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폴레이션 예찬

엑스트라 폴레이션 예찬

이토 케이카쿠 Project itoh

  갑작스럽지만, 여기서는 '드라마가 좋다'라던가 '캐릭터가 좋다'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왜냐면 그런 건, 모두가 알고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여기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이거야말로 코지마 감독의 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사람이 우주에 산다면 어떨까?'

란 질문이 있다고 하자.
그런 질문을 기초로한 작품은 매우 많다.
그래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우주공간의 우주선이란 정말로 막을 수 있을까.
태양플레어나 태양풍은.
'폴리스 노츠'를 만들었을 때, 코지마 감독은 이렇게 생각했다.
거기서 나온 두서없는 제 2의 가정이 이것.

'스페이스 콜로니는, 대량 피폭 사회다'

어떤 상황에 어떤 가정을 삽입해, 별개의 상황을 이끌어낸다.이것을 SF용어(라기보다 원래는 수학용어지만) 엑스트라 폴레이션, 이라 한다.
이끌어낸 제 2의 가정은, 우리가 SF소설이나 건담같은 애니메에서 보아온 스페이스 콜로니상(像)을 일변시킨다.
대량 피폭사회로써의 스페이스 콜로니.
코지마 감독은 거기에서 제 삼의 가정을 이끌어낸다.

'대량 피폭 사회인 스페이스 콜로니는, 고도 의학 사회이다.'

의료인프라가 근거를 점하는 사회.
군산복합체가 아닌 의료산업복합체로써의 토쿠가와 그룹. 세밀한 '폴리스 노츠'의 설정군은, 이 사고과정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집중 의료 사회로써 스페이스 콜로니.
그건 우리들이 알고 있던 콜로니에 대한 가치관을 흔들어놓을 뿐 아니라, 아니 아마도 현재의 우리들의 의료제도까지 비추고 있다.


"그렇구나, 그랬던건가~!"
근미래나 판타지 이세계가 범람하는 게임 업계에, 이러한, '눈에서 꺼풀이 벗겨지는 듯한' 가치관에 눈 뜨게 해주는 세계관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아는 한은, 거의, 아니 코지마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임에 있어서, 세계는 그저 분위기 만들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정밀하고 세밀한 설정을한 작품은, 대부분 설정 좋아하는 오타쿠의 자기만족적인 정보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 '그저 설정'과 엑스트라 폴레이션은 전혀 다르다.
그저 설정이라면, 확실히 말해 누구라도 쓸 수 있다.
그러나, '표층을 벗겨내면, 본질은 이렇다'라는 '생각지도 못한 시점의 제시'가 되려면 풍부한 지식과 '생각하는 일의 즐거움'을 가져오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다.


메탈기어도 그렇다.
유전자를 '인간의 미세한 자질의 라이브러리라고 간주한다'는 사고의 임팩트. 
거기서부터 게놈병에 유전자치료에, '자질을 집어넣는다' 설정이나, 전설의 전사 빅보스의 '유체를 요구하는' 테러리스트란 이야기가 태어난다.
그건 즉, 인간의 유전이 전략물질이 되는 세계다.
개인을 식별하는 바이러스, 레일건 핵탄두.
메탈기어는 '그런 수가 있었나!'하는 절찬의 SF적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그거야 말로 진짜라면, 개별의 아이디어 하나로도 이야기가 만들어질 듯한.
아이디어를 메인으로한 이야기란 의미에서 코지마 감독은 '스키조 매트릭스' '홀리 파이어'같은, 엑스트라 폴레이션의 전통을 가장 올바르게 이어나가는 SF작가의 브루스 스털링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MGS2의 테마는 '디지털화 사회'의 문제라고 한다. 니시가키 토오루나 클리포드 스톨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이 없어지는 것으로, 세계의 지역차가 소멸해, 두리뭉실한 하나의 문화(밈)이 지구를 덮고만다는 가능성을 지적한다.

프랑스의 사색가 폴 비릴리오는 넷트 사회가 재앙을 고속으로 전파하는 '정보화 폭탄'이나 MGS2 첫 체험판에 등장한 사이퍼나 감시위성 등, 2차 시각의 이용에 의해 전장으로부터 '현실'이 소멸하는 가능성을 지적해, 후자의 문제에 대해 비빌리오나 이치다 요시히코등의 저작을 원작으로한 것으로 보이는 오시이 마모루 '패트레이버 2'가 영상화작품으로써  훌륭히 그려내고 있다.

로렌스 레식은 'CODE'에서 인터넷의 '자유'나 '익명성'이 실은 설계상의 것에 지나지 않으며, 상업화에 의해 '중년화'된 인터넷이 개인정보를 관리하기 쉬운 아키텍쳐로 변화하고 있다고 예언한다.

브루스 스털링은 10년이상도 전에 '넷트 속의 섬들'에서, 인터넷이 글로벌하기보다는 선진자본주의사회권의 아키텍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갈파해, '제일차세계대전은 제일차 "넷트 내란"이었다'고, 인터넷의 글로버리즘이란 환상을 부수어버리는 매니페스트를 제시한다.

코지마감독이 어떠한 단면으로 디지털화란 테마를 다루는가, 지금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위에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다른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단면이라도, 코지마감독은 그걸 '빅보스의 유체'와 같은 눈에 보이는 엑스트라 폴레이션으로 그려낼 것만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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