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자포] 어떤 AI(아이) // 1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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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me> 1개월 전 </i>
<i:location> 일본, 학원도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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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들렸다. 나의 몸 위로, 뜨끈한 피가 쏟아져내렸다. 운전자를 잃은 자동차가 관성을 이기지 못해 돈다. 그리곤, 그대로 밴이 들이받았는지 강렬한 충격이 뒤따른다.
<slow> 차가 뒤집어진다. 몸이 붕 뜬다. </slow>
무언가가 머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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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삼십초? 십 분? 한 시간?
의식이 돌아오자 이마에 차가운 콘크리트의 기운이 느껴졌다.
끔찍하게 아팠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머리 깊숙한 곳까지 찌르는 듯이.
정수리 어딘가에 있을 상처부위가 지면에 닿지 않도록 턱을 올려 세웠다. 타는 냄새와 함께, 저 멀리 끈적한 불꽃이 들러붙은 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차와 불꽃이 몸을 섞으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불에 탄 시체는 이전에 본 일이 있다. 고열에 의한 근육의 수축을 견디지 못하고 뼈가 튀어나와 기묘한 자세를 한 시체. 나도 그렇게 죽는 걸까.
- 싫어.
눈을 질끈 감자 눈물이 피를 씻어 내렸다. 중간 중간 울음에 끊겨버리는 말들이 같이 흘러 나왔다. 다리를 질질 끌며 나에게서 애원하던 연구원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애원했다.
- 아파 … 머리, 가, 파.
- 싫어 ... 죽기 싫 … 아파.
울음이 터져나왔다. 죽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싫었다. 나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무언가가 뇌리를 훑었다. 왜인지, 조금이지만, 편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01
스커트를 팔랑이며 여학생이 계단을 걸었다. 거침없이 내딛는 활발한 발걸음에, 스커트 안의 속바지가 슬쩍 슬쩍 비쳤다. 소녀의 손에 들린 봉투가 율동감 있게 흔들렸다. 건강함이 넘치는 다리는 한 사무실 앞에 멈추어 섰다. 저지먼트(Judgement ; 선도위원)의 상징인 녹색 방패와 117이란 숫자가 붙은 사무실의 문을 열며 소녀는 큰소리로 외쳤다.
- 쿠로코, 편지 가져왔어-
- 언니!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소녀가 문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갑게 맞이하는 소녀의 머리를 손목으로 내려치며, 안긴 쪽의 여학생 ; 미사카 미코토는 저지먼트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안에는 두 소녀가 더 있었다.
- 어, 사텐도 와 있었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긴 머리의 소녀 ; 사텐 루이코. 옆에는 정반대로 짧은 머리를 한 소녀 ; 우이하루 카자리가 차를 마시다가 미사카 미코토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미사카 미코토에게 헤드락이 걸린 채 밑에서 바둥거리던 소녀 ; 시라이 쿠로코는 손에 들린 편지를 보며 물었다.
- 언니 이건 뭐에요?
- 아, 네 앞으로 온 편지.
- 그걸 왜 언니가 직접…
- 가족한테서 온 거라, 빨리 전해줘야 될 것 같아서.
- 언니 … !
시라이 쿠로코가 감격에 찬 목소리를 하며 얼굴을 들이밀자, 미사카 미코토는 휠체어에서 걸어나온지 하루만 되도 이렇게 쌩쌩한 줄 알았으면 안 왔어, 하며 손바닥으로 쿠로코의 이마를 밀어냈다. 쿠로코는 칫 하고 소리를 내더니 자신의 능력인 순간이동으로 미사카에게서 빠져나왔다. 사텐은 그 광경을 재미나다는 듯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치고는 아까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 그러니까 말이야, 우이하루 그 유령이 ...
- 유령?
- 미코토 선배는 못 들었죠?
미사카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사텐 루이코는 쾌활하게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학원도시 축제인 대패성제가 끝난 다음 날이니 만큼, 학생들은 각자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마치 일주일 간동안의 대패성제가 잘려나가고 대패성제 전과 대패성제 후가 직접 이어진 것처럼.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미열이 남아 이상하게 달아오른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에서도 몇몇은 평소에 열을 올리던 일에 더더욱 집착했다. 사텐 루이코도 그런 케이스로, 어느새 최신 괴담을 수집해 왔다.
사텐 루이코의 유령 이야기는 이러했다. 학원도시의 난개발과 스킬아웃(Skill-Out ; 무장무능력자집단)들의 세력 형성에 의해 방치된 몇몇 골목길들은 복잡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은, 학원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다. 헌데, 어떤 골목길에선 희안하게도 손으로 그린 듯한 횡단보도가 있고 여자아이가 콧소리로 토랸세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 때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바로 뒤돌아 나와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 목소리에 이끌리게 되고, 횡단보도를 건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골목길의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그 횡단보도는 바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삼도천이고,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실은 유령들의 목소리라고 한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되지 않은 산 자는 저 세상에 갈 수 없으므로 죽을 때까지 같은 자리를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
- 사텐, 그거 유령이 아닐지도 몰라.
- 우이하루. 그 얘긴 하지말라고 내가 몇번이나 신신당부를
- 아. 쿠로코, 미안.
- 그거 유령이라기보단 미궁이라고 하지?
미사카가 지적하자 사텐이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유령의 목소리라고 했으니 유령 이야기이긴 하네, 하고 미사카가 덧붙이자 그제서야 그렇죠? 그렇죠? 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사텐. 우이하루가 어색하게 메마른 웃음 소리를 냈다. 쿠로코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어쨌거나 사텐도 언니도 골목길을 조심할 필요는 있겠네요.
- 쿠로~코~ 너도 실은 괴담 좋아 하는 구나~
- 그런 거 없거든요.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 사텐. 본래 학원도시의 치안이 좋다곤 해도, 어쨌거나 골목길은 골목길. 으슥한 곳에 가까이 가서 몸에 좋을 일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건 사고를 자주 접하는 저지먼트인 쿠로코가 하는 잔소리려니, 하고 미사카는 생각했다. 바로 그 때, 저지먼트 사무실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 실례하겠습니다.
- 들어오세요.
우이하루가 문 너머로 소리쳤다. 그러자 갈색 코트를 걸친 장신의 여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와 눈은 검은색이었지만, 새하얀 피부와 서구적인 얼굴로 보아 도무지 평범한 일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큰 키를 한 여자는 문을 닫더니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던 미사카는 자신이 질문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에 휩쌓였다.
- Sorry, What brings you here?
- 일본말 할 줄 알아요.
미사카가 영어로 묻자 여자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잠깐 미사카 미코토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당신이 미사카 미코토? 잘 되었군요.
- 죄송하지만, 다시 묻겠습니다. 저지먼트 지부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죠?
- 당신도 필요합니다만, 이건 저지먼트와 이야기해야 할 사항이라 … 저지먼트는 누구죠?
- 저, 시라이 쿠로코와 저쪽에 앉아 있는 우이하루 카자리가 저지먼트입니다만.
쿠로코가 발끈하여 나섰다. 쿠로코로서는 미사카 미코토를 제멋대로 취급하는 여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쿠로코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 여전히 큰 키때문에 내려다보는 시선이었지만 - 말했다.
- 시라이 쿠로코 씨. 저는 안티스킬(Anti-Skill ; 경비원), 정확히는 안티스킬의 군사 컨설턴트 기업 ‘SN 프루프(SN-proof ; SuperNatural-proof)’에서 나온 앤 셰퍼드라고 합니다. 저지먼트 그리고 미사카 미코토 씨에게 ‘능력자 사냥’ 조사에 대한 비공식적 협력을 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순간 쿠로코와 우이하루의 얼굴에 경직이 일었다. 저지먼트가 아닌 사텐과 미사카로서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민감한 사안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분위기만큼은 느꼈다. 사텐은 ‘무능력자 사냥’이 아닌, ‘능력자 사냥’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쿠로코는 앤 셰퍼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앉아서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02
피터.w.싱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PMC(Private Military Company ; 민간군사기업)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다. 첫째로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서는 군사 공급 기업.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고객을 위해 자문이나 훈련, 용역 등을 제공하는 군사 컨설턴트 기업. 군사 컨설턴트 기업은 종종 필요에 따라 전투에 지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후방에서 병참이나 보급, 수송 등을 담당하는 군사 지원 기업이 존재한다. 학원도시의 ‘안티 스킬’은 학원도시내에서 병력을 자체적으로 모집하며 또한 학원도시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군사 공급 기원이나 군사 지원 기업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안티 스킬이 하는 일은 군사 활동이 아니라 치안 유지다. 그러나, 사실상 군벌화한 안티 스킬과의 전투에는 능력자를 상대로 하는 새로운 군사 교리가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학원도시 바깥에서 군사 컨설턴트 기업을 채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앤 셰퍼드는 자신이 그 군사 컨설턴트 기업의 사원이라고 말했다.
- 먼저 확인해두고 싶습니다만, 당신이 SN-프루프의 사원이라는 걸 입증하실 수 있습니까.
- 입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죠.
- 당신에게 기밀을 유출한 사람을 찾아낼 때까지 당신을 구류하겠습니다. 물론,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요.
시라이 쿠로코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제서야 앤 셰퍼드는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서 사원증을 꺼내어 제시했다. 쿠로코가 고개를 저었다.
- 사원증으로는 위조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지금 제가 꽤 급합니다. 확인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 이 컴퓨터에 떠있는 것이, SN-프루프의 사원 네트워크입니다. 앤 셰퍼드 씨가 정말로 사원이라면 익숙한 화면이겠지요.
우이하루가 컴퓨터를 가리키며 앤 셰퍼드에게 말했다. 앤 셰퍼드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만.
- 로그인 해주세요.
앤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앤이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자, 웹 브라우져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웹 브라우져 위에 줄줄이 화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등록된 사원의 정보와 일치한다는 증거였다. 앤은 이제 충분합니까, 이 이상은 저희도 기밀이기 때문에, 라며 우이하루를 쳐다보았다. 우이하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앤은 웹 브라우져를 종료시켰다.
-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셰퍼드 씨.
- 그럼 이제부터 이야기를
- 지금 제 선배인 코노리 미이는 비번입니다만, 저로도 괜찮겠습니까.
- 예.
앤이 쓴 웃음을 지우며 끄덕였다. 그 때, 미사카가 테이블을 두들겨 주의를 끌었다. 모두의 시선에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 미사카는 말을 이었다.
- 먼저 ‘능력자 사냥’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 이 사람 알아도 좋아요?
앤은 본래부터 직설적인 사람인지, 손가락으로 사텐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가락질을 당한 사텐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그런 사텐을 감싸주듯, 우이하루가 사텐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 사텐은 저희 쪽 중요한 정보원입니다. 알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좋습니다. 정리 겸, ‘능력자 사냥’부터 시작하죠.
여러분들이 대패성제에서 사방팔방 뛰어다닐 때의 얘깁니다. 저지먼트도, 안티스킬도 학원도시 내의 시민이기에 대패성제 외에 관심 돌렸습니다. 학원도시 내부의 대다수 인구는 학생과 선생이고, 그 외엔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는 노인네들이니까 문제 없었어요. 치안유지는 대패성제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앤의 직설적인 화법은 일본어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것인지, 본래 그러한 성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 미사카는 유머로 받아들이고 웃어야할 지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사텐 역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어, 미사카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안심할 수 있었다.
- 그렇기 때문에 그 외의 치안유지, 저희 SN-프루프의 사원들이 맡았습니다. 우리는 그 와중에 사건들을 목격했습니다. 늦은 시간, 주로 으슥한 골목을 혼자 걸어가는 학생들을 노린 사건. 체육대회 후니 흥분해있거나 지쳐있거나 해서 더 쉽게 당했겠지요. 딱히 유괴나 살해의 혐의 없어요. 분풀이로 너덜너덜 해놨지만, 불구로 만들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문제는 ...
- 피해자들의 팔에 있던 주사 흔적 말이군요.
- 윽
사텐이 주사란 말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문질러 보였다. 쿠로코는 여봐라는 듯이 사텐에게 말을 꺼냈다.
- 그래서 제가 아까 전에 언니와 사텐에게 골목길을 조심하라고 한 거에요. 아직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그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감염되었을지 모른다고요.
- 이제, 거기까진 모두 아시는 듯.
- 그래서 골목길 … 그럼 무슨 유령이라도?
- 유령이라면 유령이랄까.
사텐 루이코의 눈에 순간, ‘벗는 여자도 있었고 레벨 어퍼도 있었다면 역시 이것도 틀리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그대로 칠한 듯 영롱한 안광이 떠올랐다. 그러나 앤의 이야기는 사텐의 괴담보다 조금 덜 오컬트적이었다.
-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어떤 흔적, 남지 않았습니다.
- 그 많은 보안 시스템 중에 하나도?
- 하나도요.
쿠로코의 반문에 앤이 단언했다. 우이하루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 그럴 순 없어요.
라며 놀라 소리쳤다. 방 안의 모두가 우이하루를 주목하자 잠시 우물쭈물하던 소녀는, 자신의 직업적 자신감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 그럴 순 없어요. 저지먼트나 안티스킬이 자주 다니지 못하는 길에는 방범장치나 보안 시스템이 있어요. 감시 카메라 뿐만 아니라, 학생증에 들어있는 RFID칩 감지기라던지, 핸드폰 위치정보를 저장하는 단말이라던지 하다 못해 청소로봇이 서버에 저장하는 흔적 정보라도 있을 거에요.
- 그 외에도 감시 시스템이 있긴 합니다만 …
우이하루는 직접 저지먼트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하고 방대한 정보를 관리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감시 시스템에 대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앤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흐렸다.
- …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유령이라고. 하지만 특정할 수 없기에 특정가능한 부류도 있습니다.
말을 끝마치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앤의 시선에, 미사카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미사카의 판단으로는, 학원도시에 보안 시스템을 속일 수 있는 자라면 두 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다. 하나는 능력자는 아니지만 학원도시에 등록되지 않은 외부인. 하지만 그런 외부인이 학원도시의 지리와 보안 시스템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건 무리가 있다. 다른 하나는 … 거기서 미사카는 앤의 시선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 자신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지울 수 있는 능력자. 혹은 - 정보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고레벨 전격계 능력자.
미사카 미코토가 추측을 입에 담자, 그제서야 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 찬물을 끼얹은 듯,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들 중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쿠로코가 입술을 일글어뜨리며, 앤을 향해 말했다.
- 언니는 그런 일, 하지 않았어요.
- 저희는 동기 없기에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티스킬은 용의선상에서 놓습니다. 그게 저희 측에서 비공식적인 협력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 하지만 그 일은 학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렇기에 이 건은 안티스킬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만. 왜 SN-프루프가 조사를 하고 있는 거죠.
- 바로 그 점이 문제. 안티스킬은 너무 폐쇄적이고, 그런 방식으로는 성과 내지 못합니다. 안티스킬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계약을 체결 문제발생은 저희 쪽.
- 해서, 본심은 SN-프루프가 사건을 해결하고 실적을 따내면, 모회사의 또다른 자회사인 군사 공급 업체를 추가 계약 시 추천할 수 있게 되겠죠. 그러면 학원도시 내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 아닌가요.
- 그건 여기서 제가 말할 사안은 아니군요.
앤이 거기서 말을 끊자, 쿠로코는 화제를 돌렸다.
- 그럼 저희가 이 조사에 응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뭔가요.
- 미사카 미코토에 대해 안티스킬이 갖고 있는 정보 및 알리바이의 실시간 제공. 조사가 성공적이었을 시, SN-프루프쪽에서 저지먼트의 치안범위 확보 요청.
침묵. 쿠로코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디나이어블 옵스(Deniable Ops ; 비공식 작전)를 의뢰하는 측에서 본인들 스스로 뒤처리를 한다는 말은 그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승락하는 행위하는 분명한 월권 행위이며 무엇보다 쿠로코도 우이하루도 말단의 말단에 지나지 않았다.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많았다.
- 하겠어.
- 언니!
- 그냥 두고 볼 순 없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위험한 병에 감염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쿠로코가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하겠어.
- 협력, 감사드립니다.
당했다, 는 표정을 짓던 쿠로코가 미사카를 노려보았다. 미사카에게서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볼 수 없자, 쿠로코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우이하루가 쿠로코를 위로하듯이 톡톡 어깨를 쳤다. 그 때, 조용히 듣고 있던 사텐이 나섰다.
- 그래서, 뭘하면 되는 거죠.
03
- 그래서 한다는 게 이건가요, 언니.
- 왜. 제일 빠르잖아. 아니면 다른 수 있어?
미사카는 스킬아웃의 한쪽 팔을 누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미사카는 평소대로 만만한 스킬아웃들을 잡아다 묵사발을 내놓고 있었다. 평소의 쿠로코라면 잔소리를 늘어놓았겠지만, ‘비공식 임무'에 참여하는 이상 이게 가장 효율적인 길임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
= 너무 거친 거 아녜요?
미사카의 머리칼에 붙은, 조그마한 게코타 모형이 우이하루 카자리의 목소리를 전해 주었다. 쿠로코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마저 이런 어린애 취향의 머리핀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게코타 머리핀은, 앤 셰퍼드가 특별히 전해준 물건 이었다.
- 메탈 게코타 서포터. 우리는 MGS라고 해요.
- 메탈 … 게코타?
미사카가 머리핀을 받아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사카의 눈은 벌써 황홀감에 젖어, 이 임무의 보상으로 손에 놓여진 머리핀만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우이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앤에게 질문했다.
- 이건 뭐에 쓰는 거죠?
- 무선 통신으로 백업하는 쪽하고 직접 소통 가능이에요. 골전도로 음성이 전달되니 밖으로 소리가 새나갈 일을 걱정 없어요. 잘 안 들릴 때는 이렇게, 머리 가까이로 눌러주면 됩니다.
- 저지먼트의 통신기를 쓰면 되지 않을까요?
- 오퍼레이팅 하는 쪽은 위치 정보나, 좀 흔들리긴 하겠지만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사에 관련된 정보, 저희쪽에서도 받아야 합니다.
- 윽, 감시되는 것 같잖아.
- 만약 프라이버시한 일 걸린다면 이 버튼을 눌러서 … 기능을 꺼두시면 됩니다.
- 다 좋은데 왜 하필 모양이 게코타죠?
사텐의 물음에 앤이 새하얀 얼굴을 붉혔다.
- 귀엽잖아요.
- 좋은 센스네!
미사카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앤 셰퍼드는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취향이 만천하에 들어난 것이 부끄러워서인지 제빨리 화제를 돌려놓았다.
- 비록 흔적이 모두 사라졌지만, 사건의 특성이나 동시다발성을 볼 때 분명 학원도시를 잘 아는 집단의 범행이라고밖에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스킬 아웃밖에 없겠네요.
- 그렇습니다. 더욱이, 사건 당시가 아닌 전후로 볼 때, 연령대, 성별 등에서는 특징을 찾아낼 수 없었지만, 특정한 팔찌를 착용 중인 사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정보만 찾아주신다면 임무는 종료입니다. 수단은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돌리며, 앤 셰퍼드는 그렇게 말했다. 사진 속에는 한 두 명씩, 특징없는 은색 팔찌를 차고 있는 사람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눈앞에 들이밀면서, 미사카는 스킬 아웃의 팔을 더 세게 꺾으며 물었다.
- 이 은팔찌 찬 놈들에 대해서 누나가 좀 듣고 싶거든?
- 그, 그렇게 말해봐야 ...
- 그럼 본 적은 없어?
- 넘쳐나는 놈이 그런 놈들이라구
- 이놈도 땡인가.
쓸모없다고 판단하자 걷어차서 기절시키는 미사카의 난폭함에 혀를 빼물며, 쿠로코는 귀 바로 위의 MGS를 만지작거리며 저 반대편을 향해 물었다.
= 사텐 쪽은 어떻죠?
사텐이 담당한 부분은 골목길의 유령 괴담에 대한 조사였다. 단순히 괴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사건과 유사점이 많았고, 대부분은 허위정보겠지만 그중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팔찌를 한 집단이라니, 누가 봐도 컬트한 종교집단에 가까운 녀석들에 대한 괴담이 이 학원도시에 떠돌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우응 … 새로 만들어진 괴담이라 그렇게 얘기가 많진 않아.
= 좋아요, 계속 조사 부탁할 게요. 저도 언니와 흩어져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으아, 소득이 전혀 없네.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사텐이 말했다.
- 사텐이 자주 가는 괴담 사이트요?
우이하루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우이하루는 사텐이나 쿠로코 일행이 전해주는 정보나 최근 폭력범죄 정보를 모아서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사카나 쿠로코에게 알려주고, 확인된 목격정보를 지도에 표시해 패턴화하는 작업을 맡고 있었다. 저지먼트의 데이터 베이스 내에 능력자 사냥 건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면 편했겠지만, 그 데이터들은 안티스킬에게 넘어간 뒤였고 아무리 우이하루라도 안티스킬을 해킹해 자극할 필요는 아직 없었다. 확인된 목격정보인 붉은 점이 아직 몇개밖에 없긴 했지만.
- 응, 다들 무슨 배달얘기 밖에 안하는 걸.
- 배달요?
키보드 위에서 무섭게 움직이는 우이하루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사텐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응, 배달. 무슨 아르바이트같은 건가 봐. 좀 … 특이하네.
- 어떤 점이요?
- 마치 릴레이 게임처럼 소포나 상자같은 물건을 옮기게 되어있어. 각 거리마다 옮겨야 할 거리도 짧고, 보상은 대중교통 카드 충전이나 모바일 게임 아이템같은 거. 보통 시작 지점은 지하철 락커고 ... 마지막 참여자한테는 현금으로 직접 주나 봐. 막타가 어쩌고 숟가락질이 어쩌고하는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네.
- 그걸 어떻게 믿고 맡기죠. 중간에 어디론가 샐 지도 모르는데.
- 음, 이거 한 번 봐봐.
- 내 메일로 보내줘요.
사텐은 바로 등 뒤에 있는 우이하루에게 게시판의 텍스트를 긁어서 메일로 보냈다. 사텐은 다시 뒤를 돌아서 우이하루를 바라보았다. 일할 때의 우이하루는 이렇게 진지하구나, 하면서 사텐은 친구로써 안심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바로 뒤에 있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다니, 조금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텐은 일하고 있는 우이하루를 더 유심히 관찰했다. 우이하루의 손가락과 키보드가 얇은 막으로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뼈와 뼈사이를 연결하는 연골같은 무언가가 보인 듯도 했다. 집중해 있는 우이하루의 눈에 비치는 것은 모니터의 빠르게 깜빡이는 빛. 우이하루의 손은 종종 컴퓨터의 주변을 만져서 컴퓨터의 온도를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쿨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이하루 카자리라는 부품과 컴퓨터라는 부품이 연결되어서 인간의 아종이라도 되는 듯했다.
- 자기네들끼리의 룰이 있네요.
우이하루의 말에 사텐이 흠칫, 하고 정신을 차렸다. 기계는 기계, 사람은 사람이다. 아무리 우이하루가 컴퓨터에 집중한다고 해도 우이하루는 우이하루다,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사텐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눈 앞에 있는 건, 여전히 우이하루였다.
- 사텐, 듣고 있어요?
- 으, 응.
- 처음에는 하얀 상자만을 옮겼어요. 중간에 빼돌렸던 사람은 누군가에게 호되게 당했다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교통카드나 핸드폰 번호는 알아야 하고, 그럼 위치를 추적할 수 있으니까요. 그 뒤론 게시판 내에서 남의 물건인데 빼돌리면 안된다는 인식이 퍼져서, 몇 일 뒤엔 이 일을 모두들 당연히 여기고 있어요. 물품이 하얀 상자뿐만 아니라 여러가지가 되었고, 발행주도 다양해졌어요. 종종 분실하거나 손상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엔 발행주가 미리 제시한만큼의 대가를 갚는 게 당연하게 되었고요.
- 하지만 스킬아웃이라면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지?
우이하루가 잠시 컴퓨터에서 벗어나 턱을 잡고 생각에 빠졌다. 우이하루의 눈이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는지 빠르게 좌우를 왕복했다. 우이하루는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무릎을 탁 쳤다가, 너무나 강하게 쳤는지 허벅지를 잡고 기괴한 신음을 흘렸다.
- 우이하루 괜찮아?
- 괘 … 괜찮아요. 그것보다 알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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