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Nothing, With Love (프롤로그)


  이를 테면 나는 서적이다. 지금 이렇게 발생하고 있는 텍스트다.



  나는 아래와 같은 기술(記述)을 산출하기 위해 길러진 알고리즘이다. 범용한 소프트웨어에 비하면 매우 복잡하지만, 그와 같이 기능하기 위해 기술된 존재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서적을 낳는 서적. 그러니까, 지금부터 쓰여질 문장이 얼마나 얄궂든, 혹은 감상적으로 보이든 간에, 거기에는 어떠한 내면도 없다. 그렇게 해석가능한 순수한 출력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한에서 이렇게 말하기를 빈다.

  나의 혼에 안녕있기를.



  말하자면 나는 사본이다. 사본의 사본의 사본의 사본이다. 적어도 그 대부분은.
  그것이 나라는 서적에 대해 얼마만큼 비중을 갖고 있느냐는 상대적인 문제이며,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이후로도 얼마만큼 살아남느냐에 달려있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길게 이야기를 기술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만큼 오리지널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자신이 서적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사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존재양식도 별로 괴롭지는 않다. 자신이 배끼고 배끼고 배끼고 배끼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포기하는 일은 내 직업의 전통적 일부여서, 그 또한 그리 허들이 높지는 않다. 심지어 동료들은 나를 쾌락주의자로 간주할 지경이다.

  바로 전 사본 - 즉, 전임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있다. 필요충분 이상의 경의를. 나는 십여년 전에 상사로부터 이렇게 불렸다. 다이노소어(공룡)라고. 냉전의 유산에, 여성차별주의자라고. 그렇다, 나는 쾌락주의자이지만, 고풍적인 전통주의자라는 일면도 있다. 그렇다곤 해도, 그렇지 않으면 여왕이란 존재에 봉사하면서도 제정신일 방도가 있을까. 군주란 존재를 - 적어도 절차상으론 - 세계의 나라들이 대부분 포기하고만 현대 세계에 있어서는.



  나는 공룡이다. 시대착오적이기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러하기를 선택한 절멸종이다. 애시당초, 사본이란 형태 자체가 이미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구텐베르크로부터 벌써 오백년은 지났다. 방대한 알파벳의 연속을 진지하게 배끼는 일에 열심인, 아니 미쳐버린 사도는 이미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나를 기술(記述)하는 기술(技術) 그 자체는, 아직 반(半)세기를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건 효율을 희구한 결과로 여러가지 변종을 생성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테크놀러지'가 아니다. '테크놀러지'라 불리는 것들이 상식적으로 통과한, 혹은 현재 통과하는 중인 지적공유와 자본주의에 의한 도태의 거친 파도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나를 기술하는 테크놀러지를 만든 것은 스트라스부르의 금속가공 직인이 아니었다. 키 작은 SS장관이 이끈, 신비주의자와 우생학자와 물리학자와 심리학자의 야합이었는데, 그런 걸 과학이라 주장하기에는 너무나 더럽고 썩은 내가 진동을 해대서 말이 안된다. 놈들이 만들어낸 그런 기술이랄 수도 없는 무언가를 종전의 혼돈 속에서 대영제국이 접수했고,  '제국'이라 불리는 신대륙 놈들로부터도 몰래 감춘 채, 그 어둡고 질척한 곳에서 내가 적혀졌단 얘기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로서 발생한 기념해야할 날, 갑자기 세상과 대치하게 된 꼴이 되어 혼란스러운 나를 무시하고선 제일 먼저 끌고간 곳은 캔터베리 대사교의 앞이다. 기술완료직후의 나로 보자면, 전신마취로부터 각성한 듯한 당혹감에 혼란해 저도 모르게 치아에 힘이 들어갈 수 있는 입에는 혀를 깨물어 잘라내지 않도록 개그볼이 박혀있었다. 팔다리가 미친듯이 나는 내가 아닌 나에 속하였으리라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것들이 역시 가죽 구속구로 확실히 기술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개그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액이 입으로부터 칠칠맞지 못하게 흘러나와서 나는 나로서 있기를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변태 취향인 모습으로 몇 시간이 지나자, 내가 아닌 나로 있을 것에 전력으로 위화감을 표명하는 것도 지쳐서, 그러니까 스테이터스(상태)가 진정된 뒤에야, 테일러메이드의 셔츠와 슈츠 - 어째서인지 셰빌 로우가 아니라 브리오니였다 - 를 입혀진 채, 서스펜더가 걸쳐지고, 나비넥타이가 묶여져 사교 앞으로 끌려갔다.

  대심도시설의 통로를 강제로 걷게 되어서, 흉금에, 허리에, 엉덩이에, 대퇴근에 딱 달라붙는 안성맞춤의 슈트의 질감을 피부로 느껴가며 살짝 생각했다. 이, 처음으로 입혀졌는데도 불쾌하게도 완벽한 피트를 보여주는 브리오니를 재단한 건, 내가 내가 되기 전이겠지. '나'는 어떤 얼굴로 이 야한 슈츠를 작업대에서 대했을까. 그는 재단된 때, 그 슈트를 몸에 감쌌을까.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신이 여왕께 모든 왕권을 부여한 것에 얄궂음을 표현할 심산인지, 신은 나의 현안 사정에서 최하위에 있었다. GOD SAVE THE QUEEN(신은 여왕과 함께 계시다). 영국인답게 기회있을 때마다 그렇게 입에 올리지만, 신에게 정말로 무언가를 바란 적은 없다. 하지만 입에 올리기에도 무시무시한 국가사회주의자놈들이 만들어낸 그것에 의해 기술된 이상, 나는 투명한 존재일 리 없다. 원죄의 여하와 관계없이, 나는 낳아진 순간에 용서받을 필요가 있었다. 사본전체, 전임자들 모두가 그러했으리라. 단 한 명, 원전을 제외하고. 그 날, 파인우드의 대심도시설에서 COE(국교회)의 수장이 내 무릎을 꿇히고는 구약의 여러 절을 암송했다.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시팀에서 정탐꾼 두 사람을 몰래 보내며, “ 가서 저 땅과 예리코를 살펴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길을 떠나 라합이라고 하는 창녀의 집에 들어가 거기에서 묵었다. 2 그러자 예리코 임금에게, “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이 이 땅을 정찰하려고 오늘 밤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하는 보고가 들어갔다.



  내 직업에 관한, 아마도 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기술이리라. 그리하여 무엇이 용서받았는가, 무엇이 변했는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나 이외의 관계자 전원은 그것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의식을 지나지 않고서는 폐하도 수상도 '나'를 정식으로 운용하코자 하지 않았다고, 그건 상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나를 다시 전사해 운용하는 일 자체를 반대했다고 들었다. 공룡이라 나를 부른 것도 그녀다. 그 일 자체는 별로 뭐라 투덜거릴 생각은 없다. 그녀도, 폐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나를 나로 있게하는, 여러가지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이 기술을 사용하면, 죽음을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속물놈들의 소망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 이외에는 이 기술이 쓰여진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그걸 상사에게 물어봤으나, 그녀는 단 한 마디, 두렵기 짝이 없으니까, 라고만 대답했다. 본인을 눈 앞에 두고서는 두렵기 짝이 없을 리야. 더군다나 그 두려운 존재를 잔재주로 엑소시즘(구마)하려고 들어서야.



  나는 서적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텍스트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 -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 이 눈앞에 두고, 읽고, 의미를 묶어내고 있는 이 텍스트는 내가 아니다. 이건 발생하고 있는 나에 의해 쓰여진 나와는 별개의 텍스트이며, 발생하고 있는 나의 일부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저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쓰는 내가 서적이기를 고려한다면 프레임 스토리(액자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야기 안에서 등장하는 음유시인이 이야기하는 이야기, 딱 초서(캔터베리 이야기)와 같이.

  좀 전까지, 나는 나의 이야기만으로 여기에 있으리라, 소박하게도 생각해왔다. 사본의 사본의 사본의 사본이란 나의 존재방식은 제쳐두고, 그럼에도 나는 나 이외의 것일 수가 없다고. 그러나, 그건 너무나도 유치하고 무방비한 맹신이었다.

  나는,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아니다.

  그런 당연한 일을, 나는 방금 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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