개시시점으로부터 <3년 전>이 중요한 시기로 설정되어 있지만, 쿈이 미쿠루의 힘을 빌려 3년 전에 타임리프했던 시점에서는, 하루히는 역시나 방약무인의 츤츤한 <현재>의 하루히와 다를 바 없는 캐릭터로 존재하고 있다. 나가토나 미쿠루, 코이즈미에 이르면, 과거를 갖고있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 초회한정판 특제 소책자 <스즈미야 하루히의 비화> 수록의 단편 <Rainy Day>는 쿈의 중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상태다. <하루히>에서는 과거와 현재 간의 변화가 그다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2000년대의 오타쿠 컨텐츠 중에서도 굴지의 인기 캐릭터인 나가토나 미쿠루의 매력은 무엇일까? <소실>의 나가토라면 현재 있는 시공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존재(스펙, 성격,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되어있다는 형태로, 의외의 일면을 독자에게 제시해 매료시키고 있다. 미쿠루라면, 현재 시제에 존재하는 도짓코의 미쿠루와 <미래>에서 부터 온 섹시하고 좀 더 어른스러워진 ( 그러나 여전히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다면성을 지닌 ) 아사히나 미쿠루 (大) 의 차이가 캐릭터를 성립시키고 있다. 즉 시간 SF로서의 측면을 사용한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상정>을 특수한 패턴에 의해 캐릭터의 매력으로 연출하는 고등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이 <하루히>다.
하루히는 어떤가? 제 4세대는 2면형츤데레보다도 다면형 츤데레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히는 실은 2면형으로부터 다면형으로 변모했다. 나가토나 미쿠루 이상의 의외의 수법으로. 스핀오프 개그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에서, 하루히는 츤츤하는 여왕님 캐릭터라는 속성이면서도, 천연 보케라는 귀여움이 붙여져 있다. 즉, 원작과 <하루히 쨩> 이라는 외전적 작품을 넘나들며 하루히라는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인 다면형 츤데레가 되었다 -- 그리고 그런 점이 <하루히>라는 컨텐츠의 수명을 밝게 연장시켰다. 제 3세대의 대부분은 <하루히 쨩>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애초에 접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럭키스타>나 <학생회의 일존>이후 <신나는 것>과 <네타성>을 중요시 하는 2000년대 후반 이후 태도로 만들어진 <하루히 쨩>은 제 4세대에게 지지받고 있다.
또 06년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판 수용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제 3세대는 <하루히> 작중작 <아사히나 미쿠루의 모험 Episode 00>으로부터 시작해 의표를 찌르는, 어떤 의미에서 아방가르드한 애니메이션 판 <하루히>를 봤을 때, <에바> 이후의 작품에 바래온 <과잉성>(혁신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제 4세대는 엔딩곡인 <하루히 댄스>로 상정되는 <캐릭터 간의 관계를 즐기는 것> <어쨌든 화제성이 높은, 좋은 소재>이란 식으로 반응했다.
이렇듯,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포인트가 다르다. 그것이 두 세대의 감상 광맥이 겹치는 <하루히>는 예외적이었다.
그렇기에 <하루히>는 2000년대 (전,후반 관계없이) 라이트노벨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루히>는 2006년에 쿄토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TV 애니메화 되어, 일대 붐이 되었다. 이후의 <하루히>를 지지한 층, 그 청소년층이야말로 오타쿠 제 4세대이다.
제 4세대가 <하루히>를 지지한 것은 <신나는 것>, <화제성(*네타성)>, <사무침>이라는 핵심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SF나 미스테리의 두꺼운 교양을 느끼게 하는 <차별화 요소>를 가진 작품이었기 대문이다. 일상을 베이스로 한 캐릭터의 커뮤니케이션이 <신나고> 애니메이션의 엔딩 스탭롤에 흐르는 <하루히 댄스>라 불리우는 댄스가 <화제성>을 갖고, 가끔씩 보이는 쿈의 뜨거운 진면목이 <사무치는 것>이었다.
제 4세대와 제 3세대에서는 <신나는 것>과 <사무침> (혹은 <절실함>)의 부분은 수요가 겹치지만, 작품에 <과잉함>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 가장 다르다. 여기서는 제 4세대의 특징을 묘사하고, <하루히>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에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3세대와 제 4세대의 차이에 대하여, 알기 쉬운 예로 <에바>의 수용의 차이를 서술하여 비교해보도록 하자.
"왜 라이트노벨이라는 미디어에서 애니메이션 <에바> 이야기를?'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바>는 오타쿠 역사에 있어서 <기동전사 건담>과 함께 사회 현상이 된 소수의 작품이며, <라이트 노벨의 삼층구조>* 의 중단에 위치하는 오타쿠 문화의 조류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역자주) 본서에서는 라이트 노벨의 세그먼트를 세분화 하기 위해 삼층 구조로 사용하였다. 라이트 노벨의 삼층 구조는 구체적으로는 아래 층부터 ⓐ 엔터테인먼트 일반 ⓑ 오타쿠 문화 ⓒ 라이트노벨만의 특성이다. 때문에 이이다 이치시는 라이트노벨의 경쟁 상대를 순문학 등이 아니라 같은 오타쿠 문화의 몬헌이나 애니메, 만화 등으로 보았다.
반복하지만, 2000년대의 라이트 노벨계를 채웠던 <세카이 계>라 불리우는 작품군은 <에바>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루히>는 그러한 말미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취급했던 작품의 대부분은 그러한 분위기가 사라진 뒤에 등장한 것이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토라도라>, <내여귀>, <바보와 테스트와 소환수>, <제로의 사역마> 등
ㅇ <에바>는 <14세 소년소녀의 자의식 이야기>인가? 세대에 의한 수용 차이.
<에바> 세대, 즉 제 3세대와 <하루히> 이후의 세대, 즉 제 4세대와의 결정적 차이는,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자의식이 비틀려있느냐, 삐뚤어짐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제 4세대는 <오타쿠>라더라도, 상당히 구김살이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내가 중고생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얻은 인상으로, 정량적인 데이터에 의한 확증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키하바라에서 오타쿠 계의 라이브 스테이즈와 클럽을 운영하는 후쿠시마 마이코의 저작 <일본의 젊은이는 불행하지 않다>와 동일한 모양새의 인상을 적고 있기에, 그렇게나 논리비약적인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인상>과 베스트셀러 라이트 노벨의 시장동향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라이트노벨의 주독자층인 젊은 오타쿠는, 구세대의 <오타쿠> 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10대 시절을 지낸 필자와 같은 제 3세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07년도 이후 리메이크 된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과의 구별을 위해, 90년대 작품을 <구에바>, 신극장판을 <신에바>라 표기한다)을, 14세의 소년 소녀인 이키리 신지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아야나미 레이와같은 주요 캐릭터에게 감정이입하며 감상했다. 캐릭터 간의 관계가 매력적인 일상 파트는 <신나고>, 시리어스 파트에서는 <이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로써, 사춘기의 <절실한> 자의식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비교적 일반적이었다. 신문이나 각종 미디어에서도 그렇게 보도되었다.
오카다 토시오는 <오타쿠학 입문>에서, 오타쿠의 작품 감상 방법이나 가치관을 해설하며, 오타쿠를 독자적인 시점에서 작품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작자의 성장을 지켜보며 즐기는 <순수한 눈>, 작품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구조를 찾아내는 과학자의 시점, 즉 <장인의 눈>, 작품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하는 <통하는 눈>을 가진 존재라고 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오타쿠 전반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제 1세대에 특히 발견되는 경향이었다. 제 3세대에는 그러한 <눈>이 없었다.
<구에바>에서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오타쿠 제 1세대 창작자)가 특촬이나 SF 대표되는 방대한 오타쿠 지식(제 1세대의 오타쿠 지식)을 강하게 투입하 작품이었으나, 인용의 본래 네타를 지적해가며 즐거워 한 오타쿠 1세대적인 소비방법 (세 개의 눈을 통한 감상방법) 은, 그것을 알지 못한 제 3세대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 3세대의 남자애들 대부분은 <구에바>를 좀 더 알고 싶어해서, 당시 계속 간행된 유상무상의 <나조홍>(작품에 묻혀있지만 해설되지 않은 복선이나 설명되지 않은 설정이나, 상기와 같은 <본래 네타>를 독해하기 위한 해설본이나 평론서)을 사면서, <구 에바>의 본래 네타가 된 <울트라맨>이나 나가이 고의 <데빌맨>등을 접하고 오타쿠적 교양이 다소 생겨났다. <구 에바>의 <과잉함>에 유혹되, 그 원천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그러한 오타쿠 제 3세대는 2007년부터 리메이크 된 <신 에바>에 대하여 평가가 이분된다.*
* 역자 주) 본서의 발간 당시 2012년 4월으로, 아직 에바 Q가 일본에서도 상영되지 않은 시점이다.
<신에바>는 <구에바>에서 보여진 자의식의 이야기적인 측면이나 전위적인 연출 (영상기법이나, 흐느적거리는 만화같은 애니메이션의 삽입 등)이 후퇴하고 순수한 엔터테인먼트 색이 강해졌다. <과잉함>이 얇아졌단 얘기다.
그 중에서도, 과거에 <로봇에 타고 싶지 않다>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지에 대하여 굉장히 고민한다>와 같은 내향적인 소년으로서 조형된 주인공인 신지가, <신에바>의 두번째 작품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이하 <파>)에서는 <구에바>의 인상과는 완전히 다를 정도로, 어떤 때에는 진취적으로 변해, 할 때는 하는 캐릭터로 성격설정이 변경되었던 것이, 평가를 나눈 이유가 되었다.
<구에바>에 열광하는 사람은 "이런 건 <에바>가 아니다. 신지가 아니다"라고 전면 부정하고, 어떤 의미에서 어른스러운 감상 태도를 갖게 된 사람은 <이건 이거대로 괜찮지 않나>라고 한다던가, 취직해서 책임을 지는 그야말로 <도망치면 안돼>라는 상황에 처하게 된 지금의 자신에게는 이러한 쪽이 맞다는,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할 때는 하는 것이 지금의 스타일>이라고 느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타쿠 제 4세대는 어떤가. 필자는 <파> 공개 후에 중고생에게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은 전체적으로 <신 에바>의 높은 엔터테인먼트성에 솔직히 반응하며, 평가는 대부분 높았다.
반면 <구 에바> (또한 동여상 사이트를 통해 보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의 신지가 우우뷰단한 것에 대해 <짱난다うざい>라고 (주의를 촉구하지만, 지금의 10대가 사용하는 <짱난다> <기분나빠> <리얼충>과 같은 말은 필자인 제 3세대가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운 뉘앙스이며 그렇게까지 공격적이지 않다) 말했다.
<파>에서 신지가 아야나미를 도우러 가는 부분을 두고 <박수치고 싶었다>라는 의견을 낼 정도로, 제 3세대의 어떤 의미에서는 순진하게 <이런 건 <에바>가 아니야!>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순진한 반응을 나타낸 것은, 제 2세대나 제 3세대가 <에바>를 대단히 <자신의 이야기>로써 자의식과 싱크로해,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보는 것에서 유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90년대적인 <절실함>과 2000년대적인 <사무침>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반면 4세대는, 신지나 아스카의 모습에서 <가볍게 중학교 레벨을 넘어섰네 (= 같은 나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저런 귀찮은 일 생각해 본 적 없어>라는 의견이 대세였으며, 필자들과 같은 작품을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상 포인트(가치관)이 변해있었다. <신지는 나 자신이다!>라고 생각해 <파>의 변질에 분통을 터뜨리는 제 3세대 오타쿠와는 달랐다.
제 4세대에게 <에바> 시리즈 중에 제일 평가가 낮은 것은 <여름 에바>라 불리우는 TV 방영 후에 제작된 구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 Air ~ 진심을 그대에게> 였다. "신지가 우유부단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 그 이유였다.
주인공인 신지가 고민하고 기민해가며 <오메데토>라고 갑작스럽게 다른 캐릭터들에게 축하받은 <구에바>의 마지막 두 화는 방영 당시에 윗세대인 제 1세대 평가로는 <자기계발 세미나 같다> <신흥 종교같다> 란 취급을 받았으나, 제 4세대의 평가는 <신지가 긍정적으로 되었으니까, 뭔지는 잘 몰라도 좋다고 생각해>라는 것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제 4세대는 후퇴적인 자의식을 싫어하는 것이리라 -- 이것은 <강각의 레기오스>의 레이폰이 시리즈가 진행해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빨리 좀 정해라> <아직도야?> 라는 비판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과도 일치한다.
ㅇ 제 4세대의 소비생활 -- 입소문과 니코동으로부터 <에바>를 알다 = <화제가 된다>의 원천
제 4세대는 <신 에바>를 보게된 계기가 Youtube였다. pc가 한 집에 한 대나 두 대가 놓인 것을, 부모가 쓰지 않는 시간대에는 그/그녀들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며,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인터넷에 열중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해 정보를 얻고 싶어져 인터넷에 접속해, 동영상 사이트에 다다른다) 올려진 동영상을 보기 이전부터 <건담>과 같은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잔혹한 천사의 테제>로 대표되는 관련 음악을 들은 일도 있다. 2007년에 <신 에바> 제 1탄이 공개되기 전후에 Youtube에서 TV판을 열중해서 보고 (<신 에바>나 TV판, 만화판을 어떤 순서로 봤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위에 전염시켜 갔다는 듯 하다.
이와 같이, 제 4세대는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작품 외에 과거의 작품은 Youtube나 니코니코 동화같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보는 것이 기본이다. 작품을 보는 기준은, 반에서 화제가 되고 있든가, 니코동에서 존재를 알게되었든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듯 하다. <반에서 화제가 된다>라는 아날로그적인 입소문이건, 니코동과 같은 디지털 입소문이건, 작품 감상의 기준은 입소문의 힘이 강해서, 이를테면 <<건담>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본다>라거나, <가이낙스 작품을 전부 본다>와 같은 체계적인 감상, 매니아적인 - 전체적으로 완수하지 않으면 기가 차지 않는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즉, 제 4세대에 있어서 <오타쿠>의 조건은, 쇼와의 시대 오타쿠라면 필수적이었던 체계적인 지식, 어떤 장르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따라가고 있는가하는 태도는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2ch나 니코니코 동화에서 사용된 은어나 원 네타, 오타쿠 지식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원네타의 작품 발편년도는 불규칙하더라도 다양하게) 인터넷에서 검색해 가면서 알고 있었다.
ㅇ 제 4세대 오타쿠의 환경 -- 억압없는 오타쿠의 탄생
<아야나미 귀여워요>라고 순진하게 이야기하는 중학생에게, 삐뚤어짐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이의 모습은 깔끔해서, 보자마자 오타쿠란 것은 알 수 없었다. 들고 있는 가방이 에바라는 것으로 겨우 알 수 있었다. 서있는 모습 또한 단정해서, 제 3세대까지의 오타쿠가 갖고 있었던 귀찮은 자의식(신지와 같은 우유부단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반에서 비율은 세 명에서부터 약 반수(!)까지 오타쿠의 인수 자체는 여럿이었지만,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 <가벼웠다>. 반에서 쟈니즈의 팬인 여자아이나 AKB48 팬인 남자애에게 <너, 애니메 좋아하는구나~>라고 취급당해도 <어차피 모두들 오타쿠잖아>하고 생각하는, 건전하고 취미에 대해 심각하게 적대하는 / 차별하는 상황은 별로 없었다. 오타쿠는 반 내에서 세력으로 꽤나 거대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테니스를 학교에서 왔다는 체육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용기사 07의 <쓰르라미 울 적에>에 열중하고 있다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한다. (2012년 초에는 하코네 에키덴의 유력한 선수들이 대부분 성우팬이란 것이 발견되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육계에서 오타쿠 문화의 침투는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라)
30대 후반부터 40대 전반의 연령에서 어떤 부모들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친숙했던 제 2세대 (<건담>이나 클램프 만화를 예전부터 좋아했다던가 하는)이어서, 취미를 이해해가며, 아라카와 히로무의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나 <하루히>에 대하여 부모와 이야기 나눌 정도의 관계가 있어서, 가정 내에서 억압이 생기는 모습도 없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는 타케우치 나오코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나 초호기가 포효하는 <구 에바>의 포스터를 방벽에 붙인다거나, 좋아하는 성우가 출연하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 새벽~밤까지 일어난다던가 해서 부모가 진심으로 걱정했지만, 지금의 오타쿠들에게는 취미에 꽤 관용적인 부모를 갖고 있다. 또한, 교사들도 수업 중에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꺼낸다던가 하여, 교사들의 오타쿠에 대한 태도도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제 4세대는,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받는 억압이 적었다.
자의식이 비틀려서 오타쿠가 될 이유도 없으며, 오타쿠니까 자의식이 비틀릴 이유도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삐뚤어짐을 느끼지 않는다. 현실 부정으로써 오타쿠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 <리얼충>이라는 말이 그렇게나 공격적, 멸시적이라는 것이 아니란 말을 했지만, 이러한 배경에서 유래된다고 본다. 즉 제 4세대 오타쿠에게 있어 현실도피의 대상으로 오타쿠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리얼충>이라는 호칭이 단순히 소속하고 있는 취미 커뮤니티가 다른 인간을 가리키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급식을 하고 있는 반에서는 책상을 이동해 섬 (그룹)을 만들 때에 멋대로 <여기가 나의 요새 <메이져>다!> 라고하는 설정을 만든다던가, <내 신부는 아사히나, 여동생은 사토코>(아사히나는 <하루히>의 아사히나 미쿠루, 사토코는 <쓰르라미 울 적에>의 호쿠죠 사토코를 이른다)와 같이 떠드는 <중2병>환자나, 여자인데도 일인칭으로 <보쿠>를 사용하는 <보쿠온나>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따스하게> 바라봐 주거나, 반 내에서 뜨고 있는 <네타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어, 차별이나 따돌림의 상대가 된 모습은 없었다. 중2병 자신이 그저 장난으로 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 필자의 세대에서 중2병의 90%는 진심으로 자의식이 삐뚤어져버린 인간이란 인상이 있었지만, 제 4세대는 다를지도 모른다.
즉, 화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오타쿠 문화에 대하는 태도가 비 오타쿠층에도 대부분 이르고 있다 (관용적으로 되고 있다) 고 생각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오타쿠들이기에, <구에바>에서 신지가 우유부단하는 의미가 알 수 없었지만, <파>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제 4세대 오타쿠는 제 3세대 오타쿠까지와 비교해 볼 때 밝아졌다.
그렇기에 진취적인 <신나는 것>을 바란다. 주인공이 고민해도 좋지만, 스스로 길을 정하고 액션을 일으키지 않는, 우울하고 삐뚤어진 녀석은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입소문이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네타성>을 바란다. 그들은 매우 커뮤니티적이며, 웃기는 것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파>에서 신지가 아야나미를 구한다, 라는 <사무치는> 감동도 바란다. 도중에 땅을 파는 듯한 전개가 있어도 좋다. 그러나, 배드엔딩같은 뒷끝이 안 좋은 것은 싫어한다.
제 4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
ㅇ 라이트노벨
- 러브코미디계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리 없어> <학생회의 일존> <나는 친구가 적다> <토라도라!>
<바보와 소환수와 테스트> <제로의 사역마> <문학소녀>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 배틀계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강각의 레기오스>
애니메이션
ㅇ 쿄토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럭키스타> <케이온!>)
ㅇ 샤프트 (<바케모노가타리>,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게임
ㅇ 하드는 DS, PSP와 같은 휴대용 게임기가 메인 (<몬스터 헌터>같은 것이 인기)
ㅇ 용기사 07의 <When they cry> 시리즈 (그러나 용기사 07의 작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미디어 믹스가 다양하기에, 반드시 게임으로만 수용되고 있지는 않다)
ㅇ PC는 노트북. 그러나 게임을 인스톨해서 플레이하기 보다는 (인터넷 게임을 포함한) 웹서핑용
인터넷 콘테츠
ㅇ 니코니코 동화 (매드, 하츠네미쿠, <해보았다> 등)
ㅇ 동방 프로젝트
▶ 제 3세대와 제 4세대의 <하루히> 수용의 차이
제 3세대와 제 4세대가 놓인 환경이나 수요가 다른 것을 정리하면, 그림 8-2나 그림 8-3과 같은 형태가 된다.*
*역자 주) 완전히 도형이라 텍스트로 옮기기 어려워 생략함. 지금까지의 정리
이것들을 전제로 하여 말하면, 제 4세대는 <하루히>가 <에바>나 <부기팝을 웃지 않는다> 이후의 흐름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의식이 적다( 혹은 <없다> ). 지금의 중고생은 98년부터 시작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도, 00년대 전반에 널리 퍼진 <세카이계>로 대표되는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도 모른다. 그들의 라이트노벨에 대한 역사의식은 <제로의 사역마>나 니시오 이신의 <바케모노 가타리>, <하루히> 정도로 시작된다.
제 3세대와 제 4세대 사이에는, 오타쿠로 있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비틀려 있는 것에 대한 다름이 있으며, <구 에바>의 이카리 신지에 감정이입했던 제 3세대와 <신 에바>의 포지티브한 이카리 신지를 응원하는 제 4세대에는 수용의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하루히>에 대해서는 시리즈 초기에 갑자기 말려든 쿈을 지지하는 제 3세대와, 시리즈 제 4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이후로, 뜨겁고 적극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쿈을 지지하는 제 4세대로 나뉜다.
---
1. SF나 미스터리와 같이 80~90년대에
타니가와 나가루가 받아들인 문화
│
ⓑ에 영향
│
2. 2000년대 전반부터 히트를 친 <하루히>의 특징
-> ⓐ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학원물
-> ⓑ Sf, 미스터리의 추적을 활용한 메타적 작품
│
ⓐ의 파생물(2차 창작)
│
3. 2000년대 전후반부터 <하루히>의 캐릭터를 사용한 (2차창작한)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 <뇨~롱 츄루야씨> 의 특징
-> 캐릭터간의 관계를 메인으로한 개그작품. SF, 미스터리한 요소는 거의 없다.
※오타쿠 제 3세대의 인식, 시선
ⓑ 측면을 의식
ⓐ와 ⓑ로 2. 를 소비
※오타쿠 제 4세대의 인식, 시선
ⓐ를 중심으로 소비
ⓐ의 파생물로써 3.을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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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 3세대는 <하루히>의 백그라운드에 방대한 SF나 미스터리적 요소를 느끼고, 거기서부터 작품독해를 시작하는 독법이 있지만 (<에바>의 나조홍 소비와 같이 <과잉함>에 끌리는 소비 행동), 제 4세대에 있어서는 그러한 것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림 8-4에서 표시한 것처럼, 같은 <하루히>라는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레이어가 다르다. <하루히>의 스핀오프이며 패러디 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이나, <뇨~롱 츄루야씨>의 지지층은, <럭키스타>나 <학생회의 일존>을 즐기듯이 즐기며, <하루히>라는 작품을 하루히나, 미쿠루, 나가토라는 캐릭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중요하게 소비하고 있다.
원작에서 히로인인 하루히는 <제로의 사역마>를 논했던 제 2부 제 4장의 츤데레 유형을 사용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2면성 츤데레>이다. 제 3세대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캐릭터 연출의 3스텝*을 말하자면, 처음에서 썼던 것과 같이 <속성의 제시>만 있으면 충분했다. <하루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하루히 이외에 미쿠루나 나가토, 코이즈미, 쿈 모두 현재의 라이트 노벨 시장을 통해서 비교해보면, 중반에 이르러 <다양성의 제시>나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이 조금 적다. 일면적이거나, 고작해야 2/3면적이다.
*역자주) 본서에서는 캐릭터 연출의 3스텝으로 ⓐ속성의 제시 ⓑ다면성의 제시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 등을 들고 있다.
물론,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시간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은 <소실>이후 나가토나 쿈, 코이즈미의 심경 변화가 이야기된 것처럼 나름대로 준비되어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금서목록>의 캐릭터들은, 스테일 마그누스건, 칸자키 카오리건 등장시점에서는 이렇게 보인다(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의외성을 갖는 스토리를 반드시 준비하고 있다. 즉, 과거 -- 현재 상태의 갭,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성장>이 있다. 그러나, <하루히> 작중에서는 이야기 개시시점으로부터 <3년 전>이 중요한 시기로 설정되어 있지만, 쿈이 미쿠루의 힘을 빌려 3년 전에 타임리프했던 시점에서는, 하루히는 역시나 방약무인의 츤츤한 <현재>의 하루히와 다를 바 없는 캐릭터로 존재하고 있다. 나가토나 미쿠루, 코이즈미에 이르면, 과거를 갖고있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 초회한정판 특제 소책자 <스즈미야 하루히의 비화> 수록의 단편 <Rainy Day>는 쿈의 중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상태다. <하루히>에서는 과거와 현재 간의 변화가 그다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2000년대의 오타쿠 컨텐츠 중에서도 굴지의 인기 캐릭터인 나가토나 미쿠루의 매력은 무엇일까? <소실>의 나가토라면 현재 있는 시공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존재(스펙, 성격,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되어있다는 형태로, 의외의 일면을 독자에게 제시해 매료시키고 있다. 미쿠루라면, 현재 시제에 존재하는 도짓코의 미쿠루와 <미래>에서 부터 온 섹시하고 좀 더 어른스러워진 ( 그러나 여전히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다면성을 지닌 ) 아사히나 미쿠루 (大) 의 차이가 캐릭터를 성립시키고 있다. 즉 시간 SF로서의 측면을 사용한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상정>을 특수한 패턴에 의해 캐릭터의 매력으로 연출하는 고등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이 <하루히>다.
하루히는 어떤가? 제 4세대는 2면형츤데레보다도 다면형 츤데레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히는 실은 2면형으로부터 다면형으로 변모했다. 나가토나 미쿠루 이상의 의외의 수법으로. 스핀오프 개그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 쨩의 우울>에서, 하루히는 츤츤하는 여왕님 캐릭터라는 속성이면서도, 천연 보케라는 귀여움이 붙여져 있다. 즉, 원작과 <하루히 쨩> 이라는 외전적 작품을 넘나들며 하루히라는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인 다면형 츤데레가 되었다 -- 그리고 그런 점이 <하루히>라는 컨텐츠의 수명을 밝게 연장시켰다. 제 3세대의 대부분은 <하루히 쨩>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애초에 접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럭키스타>나 <학생회의 일존>이후 <신나는 것>과 <네타성>을 중요시 하는 2000년대 후반 이후 태도로 만들어진 <하루히 쨩>은 제 4세대에게 지지받고 있다.
또 06년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판 수용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제 3세대는 <하루히> 작중작 <아사히나 미쿠루의 모험 Episode 00>으로부터 시작해 의표를 찌르는, 어떤 의미에서 아방가르드한 애니메이션 판 <하루히>를 봤을 때, <에바> 이후의 작품에 바래온 <과잉성>(혁신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제 4세대는 엔딩곡인 <하루히 댄스>로 상정되는 <캐릭터 간의 관계를 즐기는 것> <어쨌든 화제성이 높은, 좋은 소재>이란 식으로 반응했다.
이렇듯,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포인트가 다르다. 그것이 두 세대의 감상 광맥이 겹치는 <하루히>는 예외적이었다.
그렇기에 <하루히>는 2000년대 (전,후반 관계없이) 라이트노벨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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