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Nothing, With Love(3)
대심도시설.
방문한 건 반년만이다. 1년에 두 번의 '추출(抽出)'의 시간. 6개월간의 경험을 그 때마다 뇌수에서 캐내어, 냉각기가 풀가동으로 얼리고는 그대로 보존 '스토리지'에 그것을 옮긴다. '나'의 또다른 뇌수. 땅 깊숙이 꿰메어져 움직일 일 없는, 나의 거대한 그림자 -- 그것도 삼십여년의 길이의 계단으로 길게 이어진.
버킹엄셔에 그것 의 용무로 발을 들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쭉,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단순히 말하면 '추출' 외에는 일 없는 장소다. 즉, 피험체라는 취급말고, 매우 평범하게, 이 조직의 에이전트로서 시설에 들어가는 일은 오늘이 처음이 된다. 얄궂은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나는 눈뜨고, 국교회의 대사교에게 '축복'받아, 나로서의 인생을 걸어나갔다. 캔터베리 대사교가 예의 구약의 일구를 암송할 때, 멍하니 생각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 그, 여리고에 잠입한 이스라엘의 첩자들은 어땠을까. 자신의 이름을 질투라고 부르고 꺼려질 일 없는 구약의 신께서 명한 일이라 해도, 이 스파이들은 여리고란 하나의 도시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 땅 위에서 말소시켜버리기 위해 침입했다. 이 스파이를 감춘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은 신에게 보호받아, 뒤에 그녀의 혈족은 그리스도를 낳는다. 이스라엘의 스파이를 지킨 자이긴 하나, 동시에 여리고의 주민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배반자인 창부와 같은 혈통 그 자체가, 다른 지상의 주민에게 신의 아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런 신의 아들의 현현을 준비하는 라합이 의미하는 건, 실은 '혼돈'이기도 하다. 욥기에서는 리바이어던(바다의 괴물)과 같은 이름이 붙여질 정도다.
가로수 길 옆에 선 영화 스튜디오군을 노려보면서, 애스턴 마틴은 나무 밑을 우울하게 질주한다. 여기 버킹엄셔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는 몇개의 할리우드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 현재 이 스튜디오는 서 리들리 스콧(리들리 스콧 경)이 소유하고 있단 이야기다. 스콧이 한 번은, 톰 쿠르즈가 나온 '레전드'란 영화의 촬영 중에 여기를 비방한 적이 있다만.
버킹엄셔라고 하면 파인우드이기에, 언젠가부터 대심도시설도 '파인우드'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GCHQ(정부통신본부)를 첼터넘, 수상저관을 다우닝가 십번지, 미국 CIQ를 랭글리라고 부르듯.
눈에 띄는 창고에 다달았기에, 진입로에 차를 멈춘다. 겉으로 보기에는 브로콜리 농가의 창고인 이 볼품없는 건물이, '나'가 환생하는 장소인 대심도공간으로 가는 입구다. 레지먼트(연대)의 사복경비원을 패스해, 애스턴 마틴을 창고 안으로 들이자, 특정 위치에서 바닥의 록이 해제되고는 이어서 2cm 정도 엉덩이가 낙하한다.
차체와 정중하게 사이를 둔 스페이스를 안전책이 덮는다. 리프트가 구동을 준비하는 서보음에 귀를 멀게 하자, 배 안에 까지 울리는 무거운 진동과 함께 리프트가 강하하기 시작한다.
차체의 우하향 육십도로 내려가는 리프트의 비스듬한 갱도 안에서, 노란 빛의 등불에 반복해서 얼굴을 씻기며 미스 셰퍼드의 일을 생각한다. 딱 지금 일에 관해서다. 수화기를 덮은 손바닥 저편에서, 박사가 '손님'에게 말했다. 박사가 무엇을 말하려했는지, 미스 셰퍼드를 만나면 무언가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 어쩌면 그 때 박사가 누구와 있었는지도.
잠시있자 이번에는, 엉덩이가 차의 시트에 밀리는 감각이 있었다. 리프트가 정지했다. 뿔을 내밀어 올린 유니콘과 사자가 그려진 철제 격벽이 열리자, 거기가 바로 시설의 주차장이다.
「미스 캐롤라인 셰퍼드로군」
나는 손을 내밀었다. 탄창을 박아넣은 MP5를 쥐고 방탄방패의 저편에 자리 잡은, 레지먼트(연대)의 경비진 몇 명이 지켜보는 접수대에서.
삼십대 후반, 아니 스물 여덟, 아홉일까. 아름다운 블루넷의 머리카락이나, 지적임을 가장하기 위해 일부러 본색인 블론드를 물들여 염색한 흔적이 있다. 실제로 지성과 능력 있는 여성에게는, 경박하다고 간주되는 블론드 헤어는 캐리어 상으로 방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겠지. 블론드에도 블론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아쉬운 일이다만 -- 그렇다고 해도 블루넷이 싫은 건 아니니. 중요한 건, 아름다운가 아닌가, 그리고 뒤탈이 있느냐 없느냐다. 일이 단순하면 단순할 수록 여성과의 관계는 즐거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부녀가 이상적이지만, 이건 이야기가 새버렸다.
「처음으로 뵙는군요, 미스터」
내가 그녀를 머리부터 힐끝까지 보고 만족했듯, 미스 셰퍼드도 나를 스캔하는 시선으로 핥아댔다.
「말해두자면, 나는 여기서 코맨더(해군중위)다. 미스터가 아냐. 적어도 여기서는. 거기에 이상하네만, 자네는 분명 '기술대'에서 흰자를 뒤짚은 나를 보았을 텐데」
그리 미소짓자, 캐롤라인은 드디어 나의 손을 쥐고는
「네. 내가 담당하는 일은 당신의 "스트리밍(흘려넣기)"에 관한, 데이터 안전성의 모니터(경과감시)이니까요」
「 그러니까 뇌에 흘려넣기인가」
「 그래요, 스토리지로부터 잠재적인 포맷을 마친 미디어에요」
「나는 자네에게 흘려보내고 싶다만」
그렇게 '나'답게 행동하자, 그녀는 즐거운 듯 웃는다.
「정말이지, 데이터에 나타난 그대로의 사람이네요, 당신은」
「 내 사고를 언제나 보고 있는 건가」
「그래요, 스토리지에서 비활성상태에 있는 당신을요. 그런 일이니까요」
그리 말하고는, 그럼 이쪽으로-- 하고 미스터 셰퍼드가 자신의 오피스에 재촉한다. 편집광적인 미로 풍의 복도를 걷고 있자, 이 시설의 오싹한 인테리어는 70년대 이후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노골적으로 보인다. 석면을 제거하거나, 공기조절 시스템이나 전기계통을 바꾸거나, 알맹이는 계속 변경을 더했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냉전 풍에 다 낡은 병원의 우울함이 벽이란 벽마다 달라붙어 있다. 녹색이 더해진 물색 타일. 들어난 콘크리트. 핵 셸터와 정신병원의 수술대의 야합.
「그다지 멋진 직장은 아니로군」
「맞아요, 당신같죠」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신가」
「냉전의 유산인 걸요. 이 파랗고 오싹한 병원스러움도, 여기저기 삐쭉 내민 격벽의 콘크리트도, 전부 당신과 형제. 냉전을 어머니로 하는, 시스템화된 일군의 파라노이아의 산물이에요」
갑작스럽게 셰퍼드가 멈추어서, 마치 정신병원의 독방처럼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달린 문을 열었다. 여기에요, 하고 재촉했기에 발을 들이밀자, 마치 진찰실같은 오피스였다.
「그래서, 이야기란 뭐죠」
문을 닫자, 의사의 포지션에 앉은 그녀가 말한다. 이래서는 완전히, 내가 환자다.
「박사가 죽기 전날, 그의 집에 통화하지 않았나」
「그래요」
「누가 물어본 적은...」
「당신 외에는 ... 아니, 이게 처음입니다」
「그렇겠지. 누구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으니까」
셰퍼드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 무엇에 주목하지 않았단 거죠」
「자네가 박사에게 전화하려 한 내용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도중에 고속도로에서 뛰어들지 않았다면, 여기에서 박사에게 말하고 있을 화두」
「의미를 모르겠네요. 박사는 사고사잖아요」
나는 음성분석반으로부터 카피해온 오디오 테이프를, 휴대용기기로 재생한다. 기록이 끝나고 나서도, 그녀는 곤혹한 표정을 떠올린다. 거기다, 이 회화 뒤에도 그 곤란함이 없어질 일은 없으려나.
「자네와의 대화다. 수비회선기록으로부터 파냈지. 확인된 범위에서는, 이게 박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사고와 무슨 관계가 ...」
「알 텐데. 자네가 박사에게 전하려던 이야기를, 박사는 서재에 있던 누군가에게 말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다른 동료가 아닌가요 ... 여기의, 다른 상급연구원이 집에 찾아갔다던가」
「그날 밤, 박사의 곁을 찾아간 사람은 소포배달부뿐이다. 들어가서 5분도 지나지 않아 팡본주택지로부터 나갔어. 팡본을 알고 있나 ... 울타리로 둘러쌓여, 군대 이상의 경비원이 24시간 움직이는, 시큐리티가 촘촘하기 그지없는 고급주택지다. 감시 카메라도 널린 데다가 배달부의 행동도 제대로 찍혀있어. 모범적으로, 아무 일도 없이, 배달만 하고 돌아갔네」
「그럼, 박사의 집에는 누가 있었단 말이죠」
「지금 자네도, 자신이 건 통화를 막 들었지 않나. 그것도, 가려진 수화기의 저편에서 박사가 한 말이 제대로 들리는 보정판으로. 거기에는 배달부 이외의 누군가가 있었단 말이다. 경비원도, 감시카메라에도 걸리지 않고 박사의 서재까지 침입한 누군가가」
셰퍼드는 바들바들 몸을 떨며
「그러니까, 누구에요」
「프로다. 나와 같은 류의」
두 사람의 침묵이 오피스를 지배하자, 에어덕트의 음이 귓바퀴에 울린다. 덕트의 나라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대심도시설은, 아니 영국은, 덕트의 나라다. 벽이고 통로고 닿는 곳마다 덕트가 있다. 우웅하는 읊조림과 가끔씩 울리는 투웅하는 소리. 전위영화의 음향효과와 같이.
「그렇지만 ... 이걸 당신에게 말해도 될런지」
에어컨 소리에 중압감이 걸리기 시작한다.
「조사상 필요한 정보에 억세스할 권리를, 나는 상사로부터 받았다. 안심하고 말해도 좋아」
「그게 아니라 이건 ... 그, 당신에 관한 일이에요」
「그것이 자네 일이겠지. 나란 전체를 유지관리하는 것. 그 연구. 당연하지 않은가. 자네와 박사가 일 말고 다른 대화를 하다니, 상상하기 어렵지」
그리 말하며 내가 미소지었지만, 기대한 효과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되었다. 시선이 일부러 나 외의 공간에서 헤메다가 -- 그러나 그것도 지쳐버렸는지 잠시 있자 내 눈동자로 돌아왔다.
「당신 ... 의식의 중단을 자각하고 있나요」
나는 눈썹을 올렸다. 무슨 소리지.
「두 회 전의 전사(傳寫)에서, 이미 징후가 있었어요. 사본 2는 자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제출한 작전보고서에는 여기저기 큰 공백이나, 뻔히도 창작이라고 생각되는 어긋남이, 눈에 띄었지. 당초에는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KGB에게 넘어가 이중 스파이가 되지는 않았나 그런 걱정도 있었어. 추적조사로 그건 부정되었지만 덕분에, 아메리카의 짐 앵글턴같은 파라노이아가 심하게 의심되었어요」
「70년대 얘기잖나. 앵글턴은 적과 아군을 구분 못하는 의심의 화신이었으니까」
「당신의 운용을, 잠시간 중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해. 그건 어쨌든, 당신의 돌발성기억상실이라고도 할 만한--」
「기억상실이라니 ... 잠깐만.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기억을 잃은 기억이 없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래요. 신중하게 삭제되어, 정합성을 회복시켰으니까.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그 후 전사를 겹치면 겹칠 수록 심각해진 당신의 "돌발성기억상실"은, 실은 전혀 기억상실이 아니었죠」
「그럼, 대체 ...」
셰퍼드는 다시 침묵했다.나는 그녀가 줄거리를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박사는 ... 최근 어떤 가설을 세웠어. 기억이 결여된 동안 당신의 뇌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아니,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무슨 의미지」
주도권을 그녀가 쥐고 있단 사실은 알았다.
나는 이미, 이 대화를 지배하고 있지 않다.
위험하다고 뇌가 깊은 곳에서 고한다. 이 이상 알게되면 위험하다고. 고동에 짓눌려 터질 것 같다. 나는 이마에 손을 대어, 자신이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한다. 괜찮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나는, 그래도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연구와 직업은 "흘려넣기", 아까 말했듯이. 박사는, 과거의 "흘려넣기"에 관해서 차이가 검출되지 않았는지 의뢰했어. "당신"의 총량과 질이 열화, 혹은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을. 당신은 기본적으로 경험을 축적하기에, 정보는 늘어나고만 있는 한 편이고, 그 부풀어오르기만 하는 전체를 전망하면, 무언가 무너져 내리고 있지는 않을까-- 누구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
「"저번 달부터 계속 돌렸던 이른 바 그거"란, 그럼」
「그래 박사가 나에게 의뢰한 잡. 내가 쓴 소급적 차분 검출 프로그램. 스토리지 안에서부터 기어 들어가, 당신이라는 거대한 문서 안에 있다고 예상되는, 무언가 거기에 적혀져 있었을 것이라는 결여의 흔적을 잡으려 했어. 트뤼프를 찾는 돼지가 아니라, 트뤼프의 부재함을 찾는 돼지. 그걸 기억의 미로안에 풀어놓고서는, 돌아기를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했어」
- 그래서, 결과는. 나의 무엇이 결여되어 있던 건가. 나르시시즘이나 유머라곤 말하지 말게」
캐롤라인 셰퍼드는 의리의 미소를 돌려주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컨셔스 (의식)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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