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 SS] 바젯트만의 이야기 : 외계령(外界靈)의 세례 ② (written by 깜악귀)

2.


바젯트는 코토미네를 보면 화가 났다. 그가 한 마디 할 때마다 화나 나고 짜증이 났다. 가끔은 자신을 일부러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같은 조직에 있었다면 그를 향해 명백히 분노를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짜증이 낫다. 이 남자는 신경이 쓰인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인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일부러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아무 말이라도 해라.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달라.

바젯트 자신도 알고 있다. 이것은 중증이다. 위험하다. 멈출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멈출 수 있을까. 위험의 강을 건너는 두 다리를.

바젯트는 천천히 나아갔다. 호를 가로지르는 도개교를 지나 활짝 열려 있는 성문을 통과하자 첫 번째 상대가 나타났다.

- ‘하이드 2호’인가.

그것은 먼저와는 다른 꺽다리 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손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다리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온 몸의 혈관과 분비선이 돌출되어 있는 것은 전과 같았다.

- 와라. 괴물.

바젯트는 통통 뛰어오르며 풋워크를 밟기 시작했다. 만전의 태세에서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확신이 담긴 동작이었다. 칼날 같은 팔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자 바젯트는 몸을 낮게 깔며 그 옆구리에 강철의 훅을 집어넣었다. 괴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지만 이미 바젯트는 상대의 사정거리에서 이탈한 뒤였다.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구두에 새겨넣은 속도의 룬이 가동하고 있었다. 복수체와 전투 중에 불시의 기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젯트는 전법과 마술구성을 변화시킴으로서 어떤 상대에 대해서도 대처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집중력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카운터가 바젯트의 장기였다.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며 자신의 타격을 박아넣는 것이다. 이렇게 열중하는 사이, 오전에 자신이 마력을 불어넣어서 아직도 마술이 발동하고 있는 품 안의 옷자락이 방금의 괴물, 자신의 소유자을 향해 붉은 안개의 선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 *


5호째의 하이드씨가 부서져 내렸다. 왜인지 모르게 한 마리씩 달려들고 있다. 야쿠자 영화에서 1:1 대결이 끝없이 연이어지는 장면 같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그 야쿠자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가족과 애인의 원한을 갚는데 성공하는 주인공인 셈이었다.

조금은 의아한 일이다. 이만한 사건을 일으킨 마법사의 성 치고는 결계수준이 낮다. 방금 지나온 결계는 초보자의 그것과 다름없다. 설계도 성의가 없는 데다가 그저 침입자의 존재만을 주인에게 보고하는 조잡한 물건이다. 왜 좀 더 방어에 치중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이 정도 사건을 일으킨 마법사의 결계라는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오히려 결계에 의한 공격이 더 잘 먹혔을 것인데….

마을에서 추적마술을 사용했을 때 느꼈던 거대한 마력의 위압감이 느껴져지 않았다.

그 의문은 바젯트가 성의 3층 홀로 뛰어들어갔을 때 풀렸다.

바젯트는 보았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몸뚱이.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그 곤충형의 생물을. 붉은 눈동자가 두 개, 바젯트가 들어온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살아 있는 괴물이었다. 괴물 중에 최악의 존재였다.

거대한 거미. 이 형상에 대한 정보를 학습한 적이 있었다. 아니 협회의 임무를 맡은 마술사라면 이 존재를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렇군. 내가 ‘마법사’를 잡으러 왔다는 것 자체가 오류였군.

- 그렇소. 내가 사용한 것은 마법도 무엇도 아니오. 그냥 초보적인 마술일 뿐입니다. 다만 그것이 여기 오르트군의 힘을 원천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남자는 몸을 숙여 공손히 손님을 접대했다. 그의 얼굴에는 환영과 비웃음의 뜻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었다. 남자에게는 그런 표정이 태생의 것인 듯 했다.

- 미안하지만, 마술에 대한 재능은 내게 그다지 없소이다. 상당히 헷갈리게 한 모양이군요. 알다시피 나는 마르티네라는 마술사입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게 있지요.

''바젯트는 이를 악물었다. 마술사가 어떤 마법적인 힘으로 흡혈종, 그러니까 '사도'와 같은 일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술사가 마술의 힘으로 스스로 사도가 되는 일도 가끔은 있는 일이니까. 그럴 경우에 그 마술사의 공방 주변이 소설에 나오는 흡혈귀의 성과 유사한 현상에 둘러쌓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역사 속에서는 몇 번이고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답은 정말 단순했다. 중요한 것은 마술사가 아니었다. 진짜 사도가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었다. 마술협회에서 사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오르트(ORT)’라면 일반 사도와는 전혀 다른 별외적인 존재다. 그것은 무생물이며 생물이고 사도이면서 사도가 아니다. 심지어 그것은 지구의 생물조차도 아니다. 마을 주민들이 단순한 식시귀와는 달랐던 것도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저런 것이 여기에 있는 거지. 사도의 상위 12조 이상은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다. 제 5조 정도가 되면 이미 조직 전체가 대응해야 하는 차원이 된다. 더구나 강함의 정도로 치면 오르트는 사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스스로의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 어째서 이런 미욱한 마술사에게 사도 5조 같은 거물이 붙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정곡이다.

- 뭐라고 할까. 오르트군은 내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계약을 하게 되었다… 라고 해야겠군요. 당분간은 결국 내가 이 녀석의 대변자랄까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그래, ‘패밀리어(familiar)’라고 해도 좋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패밀리어라고 해도 좋겠군요.

이 녀석,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읽고 있어.

- 아, 독심술 같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르트군의 몸에 당신의 상념이 비치는 것입니다. 그래요. 당신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군요. 의지할 것을 찾고 있어.

수정거미의 몸에서 붉고 푸른 원형의 빛이 점멸했다.

- 음… 누군가가 당신를 도와주러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은 이 오르트 앞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런 괴물을 상대로 승산은 높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단 철수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대응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약 철수하면 자신은 이 업무에서도 밀려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바젯트의 몸이 굳었다. 그것은 자신이 막연하게 머리 속에 떠올린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눈 앞의 사내는 하찮은 연애소설을 읽듯이 자신의 진실을 끄집어대고 있었다.

''- 그렇게 되면 협회는 철수를 빌미로 아무런 업무도 지위도 주지 않을 테고, 자신은 쓸모없는 도자기 인형과 같게 된다. 그것만은 할 수 없어. 하지만 철수를 하지 않는다면, 승산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 '그 남자'가 있더라면? 어째서 오지 않는 거지 - 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이런 또 한 명이 있었습니까? 감지할 수 없었다니 대단한 마술사인 모양이군요.

마르티네는 눈웃음을 지었다. 좋습니다. 당신 지금까지 중에는 제일 재미있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이.좋.아.하.고.매.달.리.고.싶.어.하.는.그.사.람.이.올.때.까.지.

이대로 시간을 끌어도 괜찮습니다.

마르티네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바젯트는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조종당하듯이 등 뒤에 매달린 원통형의 케이스에서 두 개의 철구를 꺼내놓은 참이었던 것이다.

* * *


주먹보다 큰 검은 탄환이 바젯트의 몸 주의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항성의 주위를 운행하는 행성 같은 원운동을 그리고 있다.

''- 그건 당신의 마술예장인가요? 아, 어릴 때 협회 문서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빛의 신이 사용하던 검, '프라가라흐'로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마크레밋 가문입니까.

바젯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마르티네는 이미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있었다.

- 재미있습니다. 재밌있어요. 영웅이나 신의 자식이 사용하던 병기도 아니고, 신이 직접 사용하던 병기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인간과 함께…,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 그런가요? 명문가의 아가씨.

이어지는 말은 바젯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 그걸 발사해 보십시오.
- 뭐라고?

마르티네는 연극을 하듯 두 손을 벌렸다.

- 그것을 사용해보란 말입니다. 여기 사도 제 5조. 오르트군에게.
- 무슨 속셈입니까. 당신.

- 무슨 속셈이냐고요? 왜 항상 사람들은 나에게 무슨 속셈인지를 묻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속셈인거요!’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거든요. 저는. 당신의 선임자들도 그랬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 타인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 난 속셈 같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미스 마크레밋.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이 오르트군에게 그 신의 마법병기를 사용해보는 것이죠. 그 결과가 궁굼하던 말이오. 오르트군을 상대로, 그것이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 '빛의 신 루의 사도와 그 마법병기' VS '수성에서 온 거미괴물‘ 어때, 긴장되지 않습니까.

마르티네는 두두두두두두…하고 북을 두드리는 시늉을 낸다. 마치 광대와도 같다. 그러나 입가에는 피곤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젯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정을 유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 이것이 오르트를 향해 발사되면 당신은 무력해질 겁니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마르티네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이어서, 지금까지 그의 얼굴이 비춘 감정 중에서 가장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으로 보였다.

- 당신에게 나를 걱정해달라고 했나? 네가 내 부모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조상? 위선 떨지 말란 말이야! 차라리 달려와서 내 목을 부러뜨리지 그래? 그러려고 온 것이 아닌가? 이렇게!

그러면서 마르티네는 목뼈가 부러진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 아까 그 소년처럼 달래는 척 하면서 목을 부러뜨리란 말이다! '이름은 묻지 않을게' 하면서 우두둑!

바젯트는 템포를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을 끌면 좋은 일이었다.

- … 내가 이것을 당신에게 발사한다면 어떨습니까. 당신은 피할 자신이 있는 것 같군요.

- 아니, 피할 자신 없습니다.
- 뭐라고?
- 내가 말해두지요. 미스 마크레밋. 나에게 그것을 발사한다면 나는 죽을 겁니다. 당신이 눈치챘다 시피 나의 개인 능력은 대단치 않소. 마술각인이라고 해도 겨우 하급을 벗어난 정도지. 나에겐 그런 대단하신 마술병기를 막아낼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오르트가 나를 위해서 그걸 막아내주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의리는 없거든요.

- .....

- 아까 나는 속셈이 없는 남자라고 했지요? 하나 더 첨가하자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속셈이 없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요. 난 당신이 이 오르트를 향해 그 마술병기를 사용해주길 바랍니다. 부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결과가 알고 싶거든요. 오르트는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전설의 마술병기는 대체 얼마나 전능한가.

제 정신인가. 이 남자는. 마술사는 하나 같이 괴상한 인간들이긴 하다. 그러나 이 남자의 비정상은 ‘괴상하다’라는 범주가 아니다.

- 하나 예언해드리지요. 나를 향해 그걸 발사한다면 이 게임은 빨리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오르트에게 그걸 발사한다면 당신은 원하던 것을 얻게 될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예언이니까요.

바젯트는 눈을 감았다. 심장이 숨죽인 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런 타입은 상대하기 어렵다.
프라가라흐를 서둘러 꺼낸 것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저 남자의 함정에 넘어간 것일까.

코토미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아직인가?
생각하지 말아라. 여기는 자신 혼자서 처리할 각오가 아니면 안 된다.

… 마르티네를 잡으면 오르트는 남는다. 오르트를 잡는다면 그 동안 마르티네는 도주할지 모른다. 자기 혼자만으로는 무엇보다 그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대체 어떤 포석을 깔아 놓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 그가 원하는 것이고 어느 쪽이 그가 감추려는 것인가.

… 거미는 말이 없다. 본래부터 말이 없는 개체일 것이다. ‘저것’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저것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인간에게 다섯 번째로 위협적인 사도라는 뜻의 ‘사도 제 5조’. 외계의 생명체. 오르트.

… 자신의 임무는 무엇인가. 마르티네를 잡는 것인가. 오르트를 잡는 것인가. 사도를 잡는 것은 본래의 임무가 아니었다. 자신의 임무는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마법사를 구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마술사’였으며 그 힘의 원천은 사도였다. 이런 경우에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코토미네는 오고 있는 건가.
이미 죽었는가.
아니면… 자신을 버렸는가.
그 남자가 그럴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여기는 나 혼자서 처리하지 않으면.

- 마르티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대로 구속되어 봉인지정될 생각은 없습니까? 생명은 보장하겠습니다.

마르티네는 하하, 하고 웃었다.

- 난 봉인지정 대상이 될 만한 마술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자력으로 그만둘 생각도 없지요.

각오를 굳힌 바젯트의 몸 주위로 검은 강철구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위이이잉 … 하는 가동음이 난다. 푸른빛을 띄기 시작한다.

- 좋아!

마르티네가 소리쳤다. 눈동자가 분출을 시작한 화산처럼 밝게 빛난다.

- 이대로는 흥이 나지 않으니 내가 상대할 만한 마술을 시전하겠습니다. 동시에 쏘는 것으로 하죠….

미친 놈. 바젯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이다. 이로서 프라가라흐의 능력은 120% 발휘될 것이다. 프라가라흐는 카운터에 특화된 마술예장으이며 상대가 반격함으로서 상대가 승부를 건 기술에 ‘선행’하여 적중한다는 마법 작용을 수반한다. 즉, 상대에게 적중- 타격을 입힌 순간 “상대보다 먼저 적중시켰다”라는 관념이 성립하여 상대가 발동한 기술은 취소된다.

따라서, 프라가라흐는 카운터라는 조건 하에서 완전한 승리을 보장하는 마술예장인 것이었다. 지금 그 조건이 만족되려 하고 있었다.

마르티네는 왼손을 오르트에게 대고 오른손은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마술영창을 외운다.

공포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너의 이름이 된다.

- ‘외계령의 세례’

그러자 녹색의 빛 혹은 녹색의 안개가 바젯트와 마르티네 가운데의 허공에서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바젯트는 그것이 생겨나자 자신의 피부가 따갑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다.

- 그저 평범한 정신 구현화의 마술입니다만… 오르트군의 몸을 통해 시전하면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 됩니다. 그 동안은 내가 생각해도 좀 반칙같은 능력이라 생각했지만 신의 병기를 상대로라면 그림이 되는 것 같군요. 이건 당신의 병기가 발사되는 순간 바로 당신을 덮어누를 겁니다. 마술사든 뭐든 인간이라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장담하겠습니다.

그는 이제 두 손을 하늘로 찌르며 소리쳤다.

- 쏘세요!

그것을 신호로 바젯트는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강철구가 단검의 모양으로 변하여 사출되었다.

적대하는 자를 자르고 소망에 응답하는 신의 팔, ‘앤서러 프라가라흐’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 * *


마르티네는 바젯트의 옆구리를 물었다. 바로 아침에 식시귀가 손톱으로 꿰뚫었던 부위였다. 바젯트는 거칠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 여기인가? 아가씨의 살점을 찌른 놈은 벌써 죽었겠지?

마르티네는 온 힘을 다해 바젯트의 옆구리를 물었다. 바젯트는 다시 비명을 지른다.

- 나를 향해 발사하면 난 죽을 거라고 말해주었지? 바보 같은 년. 왜 가르쳐 주는 것도 그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요즘 여자들은 하나 같이 정상이 아니라니까! 바보 같은 여자에게 하나 더 말해주지. 불안하지? 너의 몸 안에 섞인 마을 주민의 체액이 어떻게 작용할까. 지금은 별 이상이 없지만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 난 괴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아 대답을 할 필요는 없어.

수정거미의 몸이 붉은 색과 보라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 너에게는 단순한 색으로 보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구체적으로 보이지. 자, 이제 말해주지. 너는 식시귀가 되지 않아. 체액으로는 작용하지 않지. 그러니까 내가 너를 아무리 깨물어도…,

바젯트는 다시 큰 소리를 질렀다. 격렬한 통증이 엄습하며 온 몸이 움찔움찔 진동한다.

- 절대 이상하게 변하거나 하지 않아. 그 마을 주민들은 식시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다만 ‘외계령의 세례’를 받은 거다. 수성의 왕 오르트의 세례를! 누가 그랬냐고? 물론 내가 그랬지!

“바로 내가아아!”하고 크게 소리쳤다.

- ‘세례’라는 이름도 내가 붙였어! 체액으로 전염되는 그런 저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자, 그럼 이쯤에서 알아채야겠지. 지금 너의 몸을 사로잡고 있는 녹색 안개는 뭘까? 이 녹색 빛은 뭐지? 내가 아까 뭐라고 하면서 이걸 썼는지 들었지? ‘외계령의 세례’라고 했지? 이 대목에서 ‘아 그럼, 혹시 나도 아까 그 괴물들처럼 되는 건가!’하고 놀라야 하는 거야!

- 하지만 아니야. 안심되지? 너는 아까의 마을 주민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야. 너는 마술 회로가 있잖아? 가문 대대로 내려온 예쁜 심지가 있다고. 그거 잘 연마하고 발달시켜 두었겠지? 더구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계속 전해내려온 아름다운 마술 각인도 있겠지? 거기에다 녹색의 불을 붙이면 그게, 아무래도 일반인과는 좀 다른 것이 된다고. 자네가 어떤 것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미스 마크레밋.

마르티네는 바젯트의 귀가에 대고 속삭였다.

- 너는 너의 손으로 죽인 네 동료들보다 더 ‘성공작’이 될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지.

그리고 순간 마르티네는 연민의 눈빛을 띠고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 나를 죽였어야지! 나를 통해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거야! 나를 죽였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텐데…

바젯트의 뺨을 철썩철썩 때린다. 연이어 그 손이 바젯트의 머리를 녹색 안개 속으로 쳐넣었다. 시야가 닫혔다.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혔나 싶더니, ‘풍경’이 펼쳐졌다.

바젯트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 * *


바젯트는 깨어났다. 자신은 거대한 아주 거미의 배 속에 갇혀 있다.

녹색 불이 깜박 거렸다.

자신은 아주 작은 거미의 배 속에 갇혀 있다.

다시 녹색 불이 깜박 거렸다.

자신은 아주 커다란 거미의 배 속에 갇혀 있다.

거미의 배 속은 온 몸이 뻑뻑하게 조여온다. 그러나 그것은 몸에 딱 맞는 느낌이기도 하다. 자신의 형태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온 몸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거미는 황량한 행성에 있다. 거미는 혼자이며, 이 불타는 행성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아니, 거미는 생명체가 아니다. 적어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거미는 일종의 지박령과 같다. 이 행성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의지’를 행사할 대표자로 그것을 출현시켰다. 적어도 거미가 이 행성에서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말은 올바를 것이다. 그는 신민을 소유하지 않은 지배자이다. 유지하는 자이며, 침략자는 아니었다.

거미는 수정으로 된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서, 그 배 속에 있는 바젯트도 바깥을 볼 수가 있었다. 대지는 달 표면과 같은 크레이터와 협곡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황량한 풍경은 섭씨 200도는 훨씬 넘는 엄청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뜨거우면 공기조차 슬퍼서 울기 마련이지만 이곳에서는 대기라는 것이 존재하질 않는 것 같다. 때문에 아지랑이도 생기지 않는다. 생명체가 살래야 살 수가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이 중에 가장 압도적인 풍경은 ‘태양’으로서 그것은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처럼 거대하게 천구(天球)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의 유일한 신(神)이며 모든 질서이다. 거미는 그런 곳에서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천년 정도는 이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 너머에 흑점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바젯트는 자신이 어떻 태양 '너머'를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태양의 흑점처럼 보이는 검은 점들이 우주에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수정거미의 시각이었다. 그 검은 점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공포의 근원을 의미하고 있었다.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점이 아니라 검은 빛을 내품고 있는 그것은 하나하나가 무한한 힘을 가진 괴물, '벌레'이었다. 그 중 하나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종은 감당할 수 없었다.

바젯트는 “아”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 .

아무 것도 없다.

바젯트는 다시 “살려주세요”라고 말해 보았다.

- .

아무 것도 없다.

소리가 없으면 의식도 없다. 의식이 없으면 의지도 없다.

의지가 없으면 자아도 없는 것이다.

바젯트는 비명을 질러 보았다.

- !

* * *


바젯트는 깨어났다. 자신은 거대한 아주 거대한 거미의 배 속에 있었다. 그리고 피냄새가 났다. 풀을 먹인 옷자락의 냄새가 코에 감겨 왔다.

눈을 떴다. 눈 앞에 코토미네의 옷자락이 보였다. 고개를 위로 들자 코토미네의 턱이 보였다. 그 위에 놓인 눈은 감겨 있었다. 코토미네도 이곳에 왔다. 내가 기다린 대로. 혹은 기대한 대로. 그 사람도 여기에 온 것이다. 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 아....

자신의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바젯트는 정신을 차렸다. 허리 아래에 단단한 돌덩이가 만져졌다. 사방이 돌로 되어 있고 앞과 뒤는 뚫려 있다. 이곳은 어딘가의 동굴인 것 같다. 눅눅한 바람이 바젯트의 얼굴에 느껴졌다. 바젯트는 다시 코토미네의 얼굴을 보았다. 이 사람이 와준 것일까? 이 사람이 나를 그 수정거미의 배 속에서 꺼내온 것일까.

''그 ‘행성’으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바젯트는 그 ‘풍경’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뇌에서 기억을 인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오직 막연한 것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태양 너머로 나가오는 암흑 신(神)의 무리들을, 바젯트는 보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오르트처럼 곤충이기도 하고 생물이기도 하며 광물이기도 하고 혹은 그 모든 것이 아니었다. 생김새만으로는 '거대한 벌레'라는 이름이 걸맞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의 정신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여서, 인간이나 다른 종류의 생물에 대해서 조금의 동정심도 가지지 않을 터였다. 아니 동정심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고통을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신비의 근원'에 직접 닿아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가물가물하게 검은 실루엣으로 녹색의 빛이 검은 빛 중 가장 앞서 있는 하나와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다. 우주에서 빛이 점멸한다. 태양 너머에서 수성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오르트는 단지 그것의 진군을 잠시 저지시켰을 뿐이었고, 그 반동으로 지구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 ‘검은 빛’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미치기 일보직진이었다.

바젯트는 ‘외계령의 세례’가 어떻게 해서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와 닿기 직전에 자신이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알 수 있었다.

바젯트는 코토미네의 맥박을 확인했다. 쇠약해지긴 했지만 살아 있었다. 왼 팔의 상박에 법의를 찢은 천을 묶어 지혈해놓은 것이 보였다. 이 사람이 자신을 구한 것은 틀림없었다. 바젯트는 가슴이 잠시 행복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절대 허용하지 않으려 작정한 감정은 기가 막힐 정도로 예쁘고 따뜻했다.

그러나 자신의 옆에 앤서러 프라가라흐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오르트와 마르티네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리고 태양 너머의 암흑 신들의 무리들을 다시 떠올렸을 때 바젯트의 정신은 급격히 추락했다. 불안한 현실로 완전히 돌아온 것이다. 자신은 완전히 패배했다. 이대로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 녀석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바젯트는 중얼거린다. 계속 중얼거린다. 일단 자신이 이렇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감추어야 한다. 누구에게? 누구에게든. 바젯트는 어느새 양 팔로 어깨를 거머쥐고 떨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잠겨 간다.

-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일어나, 신부, 일어나란 말야!

* * *


코토미네는 말했다.

- 나의 신으로는 그것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신의 신으로는 태양 너머의 ‘그것들’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바젯트는 작게 중얼거렸다.

코토미네가 그 말을 들었다는 듯이 바젯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신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젯트는 생각했다. 오르트조차도 ‘그것들’을 상대하지 못하여 지구로 떨어졌던 것이다. 나의 프라가라흐는 분명히 오르트에게 적중되었지만 그것을 ‘뚫지’ 못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한 점에 집중되었지만 행성 의지가 한 몸에 구현된 오르트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결국 타격을 주지 못하는 한 “선행하여 적중한다”라는 프라가라흐의 신비도 작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운이 나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력을 내지 못했다 -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엄격한 힘의 차이였다.

그렇게 엄청난 오르트조차 당해내지 못하는 벌레들의 군단이 태양 너머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떠올리자 바젯트는 온 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끊임없이 차분한 감각이 느껴졌다. 너무도 거대한 공포가 오히려 냉정함을 구축한 것이다.

그들이 마르티네 가(家)의 성으로부터 탈출한지 벌써 18시간도 넘게 지나 있었다. 이제 다음날의 밤, 그것도 자정을 지난 새벽 3시였다. 바젯트가 임무를 받아들인 시점이 오전 8시였으니, 다섯 시간 후, 날이 새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이다. 그들로서는 이 지역에서 이탈하기만 하면 된다. 패배한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상처는 되었을 거야’

바젯트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일방적인 패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상처를 입혀 주겠다.
내가 그렇게 상처 입으며 살아왔듯이.

그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젯트는 이를 악물었다.

- 되돌아가겠습니다.

코토미네는 바젯트를 바라보았다.

- 자네가 나에게 한 말이니 스스로 잊진 않았겠지. 이제 날이 밝아오면 ‘소돔의 빛’이 떨어질 거라는 걸.

- 알고 있습니다.

- 목숨을 버리고 싶은 건가?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사도 제 5조를 상대할 수 없어. 오르트의 힘은 진조 흡혈귀의 10배 이상이야. 협회나 교회 전체에서 나서야 하는 상대란 말일세.

- ….

- 프라가라흐 때문이라면 지금은 저곳에 놓아두도록 해. 나중에 수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너는 작업을 하듯이 하루를 살아간다. 조금도 무엇을 즐기지 않는구나.’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에게 가문에 관련된 예식과 마술을 가르치는 것 말고는 관심을 쏟은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만은 그도 약간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남기고 죽은 유일한 것이다. 앤서러 프라가라흐. 그건 가문이 소유한 가보 같은 것이 아니다. 신과 직접 이어져 있는 마술예장, 오직 저것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마크레밋 가는 대를 이어왔다. 마크레밋 가문은 그것의 부속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신은 변변치 못한 사람이다. 마음을 없애는 것도 마음을 막아내는 것도 할 수 없다. 강한 척 하지 않으면 한 발자욱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18시간 전에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손으로 그 물건을 직접 주워올리고,

다시 장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회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욱 두렵다. 바젯트는 뚜렷한 동기를 느꼈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명확한 동기를 느낀 것은 런던으로 떠나가기를 결정했던 때 이후 오랜만이었다.

- 코토미네. 저는 저 곳으로 돌아갑니다. 당신과 저는 이 일에 있어서 함께 할 이유가 없겠군요.

코토미네는 바젯트를 응시했다. 이 여자는 가끔 자신을 놀라게 한다고 생각했다.

- 그래, 이별이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빌겠네.

그는 미련 없이 웃으며 바젯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젯트가 그 손을 맞잡았다.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젯트는 꽤 괜찮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 네. 반드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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