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의 장례식 chapter 04
챕터 04
그 석상의 표면마다 코, 볼, 눈동자 가리지 않고 표면 여기저기에 솟아난 이끼는 얼마나 긴 시간동안 자라난 것일까. 씌워진 왕관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뒤틀려진 채 자라나 하늘로 뻗었고, 그 배 부분에서 거미처럼 뻗어져 나온 뿌리는, 마치 여성의 긴 머리카락처럼 석상의 머리에서부터 지면으로 드리워졌다.
잭은 이 신을 모른다. 전에 이 땅에 문명을 쌓아 올린 왕조가 어떠한 것인지 잭은 모른다. 아마 어린아이 위에 토악질한 CIA도, 공산주의자들이나 호치민 루트를 밤낮 폭격하는 파일럿들도, 그뿐 아니라 왕당파의 병사들도 대부분, 또한 지금 석상 앞에선 잭을 내려보는 프랭크를 둘러싼 선주민들도 대부분, 여기에 있는 승려들의 나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밖에 모른겠지.
왕국이 무너진 뒤로, 이 신은 얼마동안 서로 싸우고 죽이는 자들을 보아왔을까. 이 돌로 된 눈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드러눕고, 경직해, 부패해, 가스가 되어 분해되었을까. 그 표면에 자라난 이끼들만치나 오래되었을까. 그 관을 덮은 나무들보다도 오래되었을까. 잭이 모르는 이교도의 신이, 지금 잭을 조용히 내려다 보며, 석단 위에서 잭을 내려다보는 프랭크를 내려다 본다.
얼굴이 세 방향을 향하는 이교도의 신. 그 거대한 얼굴을 모시던 제단이었을 폐허에, AK를 든 원주민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가만히 잭을 바라보지만, 그 총구 중 어느 하나도 잭을 향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래서 그들이 잭을 죽이지 않으려하진 않겠지. 잭은 혼자였고, 프랭크의 「군세」는 대충 보아도 스무명은 있다. 반대 편은 고지이고, 이쪽은 저지다. 아무리 잭이라고는 해도, 이 상황을 어찌할 도리는 없다.
「올 줄 알았습니다」
라고 프랭크는 웃으며 말했다.
「위대한 빅보스가」
그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다. 광기에 따라오는 긴장이나 힘은 티끌도 없었다. 물론, 평안히 무너져내리는 사람도 있고, 재회한 적도 없는데 이 정도의 회화로 제정신인지 아닌지 살펴 보긴 힘들겠지. 허나, 이미 잭은 알 수 있었다.
프랭크가 질릴 정도로 제정신이란 사실을.
「너를 죽이라고 들어서 여기에 왔다」
잭이 솔직히 고한다. 프랭크는 제정신이고, 이 남자는 내가 받은 사명을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까」
「소령은 지금, 베데스다에 있다. 암이다. 앞으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프랭크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 다르다. 잭은 거기서 알아 차렸다. 프랭크가 처음부터, 그 표정으로 잭을 보아 왔다. 그것은 저, 프랭크의 뒤, 정수리에 뿌리와 덩쿨로 덮인, 그 석상에 올라온 표정과 같았다.
슬픔.
반쯤 닫힌 눈동자에, 체념과 같이 입술에 감도는 미소. 그는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그는 그걸 이미 받아들였다. 그런 종교적인 직감이 잭을 갑자기 덮쳤다. 너무나도 일직선의, 평소라면 믿지 않을 직감 -- 이른바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에 가까운 -- 이었지만, 잭은 이미 그 표정을 알고 있다.
나는 그 표정을, 그 태도를, 그 포기를 알고 있다.
어디선가.
「유감입니다」
「FOX는 해산한다. 네 배신 때문에. 소령이 그 인생의 대부분을 쏟아 부은 일이, 이제 무너져 사라지려고 한다」
「알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습니다. 펜타곤은 FOX를 묶어두려 했으니까요」
「소령을 배반하고, FOX를, 자신의 부대를 무너 뜨릴지 모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뭐지」
잭은 단숨에 묻는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 앉은 채 울려 퍼져,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베데스다의 침대에서 관료놈들에게 자신이 길러낸 조직의 죽음을 고하려고 하는 소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죽어가는 남자로부터 대머리 독수리처럼 모든 걸 빼앗으려는 관료놈들을, 잭은 눈 앞의 타겟인 프랭크 예거를 잊고 미워했다.
「글쎄요. 나는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당신과 공유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습니다. 그 이유엔 나라도 정치도 관계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싸우는 이유, 그 근거가 되는 것을 위해서, 나는 싸우지 않습니다」
「소련 측에, 또는 레닌 측에 붙지는 않았다는 건가」
「그래요, 나는 닉슨을 위해서도, 브레제네프를 위해서도 싸우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부를 위해서도, 그 적대하는 정부를 위해서도」
「그럼 누구를 위해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석상에서 뻗어 오른 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운다. 그 울음 소리가, 프랭크와 자신의 목소리 외에 모든 음을 죽여버리고, 이 숲의 이상한 정적을 세웠다.
「자유를 위해서다, 잭」
프랭크는 거기서 처음으로, 잭의 이름을 불렀다. 말투가, 지금까지처럼 거창한「빅보스」로 대했던 것으로부터, 이전에 그린 베레에서 함께 먹고 지냈던 그 때로, 벗의 말투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상품을 사고 파는 자유가 아니야. 그렇다고, 계급으로부터 자유라던가 노동자의 자유라던가 하는 것도 아니야. 당신들에게 얄궂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자유는, 양피지에 독립선언문을 새긴 건국의 아버지들이 말한 의미의 자유, 또는 바크닌이 모든 권력을 부정한 의미에서 자유다. 좀도 근원적인 부분으로부터 내지르는, 바라는 의미에서」
「의미가 알 수 없어」
「알게 될 테지, 나를 죽인 뒤에는」
그리 말하며, 프랭크 예거는 이전부터 본 적 있는 나이프를 꺼내어 든다. 그것은 FOX의 나이프, FOX에 입대한 자가 그 날에 소령으로부터 넘겨 받은 「인트루더」의 증거인 나이프다.
「그만둬, 프랭크」
잭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본심이었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기회목표잖습니까, 빅보스」
라고 프랭크의 말투에 아까 전처럼 거리감이 돌아왔지만, 그것이 노력으로 두른 갑옷 같은 것이란 사실을 잭은 깨달았다. 그리고, 의도해서 적대자이려고 하는, 그런 프랭크의 비통한 결의에 잭은 알아차리고 만 것을 프랭크 또한 알고 있으리라.
서로가 이미 알아버린 뒤였다. 서로가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러한 존재 양식을 허용하는 이곳에서 싸운다. 그렇게 잔혹하게 결정된 피투성이 삶을 살기를 정했다. 빅보스의 이름을 이 몸에 얽혔을 때,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들, 자신은 빅보스로서 살아가기를 받아들였다.
그것을 뒤엎는 것은 이제와 이룰 수 없는 이야기다.
「이유를 들었다면, 나를 죽이세요, 보스. 소령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면」
다음 순간, 서로를 향해 곧바로 거리를 메운다. 그 뒤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진 세계, 짐승처럼 순수한 세계였다.
기묘하게, 원주민들은 움직임이 없다.
그저, 폐허에 머물러, 두 마리의 짐승의 싸움을, 투명한 눈동자로 바라볼 뿐이다.
곧바로 거리가 메워졌기에, 잭은 길기만 한 AK를 곧바로 버렸다.
스태미너 소비를 경감해주기 위한 스니킹 슈트를 입고 작전에 들어갔지만, 프랭크 쪽은 당연히 그런 하이테크 장비는 없으며, 더욱이 수냉튜브니 모세혈관효과를 이용한 발한을 스무스하게 하는 특수섬유같은 천으로 둔해진 잭보다도, 몸놀림이 기민하다.
잭은 허리에 걸려 있던 브라우닝을 빼들고, 프랭크와 같이 나이프를 가슴의 홀더에서 뺀다.
칼날이 닿지 않을 아슬아슬한 거리, 라고 잭은 분석한다. 칼날이 부딪치기 전에, 잭은 브라우닝을 프랭크에게 향한다. 선공으로 잭은 승기를 어금니로 단단히 물었지만, 프랭크는 의외의 수를 던졌다. 권총 이외에 유일의 무기인 나이프. 팔을 활처럼 만들어, 최소반경의 호를 그리며 그것을 던졌다.
잭이 브라우닝을 당기기도 전에, 프랭크의 나이프가 날아온다.
똑바로. 인중의 중앙을 향해.
피할 짬은 없다. 헛점이 너무 커진다. 잭은 권총을 당기는 작동 도중에, 그것을 방패처럼 바꾸는 게 고작이었다. 브라우닝의 총신의 측면에 날이 닿게 한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프랭크의 나이프는 튕겨나갔다만, 그 소리 쪽에서부터 파고든 프랭크는 이미 허쉬 퍼피를 당겼다.
한 수 늦었다. 예측한 수가 물렀다. 잭은 자신의 상상력 부족을 탓하며, 어찌 회복할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프랭크의 총구가 눈 앞에 쫓아왔을 때, 나이프를 튕겨 낸 브라우닝은 너무 늦고, 나이프는 나이프는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가 있었다. 지금부터 나이프를 던져도, 그 전에 프랭크의 탄환이 미간에 박히겠지.
할 수 밖에 없다, 고 잭은 마음을 굳힌다.
허쉬 퍼피의 약실에 화약이 터지는 음이 잭의 귀에 들리기 전에 총구의 안에 라이프 링(*라이플링?)을 전해받은 탄환은 회전해 안정한 모습을 유지해가며 잭의 미간을 향해 날아 온다. 잭은 각오를 정하고, 나이프를 튕겨낸 브라우닝을, 그대로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나이프가 브라우닝의 측면에 닿은지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이프의 충격에 손바닥으로부터 브라우닝을 떨어뜨릴 것처럼 되었지만, 잭은 어떻게든 참아냈다.
탄환이 잭의 권총에 명중해, 어딘가에 날아갔다. 이번만은 충격에 브라우닝도 견디지 못해, 잭의 이마를 때린다. 그러나, 프랭크가 두 발째 방쇠를 당기기 전에, 잭은 이미 허리를 숙였다.
그 뒤로에, 찰라지만, 그렇달지라도 완벽히 순수한 전투본능이 잭의 모습을 규정한다. 곧바로, 나이프를 잡은 팔이, 슥,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파고나와, 그 칼끝이 예상된 결말을 피하지 않고, 당연스럽게 프랭크의 복부를 쑤셨다.
프랭크 안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잘렸다.
찰나에, 프랭크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퉁, 하고 타성으로 고꾸라진 프랭크의 몸이 잭에게 기대어왔다.
허쉬 퍼피가 진흙바닥에 떨어진다.
잭은 어깨에 턱을 얹은 프랭크의 옅은 숨이, 잭의 귓가에 느껴졌다. 힘이 빠진 프랭크의 몸을 바친 채, 잭은 얼마만큼 서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폐허에 가느다란 빗방울이 내리고 있어, 신들의 시절부터 솟아난 나무들의 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모습을 감추었다.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연하게 이어지는 잔혹한 시간 안에서 프랭크의 따뜻함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라졌다. 잭의 어깨에서 프랭크의 머리가 떨어져, 그 몸이 흐느적 흐느적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잭은 선 채로 느끼고 있었다. 그 얼굴이, 프랭크의 인중과 볼과 이마가, 잭의 가슴을, 배를 어루만지며 마침내 진흙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 감각을 알고 있다.
하얀 꽃잎이 날린다.
말라버린 나무가 홀로 외로이 선 호숫가의 풍경. 이 하얀 꽃들은 뭘까. 백합인가. 먼 곳에서, 산 너머에서 버섯구름이 솟아 오르는 걸 바라본다.
하얀 여성이 서 있다.
그 표정을 굳힌 채, 주변의 모든 장소에 감각의 망을 펼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또 그 눈동자는 쓸쓸해 뵌다. 핵의 불꽃에 타버린 뒤, 그녀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소멸한 풍경 안에서, 인류의 조종(弔鐘)이 된 최후의 버섯구름을 바라보는, 마지막 사람.
환희,라 하얀 여성은 말했다. 쓸쓸히. 환희란 너무나 떨어진 얼굴로.
그리고 지금, 평안을 얻은 듯 미소짓는 프랭크를 자신은 내려다 보고 있다. 잭의 발치에, 안개같은 가랑비에 얼굴을 드러낸, 프랭크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온화해서, 잭은 남몰래 동요하고 있었다.
이 온화함.
자신은 이 온화함을 알고 있다.
그게, 그 때도 이렇게 죽어간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예측하지 못햇던 동요가 잭을 덮친다. 몸 깊은 곳에서부터 찢고오르는 통곡에, 잭은 견디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뱃속에서 이름 모를 감정의 야수가, 네 탓이다, 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게, 당신이 쏘라고 말했으니까, 보스. 당신은 임무를 믿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지. 언제라도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라고 내가 말했을 지라도. 어렸다. 어려서 어리석었다. 그러나 나는 나라란 무언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어 줄 가치가 있는 나라라니, 사람이 공동체를 꾸릴 때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얼마나 있었는가.
당신은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며, 그래도 자신은 임무같은 걸 최후까지 믿고는, 혼자서 멋대로 가버렸다. 그런 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나로부터 믿을 대상의 환상을 새겨놓고는 저 혼자 도망쳤다.
당신은 순직했다고 말하겠지. 그 넓은 세상에서 오직 몇 사람만이, 진상을 아는 누군가도 같은 말을 했겠지.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은 순직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눈 앞에, 일찍이 전장을 같이 누비던 남자가, 나에게 찔려서 버려지고 있다. 배로부터 피가 울컥 흘러나와, 그 피가 진흙에 섞여 들어갔다. 당신에게 방아쇠를 당겼을 때와 똑같이, 그 모습 그대로인데 나는 그걸 내려다 보고, 그 녀석을 죽여서, 그 녀석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잭은 언제부턴가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것을 그저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따뜻하게, 동시에 잔혹한 모습으로.
그 투명한 눈동자는, 마치 등 뒤에 세워진 석상과도 같았다.
그 석상의 표면마다 코, 볼, 눈동자 가리지 않고 표면 여기저기에 솟아난 이끼는 얼마나 긴 시간동안 자라난 것일까. 씌워진 왕관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뒤틀려진 채 자라나 하늘로 뻗었고, 그 배 부분에서 거미처럼 뻗어져 나온 뿌리는, 마치 여성의 긴 머리카락처럼 석상의 머리에서부터 지면으로 드리워졌다.
잭은 이 신을 모른다. 전에 이 땅에 문명을 쌓아 올린 왕조가 어떠한 것인지 잭은 모른다. 아마 어린아이 위에 토악질한 CIA도, 공산주의자들이나 호치민 루트를 밤낮 폭격하는 파일럿들도, 그뿐 아니라 왕당파의 병사들도 대부분, 또한 지금 석상 앞에선 잭을 내려보는 프랭크를 둘러싼 선주민들도 대부분, 여기에 있는 승려들의 나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밖에 모른겠지.
왕국이 무너진 뒤로, 이 신은 얼마동안 서로 싸우고 죽이는 자들을 보아왔을까. 이 돌로 된 눈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드러눕고, 경직해, 부패해, 가스가 되어 분해되었을까. 그 표면에 자라난 이끼들만치나 오래되었을까. 그 관을 덮은 나무들보다도 오래되었을까. 잭이 모르는 이교도의 신이, 지금 잭을 조용히 내려다 보며, 석단 위에서 잭을 내려다보는 프랭크를 내려다 본다.
얼굴이 세 방향을 향하는 이교도의 신. 그 거대한 얼굴을 모시던 제단이었을 폐허에, AK를 든 원주민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가만히 잭을 바라보지만, 그 총구 중 어느 하나도 잭을 향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래서 그들이 잭을 죽이지 않으려하진 않겠지. 잭은 혼자였고, 프랭크의 「군세」는 대충 보아도 스무명은 있다. 반대 편은 고지이고, 이쪽은 저지다. 아무리 잭이라고는 해도, 이 상황을 어찌할 도리는 없다.
「올 줄 알았습니다」
라고 프랭크는 웃으며 말했다.
「위대한 빅보스가」
그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다. 광기에 따라오는 긴장이나 힘은 티끌도 없었다. 물론, 평안히 무너져내리는 사람도 있고, 재회한 적도 없는데 이 정도의 회화로 제정신인지 아닌지 살펴 보긴 힘들겠지. 허나, 이미 잭은 알 수 있었다.
프랭크가 질릴 정도로 제정신이란 사실을.
「너를 죽이라고 들어서 여기에 왔다」
잭이 솔직히 고한다. 프랭크는 제정신이고, 이 남자는 내가 받은 사명을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까」
「소령은 지금, 베데스다에 있다. 암이다. 앞으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프랭크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 다르다. 잭은 거기서 알아 차렸다. 프랭크가 처음부터, 그 표정으로 잭을 보아 왔다. 그것은 저, 프랭크의 뒤, 정수리에 뿌리와 덩쿨로 덮인, 그 석상에 올라온 표정과 같았다.
슬픔.
반쯤 닫힌 눈동자에, 체념과 같이 입술에 감도는 미소. 그는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그는 그걸 이미 받아들였다. 그런 종교적인 직감이 잭을 갑자기 덮쳤다. 너무나도 일직선의, 평소라면 믿지 않을 직감 -- 이른바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에 가까운 -- 이었지만, 잭은 이미 그 표정을 알고 있다.
나는 그 표정을, 그 태도를, 그 포기를 알고 있다.
어디선가.
「유감입니다」
「FOX는 해산한다. 네 배신 때문에. 소령이 그 인생의 대부분을 쏟아 부은 일이, 이제 무너져 사라지려고 한다」
「알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습니다. 펜타곤은 FOX를 묶어두려 했으니까요」
「소령을 배반하고, FOX를, 자신의 부대를 무너 뜨릴지 모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뭐지」
잭은 단숨에 묻는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 앉은 채 울려 퍼져,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베데스다의 침대에서 관료놈들에게 자신이 길러낸 조직의 죽음을 고하려고 하는 소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죽어가는 남자로부터 대머리 독수리처럼 모든 걸 빼앗으려는 관료놈들을, 잭은 눈 앞의 타겟인 프랭크 예거를 잊고 미워했다.
「글쎄요. 나는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당신과 공유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습니다. 그 이유엔 나라도 정치도 관계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싸우는 이유, 그 근거가 되는 것을 위해서, 나는 싸우지 않습니다」
「소련 측에, 또는 레닌 측에 붙지는 않았다는 건가」
「그래요, 나는 닉슨을 위해서도, 브레제네프를 위해서도 싸우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부를 위해서도, 그 적대하는 정부를 위해서도」
「그럼 누구를 위해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석상에서 뻗어 오른 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운다. 그 울음 소리가, 프랭크와 자신의 목소리 외에 모든 음을 죽여버리고, 이 숲의 이상한 정적을 세웠다.
「자유를 위해서다, 잭」
프랭크는 거기서 처음으로, 잭의 이름을 불렀다. 말투가, 지금까지처럼 거창한「빅보스」로 대했던 것으로부터, 이전에 그린 베레에서 함께 먹고 지냈던 그 때로, 벗의 말투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상품을 사고 파는 자유가 아니야. 그렇다고, 계급으로부터 자유라던가 노동자의 자유라던가 하는 것도 아니야. 당신들에게 얄궂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자유는, 양피지에 독립선언문을 새긴 건국의 아버지들이 말한 의미의 자유, 또는 바크닌이 모든 권력을 부정한 의미에서 자유다. 좀도 근원적인 부분으로부터 내지르는, 바라는 의미에서」
「의미가 알 수 없어」
「알게 될 테지, 나를 죽인 뒤에는」
그리 말하며, 프랭크 예거는 이전부터 본 적 있는 나이프를 꺼내어 든다. 그것은 FOX의 나이프, FOX에 입대한 자가 그 날에 소령으로부터 넘겨 받은 「인트루더」의 증거인 나이프다.
「그만둬, 프랭크」
잭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본심이었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기회목표잖습니까, 빅보스」
라고 프랭크의 말투에 아까 전처럼 거리감이 돌아왔지만, 그것이 노력으로 두른 갑옷 같은 것이란 사실을 잭은 깨달았다. 그리고, 의도해서 적대자이려고 하는, 그런 프랭크의 비통한 결의에 잭은 알아차리고 만 것을 프랭크 또한 알고 있으리라.
서로가 이미 알아버린 뒤였다. 서로가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러한 존재 양식을 허용하는 이곳에서 싸운다. 그렇게 잔혹하게 결정된 피투성이 삶을 살기를 정했다. 빅보스의 이름을 이 몸에 얽혔을 때,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들, 자신은 빅보스로서 살아가기를 받아들였다.
그것을 뒤엎는 것은 이제와 이룰 수 없는 이야기다.
「이유를 들었다면, 나를 죽이세요, 보스. 소령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면」
다음 순간, 서로를 향해 곧바로 거리를 메운다. 그 뒤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진 세계, 짐승처럼 순수한 세계였다.
기묘하게, 원주민들은 움직임이 없다.
그저, 폐허에 머물러, 두 마리의 짐승의 싸움을, 투명한 눈동자로 바라볼 뿐이다.
곧바로 거리가 메워졌기에, 잭은 길기만 한 AK를 곧바로 버렸다.
스태미너 소비를 경감해주기 위한 스니킹 슈트를 입고 작전에 들어갔지만, 프랭크 쪽은 당연히 그런 하이테크 장비는 없으며, 더욱이 수냉튜브니 모세혈관효과를 이용한 발한을 스무스하게 하는 특수섬유같은 천으로 둔해진 잭보다도, 몸놀림이 기민하다.
잭은 허리에 걸려 있던 브라우닝을 빼들고, 프랭크와 같이 나이프를 가슴의 홀더에서 뺀다.
칼날이 닿지 않을 아슬아슬한 거리, 라고 잭은 분석한다. 칼날이 부딪치기 전에, 잭은 브라우닝을 프랭크에게 향한다. 선공으로 잭은 승기를 어금니로 단단히 물었지만, 프랭크는 의외의 수를 던졌다. 권총 이외에 유일의 무기인 나이프. 팔을 활처럼 만들어, 최소반경의 호를 그리며 그것을 던졌다.
잭이 브라우닝을 당기기도 전에, 프랭크의 나이프가 날아온다.
똑바로. 인중의 중앙을 향해.
피할 짬은 없다. 헛점이 너무 커진다. 잭은 권총을 당기는 작동 도중에, 그것을 방패처럼 바꾸는 게 고작이었다. 브라우닝의 총신의 측면에 날이 닿게 한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프랭크의 나이프는 튕겨나갔다만, 그 소리 쪽에서부터 파고든 프랭크는 이미 허쉬 퍼피를 당겼다.
한 수 늦었다. 예측한 수가 물렀다. 잭은 자신의 상상력 부족을 탓하며, 어찌 회복할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프랭크의 총구가 눈 앞에 쫓아왔을 때, 나이프를 튕겨 낸 브라우닝은 너무 늦고, 나이프는 나이프는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가 있었다. 지금부터 나이프를 던져도, 그 전에 프랭크의 탄환이 미간에 박히겠지.
할 수 밖에 없다, 고 잭은 마음을 굳힌다.
허쉬 퍼피의 약실에 화약이 터지는 음이 잭의 귀에 들리기 전에 총구의 안에 라이프 링(*라이플링?)을 전해받은 탄환은 회전해 안정한 모습을 유지해가며 잭의 미간을 향해 날아 온다. 잭은 각오를 정하고, 나이프를 튕겨낸 브라우닝을, 그대로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나이프가 브라우닝의 측면에 닿은지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이프의 충격에 손바닥으로부터 브라우닝을 떨어뜨릴 것처럼 되었지만, 잭은 어떻게든 참아냈다.
탄환이 잭의 권총에 명중해, 어딘가에 날아갔다. 이번만은 충격에 브라우닝도 견디지 못해, 잭의 이마를 때린다. 그러나, 프랭크가 두 발째 방쇠를 당기기 전에, 잭은 이미 허리를 숙였다.
그 뒤로에, 찰라지만, 그렇달지라도 완벽히 순수한 전투본능이 잭의 모습을 규정한다. 곧바로, 나이프를 잡은 팔이, 슥,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파고나와, 그 칼끝이 예상된 결말을 피하지 않고, 당연스럽게 프랭크의 복부를 쑤셨다.
프랭크 안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잘렸다.
찰나에, 프랭크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퉁, 하고 타성으로 고꾸라진 프랭크의 몸이 잭에게 기대어왔다.
허쉬 퍼피가 진흙바닥에 떨어진다.
잭은 어깨에 턱을 얹은 프랭크의 옅은 숨이, 잭의 귓가에 느껴졌다. 힘이 빠진 프랭크의 몸을 바친 채, 잭은 얼마만큼 서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폐허에 가느다란 빗방울이 내리고 있어, 신들의 시절부터 솟아난 나무들의 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모습을 감추었다.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연하게 이어지는 잔혹한 시간 안에서 프랭크의 따뜻함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라졌다. 잭의 어깨에서 프랭크의 머리가 떨어져, 그 몸이 흐느적 흐느적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잭은 선 채로 느끼고 있었다. 그 얼굴이, 프랭크의 인중과 볼과 이마가, 잭의 가슴을, 배를 어루만지며 마침내 진흙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 감각을 알고 있다.
하얀 꽃잎이 날린다.
말라버린 나무가 홀로 외로이 선 호숫가의 풍경. 이 하얀 꽃들은 뭘까. 백합인가. 먼 곳에서, 산 너머에서 버섯구름이 솟아 오르는 걸 바라본다.
하얀 여성이 서 있다.
그 표정을 굳힌 채, 주변의 모든 장소에 감각의 망을 펼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또 그 눈동자는 쓸쓸해 뵌다. 핵의 불꽃에 타버린 뒤, 그녀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소멸한 풍경 안에서, 인류의 조종(弔鐘)이 된 최후의 버섯구름을 바라보는, 마지막 사람.
환희,라 하얀 여성은 말했다. 쓸쓸히. 환희란 너무나 떨어진 얼굴로.
그리고 지금, 평안을 얻은 듯 미소짓는 프랭크를 자신은 내려다 보고 있다. 잭의 발치에, 안개같은 가랑비에 얼굴을 드러낸, 프랭크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온화해서, 잭은 남몰래 동요하고 있었다.
이 온화함.
자신은 이 온화함을 알고 있다.
그게, 그 때도 이렇게 죽어간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예측하지 못햇던 동요가 잭을 덮친다. 몸 깊은 곳에서부터 찢고오르는 통곡에, 잭은 견디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뱃속에서 이름 모를 감정의 야수가, 네 탓이다, 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게, 당신이 쏘라고 말했으니까, 보스. 당신은 임무를 믿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지. 언제라도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라고 내가 말했을 지라도. 어렸다. 어려서 어리석었다. 그러나 나는 나라란 무언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어 줄 가치가 있는 나라라니, 사람이 공동체를 꾸릴 때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얼마나 있었는가.
당신은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며, 그래도 자신은 임무같은 걸 최후까지 믿고는, 혼자서 멋대로 가버렸다. 그런 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나로부터 믿을 대상의 환상을 새겨놓고는 저 혼자 도망쳤다.
당신은 순직했다고 말하겠지. 그 넓은 세상에서 오직 몇 사람만이, 진상을 아는 누군가도 같은 말을 했겠지.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은 순직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눈 앞에, 일찍이 전장을 같이 누비던 남자가, 나에게 찔려서 버려지고 있다. 배로부터 피가 울컥 흘러나와, 그 피가 진흙에 섞여 들어갔다. 당신에게 방아쇠를 당겼을 때와 똑같이, 그 모습 그대로인데 나는 그걸 내려다 보고, 그 녀석을 죽여서, 그 녀석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잭은 언제부턴가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것을 그저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따뜻하게, 동시에 잔혹한 모습으로.
그 투명한 눈동자는, 마치 등 뒤에 세워진 석상과도 같았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