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 SS] 바젯트만의 이야기 : 외계령(外界靈)의 세례 ③ (written by 깜악귀)

3.




20시간 전의 일이다. 코토미네는 바젯트의 팔 다리가 바둥거리다가 곧 경직되는 것을 보았다. 외부적인 저항을 모조리 내면의 격투에 집중하기 위한 것일 터였다. 바젯트의 머리를 녹색 안개에 처넣고 있는 사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 불쌍한 여자로군. 성장할 기회도 제대로 주어진 적이 없고.

그 말은 평소 바젯트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코토미네는 기쁨을 느꼈다.

- 자네가 항상 원하는 대로 두려움이 추방된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겠네. 미스 마크레밋. 편하게 되는 거야. 아, 그리고 당신도.

마르티네는 코토미네가 숨은 장소를 향해 손을 뻗었다. 녹색의 안개가 방금까지 자리잡고 있던 곳을 에워쌌다.

- 이런. 오르트의 몸에 당신이 비추고 있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아무래도 힘들군.

마르티네의 왼손은 계속해서 오르트를 짚고 있었다. 전혀 방심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코토미네는 유리의 효과를 응용한 환시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에 들어올 때부터 갖가지 자취를 감추는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바젯트가 3층의 홀에 도착하기 직전에 이미 이곳에 숨어 들어오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상대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마르티네 역시 알고 있으면서 바젯트에게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좋다"는 식의 말을 했던 것이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녀를 속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 하루 이틀 해먹을 장사가 아니어서 말이지.

코토미네는 중얼거리며 뛰어들었다. ‘오르트’가 이 마술사의 패밀리어라고는 하지만, 그것에게는 주인을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좀 전에 확인한 사실이었다. 코토미네는 오직 마르티네만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지금 코토미네의 몸은 공간간섭과 빛의 굴절을 복합한 마술로 인해 마르티네에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오르트의 수정의 몸은 흐릿한 형체가 달려드는 것을 분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녹색 안개가 코토미네의 눈 앞을 가로막았다. 이 안개는 물리법칙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의식의 전환만으로 출현하고 이동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궤도가 상대에게 예상되는 한 이 안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코토미네는 안개에 삼켜지기 직전, 그 속으로 흑건을 던져 넣었다. 예상대로 안개는 엄청난 마력을 띄고 있지만 인간 이외의 것에 물리적 효과는 가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이 안개 너머의 인간에게 닿았으니까.

그러나 순간 녹색 안개가 코토미네를 사로잡았다. 흑건은 조금 빗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성의 홀에는 거미의 먹이로 사로잡힌 두 개의 녹색 거미줄 뭉치가 생긴 셈이었다.

마르티네는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 쪽에서 피를 흘리며 안개에 사로잡힌 코토미네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마르티네가 코토미네 앞에 고개를 숙이자 환시의 마술이 풀리고 그 몸이 꿈틀 하고 요동쳤다.

- 이런 ‘성직자’ 아닌가. 봉인지정 관리부 다음에는 매장기관이라. 하나 같이 예상했던 얼굴들이군. 그나저나 이 아가씨가 기다리던 것이 자네였나? 협회의 봉인지정 마술사 사냥꾼이 교회의 대행자를 기다리다니. 이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잖아.

그리고 마르티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목소리였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당신의 아버지와 그 이름을 부인하세요
당신이 그럴 수 없다면
내 사랑임을 맹세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캐퓰릿의 이름을 버릴 테니까요
당신이 몬태규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마찬가지일텐데...
몬태규가 뭐지? 손도 아니고
발도, 팔도, 얼굴도 아닌데....

오, 제발 다른 이름을 가져요

마르티네가 열중해서 세익스피어를 읖고 있는 사이, 코토미네도 조용히 영창을 시작했다.

고한다 -
부서지지 않는다. 이미 모두 부서졌도다.
너희들은 이미 빛에 굴종하였다. 굴종한 이는 부서지지 아니하니,
아무도 너희에게 지지 않으며,
아무도 너희를 의롭지 아니하게 하지 못할 것이오.

모두가 오직 유일한 신에게만 굴종하였다.

그리고 코토미네의 흑건이 마르티네의 안개를 흐트러뜨렸다. 마르티네는 더할 나위 없는 경이를 보았다는 얼굴로 그런 코토미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코토미네는 재빨리 움직여 바젯트를 끄집어냈다. 마르티네는 상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듯 바젯트를 어깨에 둘러메기까지의 몇 초를 그저 보고만 있었다.

- 이 여자는 내가 가져가지. 외계령의 마술사.

마르티네는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 그 상처로 살아날 수 있을까. 예수의 사도여.

그는 왼손으로 피가 묻은 단검을 꽉 쥐고 있었다. 그가 안개에 사로잡힌 코토미네에게 다가가서 셰익스피어를 읊기 전에 찔러 넣은 것이다. 이것은 그가 대항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한 상대에게 행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그의 마음 속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홀까지 올라온 코토미네는 바젯트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로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티네는 단검을 흘낏 바라보았다. 손잡이 바로 위까지 피가 묻어 있었다. 상당히 깊이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이로서 피장파장인지도 모른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의 상처를 강하게 눌렀다. 피가 후두둑 떨어져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정말 상처투성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의 사도여. 안개에서 나왔을 때 꼬마애를 구하기 전에 바로 나를 죽였어야지. 어째서 어려운 길을 가는가.

하긴, 자네의 주인도 상처투성이였으니. 삶은 누구도 상처입지 않은 채로는 죽게 하지 않는 법.

* * *


최대한 저항한다. 이것이 마르티네 가의 가훈이나 마찬가지였다. ‘포기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몰랐다. 마술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식에게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가 포기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나 역시 포기하기로 작정했다.

- 하지만 지금은 아냐.

적어도 지금은 아니지.
아직 버틸 수 있으니까.

자신은 아버지보다 나약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약했더라면 좋았다.

오르트의 수정으로 된 몸이 하얀 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한다. 그 빛이 그 수정으로 된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마르티네는 그것을 잘못 읽지 않았다. 그것은 몇 시간 후에 이곳으로 내려올 방대한 마력의 총량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것일까. 결론은 나와 있었다.

- 반드시 진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겨도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싸움이니까.

무엇을 상대로 이긴단 말인가. 협회를 상대로? 교회를 상대로?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해서, 그들이 적이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그들을 전멸시킨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된다는 말인가. 생존? 생존에는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르티네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의 두 발 사이에 피가 홍건하게 고여 있었다. 혼자서 제대로 지혈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분명 상처가 상당히 깊었던 것이다. 중요한 혈관이 찢어진 것 같다.

- 그 여자가 돌아올까?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듯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르티네는 곳곳에 결계들을 재정비해놓았다. 자신의 결계실력은 정말 하급이었는데도, 피를 흘리면서 성 전체를 돌아다니며 그렇게 했다. 그것을 끝내고 나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가문의 정신이다. 마르티네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때문에 아버지가 포기했더라도 자식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을 기다렸고 기다린 시간만큼 그대로 고독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 신부보다는, 그 아가씨가 오겠지. 그 신부는 자신의 힘으로 공포를 흩어냈다. '안개'를 자력으로 극복해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 다시 올 이유를 가진 것은 오히려 다른 쪽일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다른 쪽'이 돌입해 왔다.

-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군. 미스 마크레밋.

마르티네는 여자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마르티네의 발 사이에 놓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이제 더 이상은 아이가 아닌 게로군. 여자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니까.

데구루… 하며 바젯트의 발 밑으로 검은 강철의 공 두 개가 굴러왔다.

- 돌려주겠네.

바젯트는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위이잉…

강철의 구가 이제 앳된 기를 버리기 시작한 여성의 육체를 다시 회전하기 시작한다. 바젯트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 미안하지만, 다시 해보겠습니다.

마르티네는 미소를 지었다.

-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예언하지. 나를 향해 그걸 발사한다면 자네는 강해질 걸세. 어두운 껍질을 가지고 거꾸로 매달린 삶을 살겠지. 자네의 목적에 대해서도 좀 더 빠른 길을 거치게 될 걸세. 동시에 자네는 평생 회의하면서 살아가고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알 수 없게 될 걸세. 가질 수는 있지만 권리는 없을 거야.

- 오르트에게 그걸 발사한다면 자네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아가질 권리를 가지게 될 걸세. 자네는 배신당하고 상처입을 걸세. 그리고 모든 상처를 다 입기 전에는 삶은 자네를 놓아주지 않을 거고, 종국에는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형태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네. 그러나 권리만은 자네의 것이지.

바젯트는 이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정신집중의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술각인과 마술회로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고 그 안에 모든 마력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작동하도록. 신의 입지를 따라, 신의 마음에 따라, 신의 의지에 따라, 순리에 바르게 짜여졌다. 이 모든 것이 앤서러 프라가라흐에게 전이되었다. 아버지는 이 때마다 초월자의 일각을 접했을 터다. 그것이 그가 가문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 준비가 된 모양이군. 그럼 나도 다시 한번 시전하지.

‘외계령의 세례’

녹색 안개가 바젯트의 머리 위에 출현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음전하를 띄고 떨리고 있었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마력량을 지녔다. 마치 마을 하나를 모두 뒤덮어버릴 듯한 거대한….

""''그러나 바젯트는 개의치 않았다. 오르트의 목 위 동체에 난 작은 흠집이 분명히 보였다. 충격이 전혀 없었을 리가 없다. "상대의 선행에서 적중한다"는 프라가라흐의 신비도 분명히 작동했을 것이다. 다만 상대의 공격행위를 '취소'시킬 정도의 타격을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쏘아준다. 눈 앞의 빛이 정점에 달했다. 몇 분의 침묵 속에서, 바젯트는 무념의 상태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어디에도 닿는 신의 팔, 앤서러 프라가라흐.

완벽한 사출이었다.

* * *


바젯트는 경악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던 녹색 안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라가라흐의 사출과 동시에 덮쳐내렸어야 할 안개였다. 두 번째는 성의 창 밖이 거대한 하얀 빛으로 뒤덮여 버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마력량이 성을 중심으로 마을의 상공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세 번째로 경악한 이유는 완벽하게 앤서러 프라가에 의해 몸이 관통된 마르티네의 육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은 오른쪽 어깨로부터 완전하게 뜯겨져 나가 있었다. 보통 인간의 몸으로 신의 병기를 받으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형체가 유지되어 있는 것이 이상한 정도다.

자신은 오르트를 향해 완벽하게 프라가라흐를 날렸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상대의 ‘외계령의 세례’는 그 순간 바젯트를 향해 덮쳐들어오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의 공격에 맞추어 카운터로 들어간 공격이 아닌 만큼, ‘목적한 목표물에 선행하여 적중한다’라는 프라가라흐의 마력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르티네가 오르트 앞에 몸을 내밀어 궤도에 끼어들었다 해도 앤서러 프라가라흐는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휘어들어가서 목표를 정확히 타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라가라흐는 갑자기 끼어든 마르티네의 몸을 맞추고 궤도가 바뀌어 오르트의 다른 부분을 스쳤다.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작열하는 하얀 빛이 성의 상공을 가득 채웠다. 바젯트는 성의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하늘을 보았다. 소돔의 심판이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성의 상공에 녹색 안개가 하얀 빛의 마력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아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젯트는 당황했다. 마르티네를 소거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공포에 맞서고 싶었다. 자신은 불가능하더라도 평온함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오르트 밑으로 들어가’

바젯트의 머리 속으로 말 소리가 들렸다. 바젯트는 고개를 돌렸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마르티네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머리 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성대를 쓸 수 없어서 오르트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오르트 밑으로 들어가라. 녀석이 너를 살아남게 해 줄 거야’

-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너도 그 안개 속의 풍경을 보았지?’
- ….

‘너는 그 풍경을 보고도 돌아왔다. 나는 돌아오지 못하고 이렇게 된 거야. 그런 차이다. 돌아온 자에게 공포는 작동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설 권리를 가졌어. 그러니 좀 더 상처입을 때까지 살아남았으면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런 일을 했다. 후회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 하나라도 더 죽이겠다고 생각하는 후즐근한 악당 타입은 아니야. 살 수 있는 사람은 살면 되는 거야.’

‘어서 들어가. 오르트의 마력을 끌어쓰고 있더라도 나의 능력으로는 저것을 그렇게 오래 막을 수 없다’

바젯트는 그 말에 따랐다. 오르트는 배를 살짝 들어올려 바젯트가 몸을 누이기 좋게 해주었다.

‘부탁을 들어주어서 고맙다, 오르트’

오르트의 몸에서 녹색과 붉은 빛이 번갈아 점멸했다. 나름대로의 작별인사일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모르겠군. 아아, 나도 잘 모르겠어.

마르티네 가문의 비전은 곤충과 우주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환상소설의 일종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주의 거대한 곤충은 행성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마력을 가지고 근원을 희롱한다. 그것은 지구를 몇 번이고 지배하였으며 지금은 단순한 휴식기일 뿐, 인간은 그 잠깐의 짬에 번성한 미약한 노예 종족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그런 내용이었다. 이런 비전이 전해지고는 있다지만 마르티네 가문에서 한명도 이러한 실체를 마술로 구현하는데 성공한 바가 없었다. 결국 비전은 단지 그냥 비전일 뿐이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자연스럽게 가문의 일원이기에 읽어두는 단순한 ‘교양’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이 가계가 익히는 마술은 흔하고 평범한 것들 뿐이었다. 대마법사 니알라토텝의 이집트 시절 제자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계라고는 하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마르티네는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다른 주문에는 모두 흥미가 없었지만 특히 소환과 전이에 있어서는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더구나 가문 사람들 자신들도 폄하하는 가문의 비전, 어릴 때 읽은 그 문장들이 그의 머리 속에 또렷이 박혀 있었다. 그에게 그 이미지는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다.

자신의 소환주문이 아프리카에 있던 오르트를 공간전이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자, 그는 가문의 비전이 또렷한 증언이며, 그 증언에 접근하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라고 깨달았다. 오르트는 가문의 비전이 묘사하는 바로 그 이미지와 아주 흡사하였다. 그리고 오르트를 통하여 수성 그 너머, 태양 너머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그는 가문의 비전이 또렷한 진실이라는 것을, 아니 그 이상의 공포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아버지에게도 보여주고 말았던 것은 최악의 결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똑똑하고 천진한 자신의 사망을 눈 앞에서 지켜보았다. 새로 태어난 것은 너무나도 걷잡을 수 없는 광기였다.

쿨럭.

혈액이 역류한다.

허공으로 솓구친 피가 얼굴에 분수처럼 쏟아진다.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소리도 없다.

이것은 바로 그 수성의 풍경과 같다.

그의 시각은 하얀 빛과 녹색 안개의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신경을 다른 곳에 분산시키는 것조차 힘이 든다.

나의 마술회로에는 아직 오르트의 힘이 통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텨 보자. 내가 버티는 한, 오르트는 힘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질 수는 없지. 그 신부도, '풍경'을 보고도 지지 않았다. 종교를 가진 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종교를 갖지 못한 자가 포기할 순 없어.

방금 죽음을 택한 녀석 치고는 감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군.

마르티네는 웃었다.

아아, 저 하얀 빛의 너머에는 수성이, 수성 너머에는 태양이.

그 태양 너머에는 그 어둡고 거대한 곤충들이 도사리고 있겠지.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르트는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아가씨 한 명이 청중으로 남아 있으니까, 자작곡을 읊을 정도의 시간은 남았을 것이다.


라라…, 삶은 달콤하다.
석류에 매달린 눈물처럼 핥을 수 있는 것이다.
마르티느, 석류에 매달려 밤새 놀자.
어둠이 내려오기 전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르티느, 니가 말하는 사랑은 모르겠다.
랄라, 정말 모르겠어!
아! 나는 너의 몸을 통해 수많은 장서를 읽었지.
삶은 상처입히지 않은 채로는 놓아주지 않는다.
마르티느, 삶은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놓여나고 싶었을 뿐.
삶은 달콤하고
상처입히지 않은 채로는 아무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밤마다 울려퍼진 비명은 나의 것, 오직 나의 것…

노래의 후반부는 하얀 빛으로 뒤덮혔다.



* * *


바젯트는 주말의 하이드 파크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단련에 투자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였고 또 이날따라 그러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우울한 날씨가 계속되는 영국이지만 오늘만큼은 맑았고 공기의 습도도 쾌적했다.

조금만 더 음식이 맛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음식은 영양보충의 수단일 뿐,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으로서 맛은 기준으로 삼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가보다. 아니면 이 종이용기에 담긴 중국면요리가 자신의 입에 맛지 않은 탓이겠지.

저쪽에서 하얀 단발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풍선을 들고 달려온다.

- 축하해, 언니.
- 응?
- 언니는 조금씩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 거야. 용서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어느새 이루어져 있겠지.’

그렇게 속삭이고 아이는 다시 공원의 한가운데로 달리기 시작했다. 곧 인파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바젯트는 잠시 멍하다가 자신의 손에 잡힌 녹색의 풍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하늘로 올려냈다. 하얀 창공에 녹색의 점이 솟구쳐 올랐다. 점점 작아지는 점을 보며 바젯트는 태양과 새로운 새벽을 의미하는 룬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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