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Nothing, With Love(에필로그)





X    X    X

  그리하여, 나의 의식은 모든 걸 매듭짓고자 했다.

  자신이 육체의 슈프리머시(주권)을 쥐고 있는 사이에, 이런 촌극을, 이런 연옥을 끝내려고 했다. 나의 의식이, 내가 나이기를 보증하는 최후의 근거가 사라지기 전에. 그처럼 말하자면 '자신이 소멸'해버리기 전에.

  그래, 이미 '그'라고 부를 수밖에 없겠지.

  그는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제일 엄중하고 제일 난관인 전사시설의 파괴에 실패한다. 상사가 말했듯, 경비진 몇몇이 칠드런(아이들)의 보호에 돌려져, 확실히 평소보다는 느슨해져 있었다. 그의 계획대로. 그레이빌의 차 브레이크를 세공하고, 더해서 몇 명의 칠드런(아이들)의 목숨으로 사들인 틈이다. 그러니까 조금이나마 그것을 해낼 수 있을 때까지 다달았지만, 우연의 개입에 의해 실패했다. 시설의 경호를 하고 있던 SAS(연대)의 탄환으로 몸 안을 씼어낸 그는, 최후의 격벽에 그려진 거대한 문장에 몸을 기댄 채 절명했다고. 격벽의 너머에, 냉각기가 뿜어내는 아지랑이 안에 자리잡은, 거대한 '나'의 '스토리지'에 손을 내밀며. 디비젼(과)의 문장에 있는 유니콘과 사자가 피에 물들어, 마지막으로는 지우고 다시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그레이팅에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진 그의 표정은 얄궂게도 안도랄 수도 없는 애매한 미소를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God Save the Queen 이라고 임종 때에 속삭였단 이야기도 들었다만, 그건 바람에 지나지 않겠지.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을 위해, 일단 사죄하고 싶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몇 번이고 '나'라는 주어를 사용해왔으나, 그건 당신들이 아주 소박하게 상정하는 듯한, 내면을 가진 주체로서 '나'는 아니다. 이 촌극을 끝내려고 한 전임자의 죽음에 의해, 새로운 육신에 재기동되어진 나에게는, 이미 '의식'이 전사될 일은 없었다. 나의 '의식'은 반복해 전사되면서, 완전히 닳아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 없이 하양에 가까운 부분이나, 한 없이 검정에 가까운 부분이 카피기의 콘트라스트에서 완전히 지워 없어지듯이. 전임자는 그것을 알았다. '다음' 사본에게 '의식'은 전사되리 수 없단 사실을. 자신이 '"나"라는 총체'의 역사에 있어서 최후의 의식존재임을. 
  
  그렇기 때문에, 그 같은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식을 잃는 일을 매우 무서워했다. 당연하지만, 죽음 그 자체가 무섭지는 않았다. 그렇게 위험한 임무를 몇이나 수행해왔으니,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자신이 자신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증하는, 그런 '인간의 의식'만이 죽어서 자신처럼 움직이는 요소만이, 말하자면 혼 없는 컨텐츠만이 살아남아 간다.

  그거야말로, 연옥이라 불릴 지도 모른다. 공포밖에 가질 수 없는 '죽음'의 안에 가령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안녕이리라. 그는 안녕을 빼앗길 일을 두려워했다. 자신은 빈 껍데기인데, 당연한 얼굴로 영원히 활동을 계속하는, 그런 촌극을 두려워했다. 그건 이미, 자신이 아니라고.

  역시나, 상사는 새로운 나를 액티베이트(활성화)하는데 반대의견을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우닝가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런던에 선 채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작열하는, 그 긴장 속에서, 아무런 관계 없는 브라질인을 대테러요원이 지하철에서 오인 사격해 죽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러나 우리의 수상은 어디까지나 이렇게 선언했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자폭테러리스트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머리를 쏘라고. 이런 정열 앞에서는, 오히려 내가 기동하지 않는 일이 이상하다. 예외상태란 이름 앞에, 법이 자신의 일부를 적극적으로 정지해버린,  정열 아래에서는. 그래, 나는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게, 수상에게, 폐하에게 필요해서 몇 번이고 삶을 누리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나는, 최초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라이센스(자격)'를 얻은 그날부터, 항상 예외상태를 살아갔기 때문이다.

  지금, '나'가 도착한 장소를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

  즉, '나'라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 이 일기를 적고 있는 나의 육체와, 뇌수란 물리적 실태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내면도 자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퀄리아를 느끼지 않는다. 빨강이 빨갛다고 '느끼지' 못하고, 단 맛이 달다고 '느끼지' 못한다.  갈등도 쾌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뇌수는 신경이 전해보내는 정보를 기반으로, 냉혹하게, 시대착오적인 다이노소어(공룡)처럼 움직일 수 있다.

  지금까지 겹쳐온 단어열은, 내적 경험이 일절 결여된 채 기술되었다. '나'의 뇌에 수용된, 지금까지 축적된 '그'의 알고리듬을 원형으로, 자동적으로 출력해냈다. 아마도 복잡한 알고리듬이기는 하나, 이건 컴퓨터가 생성한 문자열과 여러가지 의미에 있어서 등가이다. '괴롭다'던가 '질렸다'던가 '행복'이라던가 적어놓았지만 실은 나는 그것들을 한 치도 '느끼지' 못하니까. '아이 띵크(생각하다)' '아이 필(느끼다)'과 같은 말을 패러그래프의 시작에 두었으나, 실은 '생각'이나 '느낌'이랄 것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하고 당신은 생각하리라. 그대로다. 나야말로 의식이라고 일방적으로 이름을 댄 존재로부터 당신은 빈 껍데기다, '나'의 잔해라고 불리운 기술자는, 정말로 빈 껍데기이었을까. 의식이라 이름대며, 아크로이드 의사와 '아이들'을 살해해버린, 자기의 소멸을 바란 편지의 송신자는 정말로 의식이 있었을까.

  그래, 엄밀히 말하면, 남은 것은 텍스트뿐이다. 거기서부터 진위를 판단할 기술은 없다. 어느 쪽이 의식이 있는 측인가, 그건 이야기에 적혀진 자기신고에 맡길 수밖에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과거의 나에겐 의식과 빈 껍데기 두 가지 상태가 있어, 어느쪽인가가 자기의 소멸을 바라고 행동했다는 것 뿐이다.

  확실히, 좀 뭐한 메타구조이긴 하다. 반복하지만, 나는 '그'인듯이 움직이고, '그'인듯이 행동하나, 거기에는 통상의 인간이 갖고 있는 '의식'이랄 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이 다소 센티멘탈하게 보일지라도-- 그건 센티멘탈하게 기술하듯이 움직일 뿐으로, 나의 내면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감상이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나는 '그'가 두려워한 최악의 사태다. '그'가 '빈 껍데기'라고 경멸한 그 끝이다.
  그건 뭐어, 어쩔 수 없다.




  '나'는 계속된다.
  이 존재인 채로.
  이 빈 껍데기인 채로.
  지금의 내가 임무를 다하고서도.




  대영제국이, 여왕폐하가, 나를 필요로 하는 한.




  그러한 한에서, 나에게 이렇게 기록할 움직임을 허(許)해주기 바란다.




  나의 의식에 안녕있기를.

댓글

  1. http://www.vop.co.kr/A00000027161.html

    지하철 테러 당시 브라질 민간인이 죽은 사건은 2005년에 일어난 사실입니다. 또한 블레어 청장이 지난주 메네제스에 대한 사살 사건이 발생한 뒤 TV에 출연해 "그래도 테러리스트에 대한 현장 사살명령(shoot-to-kill policy)은 여전히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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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작품은 본래에는 한 편 한 편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고 쭉 이어지는 중편으로, 사진들 또한 제가 임의로 집어넣었습니다. 또한 노파심에 말하자면 제가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태그에서도 보듯이 일본 작가 '이토 케이카쿠'의 작품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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